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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권투를 시작하다

17년, 18년 그리고 25년

by 거칠마루


이사 온 지 6개월이 지나 집 근처도 익숙해졌고 첫째의 상담센터와 진료병원도 인근으로 정해졌습니다. 아울러 둘째의 영어와 수학학원도 집에서 1km 이내입니다. 아내는 근방 25km 내의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됐고요, 저는 5달 동안 편도 65km의 거리를 출퇴근하니 힘들었습니다(원거리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모두 응원합니다). 아내에게 말은 안 했지만 야간 근무 중 출동이 길어지는 날엔 퇴근하는 길에 어찌나 졸리던지 잠을 깨려 양쪽 허벅지를 번갈아 내리쳤습니다. 그러다 제 근무지가 7월 25일 자로 집에서 5km 떨어진 곳의 소방서로 바뀌었습니다. 낯선 새 근무지도 한 달 정도 근무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됐습니다. 주변 생활 여건이 모두 안정되었으니 이젠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권투를 시작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이틀 전, 아이들이 다니는 체육관에 전화를 해서 1일 무료 체험 수업을 예약했습니다.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기가 다닐 체육관의 수업료를 결제하기 전 미리 하루치 경험을 해보는 겁니다. 관장님이나 코치님의 교육 성향이 나랑 맞는지, 체육관 시설은 어떤지(시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습니다), 집에서 체육관으로 가는 동선 체크(집에서 가까운 곳이 가장 좋은 체육관입니다, 체육관이 멀면 안 가게 됩니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분위기 등을 느끼고 이곳에서 계속 운동할지 말지를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남자는 그냥 직진이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쓸 수 있는 카드를 굳이 안 쓸 필요는 없지요, 암튼 오늘 집 근처 체육관에서 무료 체험 수업을 하고 왔습니다. 10:30~11:30까지 이어진 수업에서 땀을 흠뻑 쏟고 났더니 상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평상시 이 시간에 그냥 집에 있었다면 빈둥거리며 지냈을 시간이지만 운동하고 났더니 뿌듯함이 남습니다. 역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 맞습니다.


수업은 이렇게 진행됐습니다. 수업 시작 5분 전 체육관에 가니 코치님이 계시더군요, 오늘 무료체험 때문에 왔다고 하니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한 분, 한 분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수강생 5명의 권투 수업이 진행됐습니다. 간단한 스트레칭 10분을 시작으로 원, 왼손 훅, 투 그리고 왼쪽 15도 방향으로 자세를 바꾸는 스위치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코치님은 수강생들이 연습하는 동안 돌아다니며 미트를 받아주거나 자세에 대한 설명과 교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배운 동작으로 샌드백을 치는 연습을 했습니다. 수업한 지 30분이 경과할 시점 체력훈련이 시작됐습니다. 달리기를 거의 하진 못했지만 운동은 쉬지 않았기에 내심 자신 있었습니다. 뭐, 얼마나 힘들겠어했는데 끝나고 나니 거친 숨을 몰아쉬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케틀벨을 가슴 높이로 들고 스쿼트 1분 → 케틀벨 스윙 1분 → 푸시업 후 양손 어깨 터치 1분 → 마운틴 클라이머 1분 → 다시 케틀벨 스윙 1분 총 3세트를 진행하는 동안 코치님은 수강생들을 살피며 "힘든 사람들은 잠시 쉬셔도 됩니다.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혹시나 아픈 동작이 있다면 하지 마세요"란 말을 했습니다. 코치님이 중간중간 파이팅을 외치는 말에 아무도 답이 없자 결국엔 제가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네요, 숨이 턱까지 차니 예전 힘들게 운동했었던 17년 전의 극진가라데 도장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체력훈련이 끝나고 마무리로 스트레칭을 하며 1시간이 마무리됐습니다.


8년의 휴식을 끝내고 권투를 다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몸과 마음이 게을러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했는데 권투로 해이해진 몸과 마음을 조이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나이에 권투 해서 뭐 하냐는 분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맞습니다. 만 나이 47살에 열심히 권투 한다고 해서 파퀴아오나 게네디 골로프킨이 되진 못합니다. 대신 원투를 날린 후 사각으로 몸을 움직이며 3라운드를 링 위에서 보낼 수는 있습니다. 3라운드를 지치지 않고 상대를 몰아붙이며 공격, 수비할 수 있는 정도라면 제 직업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난 내 마음속의 복서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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