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다
뇌암, 전이성 뇌종양, 폐암
아버지는 건강한 편이었다. 172cm의 키에 72kg 몸무게를 내가 알기로만 40년 가까이 꾸준하게 유지하신 분이었다. 지금은 만 75세의 나이 때문에 60kg 후반의 몸무게로 살이 빠졌지만 최근 몇 년간은 소방관인 나보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하셨다. 어쩌다 한 번씩 전화할 때면 “헬스장이다, 등산 중이다” 말씀하셨고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보다는 밖에 나가 문중 일을 도와주시는 등 워낙 활달하게 움직이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원래 이런 분이니까 건강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하며 마음을 놓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 이번 설 때쯤이었다.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치매 초기 증상이 있는 것 같으니 한 번 검사를 해봐야겠다, 너도 아버지께 자주 전화드리라는 내용이었다. 그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별일 아니겠지 생각했다. 누나와 통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전화기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편이 아니어서 그냥 간단한 안부만 물었다. 출동 나갈 때마다 조심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그냥 평소와 똑같이 네라고 답했다.
2월 20일, 누나와 막냇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치매 관련 검사를 받았다. 진료 결과 치매가 아니며 뇌혈관도 깨끗한 상태라고 했다. 다만 노인 우울증이 의심되니 약을 먹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말이 나왔다고 전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건강은 여전히 아무 문제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쌍둥이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실종신고를 어찌해야 하는지 내게 물었다. 아버지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가족들이 여러 차례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거나 통화가 연결된 후에도 아버지가 현재 위치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럴 경우엔 경찰이나 소방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얘기하면 바로 위치추적이 되고 양쪽 기관에서 모두 출동해 실종된 사람을 찾는다고 말해주었다. 다행히 동생이 실종신고를 하기 전 극적으로 아버지를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아 사건이 종결되는 듯했다.
사정을 알고 보니 아버지의 건강이 한순간에 악화되어 갑작스레 인지기능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현재 계신 곳이 어디인지 설명할 수 없었고 가족들이랑 전화를 하면서도 사업상 누구를 만나러 간다, 누구에게 받을 서류가 있다, 목포에서 일하는 동생을 만나러 간다는 등의 여러 얘기를 하는 등 횡설수설하셨다. 그때까지 온 가족은 모두 아버지가 치매 때문에 그런 걸로만 알았다.
누나가 말하길 21일 오전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아버지는 혼자서 5~6시간 동안 18,000보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몇 시간 동안 계속 배회하고 있는 아버지를 본 아파트 경비원(정말 감사하다. 이분이 아니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버지를 불러다 경비실 안쪽에 앉혀놓은 뒤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에서는 아버지를 인계받아 지구대에 모셔놓은 뒤 보호자인 누나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누나와 여동생(막내)은 혹시 몰라 00 병원 응급실로 아버지를 모셔가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의사는 아버지가 암 말기이며 머릿속에 종양이 세 개나 있다는 사실을 가족인 막내에게 알렸고(이 대목에서 또 다른 얘기가 있음, 길어지니 다음 글을 쓸 때 다시 쓰겠음) 큰 병원에서 진료받을 것을 권했다고 한다.
아버지 지인의 도움으로 3일 만인 2월 24일 아버지는 00 지역의 최상급 의료기관인 00 병원에서 관련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바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복부와 흉부 CT 검사에서는 특이사항이 없었으나 아마도 암이 시작된 곳은 폐나 뇌 쪽으로 의심이 된다고 했다. 폐에서 시작됐다면 크기가 너무 작아 판독이 어려웠을 것이고(그럴 경우 진단명은 폐암 및 전이성 뇌종양) 뇌에서 시작된 경우라면 뇌암이라고 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27일 종양 조직 검사를 할 텐데 결과는 최대 2주일 안에 나온다고 했다. 어쨌든 아버지는 한순간에 말기 암 환자가 되어 버렸다.
소식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고향으로 내려갔다. 병원 정책 상 병실에는 보호자 1명만 들어갈 수 있으나 다행히 1층 로비에는 가족들이 면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도중 아이들은 동탄 처갓집에 맡겨놓은 채 아내랑 단둘이 6시간 걸려 아버지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누나의 말로는 며칠간 누나 집에서 평안히 계시던 것과는 달리 입원한 이후부터 상태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어제 저녁에는 갑자기 섬망 증세로 인해 소리를 지르고 병실 밖으로 나가려고 해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이젠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할 수 없다. 머리에 생긴 종양 때문에 횡설수설하고 내가 옆에 있는데도 누구인지 못 알아보기도 한다. 옆에 있는 사람과 잘 얘기하다가도 순간 다른 얘기를 하고 있으며 대소변 실수를 할 때도 있다. 마치 몸만 여기 있고 마음은 비어버린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지금까지 봐왔던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래도 마지막은 아름답게 이별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젠 그저 한 사람의 암 환자로,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마지막을 준비하셔야 되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누나와 여동생은 펑펑 울었고 남동생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냥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내게 닥친 이 일은 현실이 아니고 영화가 끝나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런 느낌이다. 그냥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리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마음이 이를 못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라도 글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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