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해달 haedal
Feb 15. 2021
Day 22 어서 와, 브리타
우여곡절 생애 첫 정수기
드디어 브리타를 집에 들였다.
물 맛에 예민한 남편은 정수기를 못미더워했고 제주 삼다수만 십 수년간 마셔왔다. 삼다수로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커피도 내려 마시고, 얼음도 만들고, 그냥도 마시고... 대안을 찾지 못해 본의 아니게 말도 안 되는 물 호사를 누려왔다.
날로 증가하던 플라스틱 사용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언택트 배달 음식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 위생용 일회용품은 당장 어쩔 수 없다면, 물론 이 분야도 대안을 얼른 찾아야 하지만, 그 외 부분에서는 줄여야 하겠기에, 내가 먼저, 그리고 나라도 플라스틱을 더 줄여야겠다 싶었다.
그러던 차에, 저탄소 플라스틱 용기 사용의 문을 활짝 연 산수 몰의 생수를 발견하게 되어 그 회사의 이익을 높여주기 위해 온라인 종합쇼핑몰을 거치지 않고 생산업체가 운영하는 온라인몰에 가입하고 주문했다. 더 마음에 든 것은, 이 업체에서는 페트병을 회수해간다고 했다. 정기 배달을 신청했더니 회수 옵션이 있었고, 다음 배달일이 되니 하얀 비닐이 같이 놓여있었다. 거기에 생수병을 넣어주면 회수하겠다는 사인이었다.
플라스틱 생수병 회수에 또 비닐, 플라스틱이 사용된다...
새 비닐이 다음 배달 때 또 도착해 있었다.... 좀 우울해졌다.
게다가 페트병은 그대로 새로운 원료로 가공해 재활용한다고 했을 때, 플라스틱과 식물성 원료가 섞여 있는 건, 이 업체에서 회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재활용될지 궁금해졌다. 라벨은 땅에 묻으면 생분해된다고 했다. 그런데 금방 먹는 2리터 생수병의 라벨, 이걸 버린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다.
그러던 중,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저탄소 일회용 생수병 등 저탄소 친환경 제품도 결국은 사람이나 동물이 먹을 옥수수 등의 곡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거기에는 또 얼마나 많은 경작지가 개간되어야 할 것이냐는, 결국은 자원 소모가 크다는 견해를 유튜브에서 듣고는 이것도 어쨌든 일회용이니 대안이 아니다 결론이 났다.
그래서,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어 생수 주문을 줄이고, 대신 삶아도 되는 트라이탄 소재의 투명 물병에 참숯을 물에 끓여 소독한 후 또 햇빛에도 말려 자외선 소독까지 하고서 넣고, 수돗물을 받아서 정수를 했다. 숯의 효과는 정말 대단한 것이 삼다수만큼은 못해도 수돗물의 흔적은 오간데 없었다.
종종 물병을 소독하고, 한 번씩 숯도 햇빛에 말리기도 하고, 끓는 물에 소독하고, 수돗물을 초반에는 좀 흘려보내다가 받아 정수하는 이 과정이,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어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커피를 내리는 촘촘한 레이저 타공 필터에도 숯의 미세한 검은 가루가 점점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큰 가루는 가라 앉히고 커피용 스텐 필터를 사용해 조용히 따러내어도 보일 듯 말 듯 미세한 숯가루가 어느 날 보니 컵 아랫부분에 조금 침전되어 있었다.
그래서, 바로 브리타를 주문했다.
브리타를 알게 된 건 몇 년 전이다. 환경 관련 베스트셀러 책 한 권에 브리타 정수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심플하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정수 효과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브리타 정수기도 플라스틱이고, 결정적으로 플라스틱 여과기를 교체해 주어야 했다. 그래서 사용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써 보니, 기대 이상으로 물 맛이 좋았다.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말,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브리타로 신세계가 열렸다!
무엇보다, 페트병과 플라스틱 뚜껑과 재활용 안 되는 라벨과 이 모두를 포장하는 비닐 플라스틱으로부터 놓여나서 너무나 기쁘다. 여과기에 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점은 차차 해결해나가기로 하고. 이와 관련해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기에 나도 동참해야지 마음 먹고.
또 매번 생수가 너무 무거워 배송 기사님들께 너무 죄송했는데, 그래서 생각 없이 2팩 주문하던 걸 그나마 1팩으로 줄이는 정도의 노력에 그쳤는데, 이제는 그 죄책감에서도 놓여날 수 있다. 계속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거주해서 그나마 덜 죄송한 정도. 무거운 물건, 부피가 큰 물건은 배달 가중료를 부과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자본주의적) 관습 아래 큰 신세를 졌다.
그동안 무거운 생수병 운반해주신 배송 기사님,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