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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Feb 18. 2021

Day 25 굿바이 홈런볼

과자와 플라스틱


즐겨 먹었던 과자 중에 '홈런볼'이 있다.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볼 만큼 야구를 즐기지는 않지만, 홈런볼은 좋아했다.


초콜릿은 너무 쎄고 파이는 퍽퍽하게 느껴질 때, 미니 페스튜리 같은 밀가루 반죽으로 감싼 오븐에 구운 초코볼같은 홈런볼은 훌륭한 간식이 되어 주었다.


한국인들의 음식 사랑은 그 어떤 먹을 거리도 냅두지 않고 창의적으로 변형하곤 한다. 와플에 온갖 것을 조리해 신세계를 열어 젖히는 사례를 인터넷에서 보고 역시 싶었다. 와플기기는 구한말 고종의 거처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어제 우연히 발견한 건 홈런볼을 에어 프라이에 간단히 데워 먹는 것이었다. 맞아, 그러면 갓 구운 파이 같이 맛있겠다. 싶었다.


며칠 전, 남편이 집에 들어가는 길에 뭐 사다줄거 있냐고 해서 새우깡과 오징어 땅콩과 에이스와 홈런볼을 사다 달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달달구리한 것과 (아직은 마시고 있는) 커피와 같이 먹을 수 있는 비스킷은 한번씩 먹고 싶어진다. 또 새우깡과 오징어 땅콩은 맥주 심플 안주로 가끔 즐기고 있다. 에이스는 대학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의 단짝으로 즐겨 먹다보니 이후에도 한 번씩 생각이 나고 새우깡과 오징어 땅콩 역시 그냥 먹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술이 아주 조금씩 늘면서 안주로 더 즐기게 되었다. 커피와 맥주가 없으면 그냥은 요청되지 않는. 이들은 플라스틱 속 용기가 없어서 마음의 부담이 덜하다.


홈런볼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마도 슈크림 볼과 초콜릿이 동시에 생각 난 모양이다. 홈런볼은 초콜릿이 들어 있어서 우유도 커피도 괜찮다. 에이스나 새우깡처럼 장수 상품이라면 아마도 우리 아이가 꼬맹이일때도 사서 간식으로 우유와 함께 주기도 했을 듯한 과자.



가끔 가까운 곳에 있는 여의도 IFC몰에 영화를 보러 가곤 했는데, 물론 코로나 이전, 참고로 여의도 CGV는 유럽 거리를 컨셉으로 공간을 장식하고 시설도 좋아서 찾아갈 만한 복합 상영관 중 하나이다, 맛있는 먹을 거리를 파는 가게도 많이 입점되어 있다. 그 중 슈크림볼을 테마로 하는 가게가 있는데, 일반 백화점이나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슈크림볼보다 훨씬 크고 맛있다. 이거 하나에 커피 한 잔이면 가벼운 한 끼가 될 정도이다. 아마 그게 무의식에서 꿈틀했던 모양이다. 작년 한 해, IFC몰에 발길을 끊었으니까.


IFC몰 옆은 올 봄 준공, 여의도의 새로운 명소가 될 PARK ONE과 새 현대백화점 개장 준비에 한장이다. 이들 건물의 설계는,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퐁피두 미술관을 설계한 분의 마지막 설계작이어서 기대가 된다. 집에서도 멀리 베란다 창을 통해 보이고, 근처에 가면 붉은 기둥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그 디자인에 대해서는 호 불호가 많이 갈린다고.


다시 홈런볼로 돌아와서, 이제는 홈런볼을 떠나보내려 한다.


사실 홈런볼을 사먹지 않은 지 꽤 되었다. 홈런볼을 사면, 비닐 봉지 안에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홈런볼의 형태 유지를 위한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기억에 한때는 스티로폼 복합 재질(가물가물)이기도 했었다. 이번에,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집에 온 홈런볼 한 봉지 찬찬히 살펴보니 속 용기는 스티로폼은 아닌 플라스틱 재질이었다. 맛있게 잘 만든 간식이지만, 플라스틱 용기가 있는 이 과자는 소비하지 않기. 비닐 포장도 살펴보니 OTHER. 생필품이 아닌 간식이기에 삼진 아웃.


플라스틱  PP 라고 되어 있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 IFC몰에 영화를 보러가게 되면, 그 작은 슈크림볼 가게에 가서 반은 막혀있고 반은 트여있는 손바닥만한 초종이에 쏙 들어가는 큼직하고 맛있는 볼 하나를, 텀블러 챙겨가서 오랜만에 커피와 함께 사먹어야지. 그동안 망하지 않아야 할텐데, 그 작은 가게.



송별시


굿바이, 홈런볼.

나는 니가 변하길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알게 되었는데

너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더구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더니,

생각도 많이 안 났어.


굿바이, 홈런볼

그동안 맛있었어.

굿바이 홈런이 될 거 같네.


어쩌다 마트에서 동네 수퍼에서 편의점에서

스치듯 우연히

지나갈 수는 있겠지만, 영화 중경살림에서처럼,


이제는 안녕.

굿바이, 홈런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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