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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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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Sep 29. 2021

무기력은 어디에서 솟아난 걸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하고 싶다. 집 정리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네일아트도 운동도 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게 다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내 기준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누워서 폰을 보는 것이다) 그저 누워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다.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 좋을탠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이런 게으름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성인이 되고 나서 줄곧 이런 게으른 상태인 것 같다. 해야 할 것은 많은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돌보아야 할 어린 자녀가 있고, 아기보다는 나의 도움이 덜 필요하지만 그래도 내 도움이 필요한 남편이 있다. 아침에 남편의 샤워 소리에 눈을 뜨면 삐쩍 거리며 최대한 누워있다가, 남편 출근 10분 전에야 일어나 남편 도시락을 쌌다. 도시락을 모두 준비한 후에도 남편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잠자리에 누워 누운 채로 남편을 마중하곤 했다. 그렇게 누워있다가 아이가 으앙-하고 울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누워있다 최대한 늦게 일어나 아이를 보러 갔다. 정신없는 오전 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낮잠이 들면 나는 모든 것을 제쳐놓고 누웠다. 짧은 낮잠이 끝나면 아이의 점심을 준비하고 30분 동안 먹이고 더러워진 주변을 치웠다. 그러고 나면 두세 시, 또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5시에 남편이 오면 아기 밥과 어른 밥을 동시에 준비한다. 손이 느려 밥상을 준비하는데 한 시간여가 걸렸다. 남편과 나 따로 밥을 먹고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 아기 밥을 먹이고, 다시 씻기고, 치우기를 반복. 목욕을 시키고, 입히고, 바르고, 남편이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면 나는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한다.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의 설거지가 끝나면 9시에서 10시가 된다. 의욕이 넘칠 때 나는 그 시간에 운동을 하고 글을 썼다. 무기력이 온몸을 지배해버린 나는 침대에 눕기를 택한다. 그렇게 부지런한 나는 대체 누구였더라. 해야 할 일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내일…. 또 내일 하며 미뤄본다.

 무기력에서 벗어난 건 아이러니하게도 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한 뒤였다. 마감기한이 있는 글쓰기를 해야 해서 부담스러웠는데, 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고 또다시 내 글을 쓰고 싶다. 그 일을 처리해서 벗어난 건지, 때가 되어 끝난 건지 모르겠지만 무기력해진 지 10일째, 드디어 무기력에서 벗어났다.


 나는 내일 또 무기력해질지도 모른다. 무기력하고, 다시 의욕이 넘치기를 반복하는 게 내 일상이니깐. 무기력이 찾아오면 우선 침착하고 이 감정도 지나가리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 순간 그런 마음을 가지기는 어렵다. 무기력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짧고 가늘게 머물다 떠나기를.

정말 누워있을 때의 나 같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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