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한 휴가 Nov 13. 2022

알마의 독버섯이 레이놀즈의 랍상을 만났을 때.

<팬텀 스레드> 속 레이놀즈의 랍상소우총을 회상하며.


런던 외곽. 엄격하고 결벽적인 의상 디자이너 레이놀즈 우드콕(다니엘 데이 루이스)이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서빙을 하러 주방에서 나오던 여인 알마(비키 크리엡스)는 그와 눈이 마주치 순간 발을 헛디뎌 넘어뻔한다. 멋쩍어하는 그들은 또 눈이 마주치 볼이 발그레해져  홀을 돌아 주방으로 돌아가는 중에 다시 한번 눈이 마주친다. 알마와 레이놀즈는 그렇게 만난다.



홀에서 그녀가 사라진 사이 그는 참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누구보다 예민한 그는 마음속에 생긴 변화를 이내 알아차린다. 자신이 구축한 완무결한 세계에 허락도 없이 발을 들여놓 모습을 감춘 그녀를 이미 그리워하고 있음에 놀라고 더 이상 1분 전 그녀를 몰랐던 과거 자 돌아갈 수 없음에 당황한다.



주방에서 다시 나온 여인 메모지를 들고 주문을 받기 위해 그의 테이블로 서서히 다가다. 마치 ''라는 대지에 생긴 모든 미세한 균열 알고 있다는 듯이. 지에 적힌 오늘의 날짜 이후 그 삶이 전혀 다른 습이 될거라는듯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는 듯이. 그렇다면 '배고픈 소년' 레이놀즈는 오늘 무엇이 먹고 싶을까?



레이놀즈와 알마의 첫 만남.



알마-뭘 드시겠어요?

레이놀즈-치즈 토스트, 수란은 너무 흐물거리지 않게, 베이컨, 소시지, 스콘, 버터, 크림, 잼, 딸기 잼 말고
알마-라즈베리 잼 괜찮으세요?
레이놀즈-그리고 또 뭐 말해야 하죠?
알마-커피 차 중에 뭘 하시겠어요?
레이놀즈-랍상있죠? 상 줘요.




 침 식사에 올라온 콤한 빵과 그의 애정과 관심을 대놓고 호소하는 한 여자를 내팽개치고 런던을 떠나온  대략 2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조곤조곤 문을 열거한다. 그가 섭씨 60도 가리키는 온도계가 꽂힌 데운 우유를 곁들인 커피나 0.2센티미터 이내 얇게 자르되 씨는 절대 박혀있지 않은 레몬을 곁들인 홍차를 가져다 달라는 밥맛 떨어지는 요구 했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 다. 수란은 너무 흐물거리지 말아야 하며 스콘에 곁들일 잼은 딸기잼만 아니면 된. 이쯤 되면 양호하다.  커피랑 차 중에 고르라니 굳이 콕 집어서 랍상이다.



 아침부터 말다툼할 정신없으니깐 그 입 좀 다물라고 말하며 자신의 차를 유유히 들이키는 중의 레이놀즈


랍상소우총은 국 푸젠성 우이산에서 재배되는 정산소종이 그 기원이다. 정산소종의 특유의 은은한 훈연 향기가 오랜 기간 운반하는 과정에서 달아나 버리 인위적으로 향 더 서 팔게 된 입산소종의 영어식 이름다. 젠성 등지의 방언일 수도 있지만 입산소종을 광둥어 병음로 읽으면 얼추 랍소우총이 . 정산소종 베르가못 향을 입힌 것이 또 얼그레이가 되었다고 하니 얼그레이와 랍상소우총은 어떻게 보면 그 뿌리가 같다. 아무튼 이 정산소종은 생산량이 많지 않은 고급 홍차였고 늘어나는 수요에 맞추려니 우이산 이외의 지역에서 재배되는 차에도 너도나도 송연 향을 입기 시작한다. 급기야 향이 진하면 진할수록 상품가치가 더 높아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유럽의 왕실은 물론 영국의 최상류 층 고객만 상대했던 특급 디자이너 레이놀즈의 홍차 취향도 조금은 납득이 간다.



랍상을 우렸을때의 주홍빛 수색은 짓궂 표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쇳조각 주변에 연하게 번지는 중의 녹물을 연상시킨다. 그 녹물에서는 또 약간 고무 타이어 타는 듯한 냄새가 나는데 이 가학적인 향기가 딱풀 냄새나 축축한 지하실 냄새처럼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차가 담겨있던 틴케이스에 다른 향기의 차를 아무리 담아도 랍상의 흔적 쉽게 지워지지 않을 만큼 그의 향은 독보적이다.  



우아하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아침 식사.


식당에서 레이놀즈는 소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기름진 음식들을 주문한다. 입속에 남은 바삭하게 탄 베이컨과 짭조름한 영국의 소시지와 느끼한 치즈 토스트의 맛을 말끔히 씻어내고 스콘과 시큼 달달한 라즈베리 잼으로 고상하게 옮가려는 그에게 랍상의 개성 있는 훈연 향은 탁월한 선택이다.



사실 랍상소우총이란 차가 뭐 그리 대수라고 이 차를 즐기는 사람은 레이놀즈 말고도 당시 영국엔 차고 넘쳤을 거다. 하지만 평범한 단어들의 나열 속에서 독특한 고유 명사 하나가 빛을 발했다면 작가가 레이놀즈의 아침 메뉴에 굳이 랍상을 구겨 넣어야 했던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어떤 취향이 얼마나 고급스럽고 독특한가를 떠나서 하나의 취향은 우리의 특질이 되고 무기가 되어 결국 권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레이놀즈는 그 누구와도 자신의 주물 주전자를 공유하지 않는다.



모든 식사 장면들이 풍성하고 아늑하다. 매번 레이놀즈가 거의 왕좌에 앉아 있는 듯 하지만



레이놀즈는 아마 어릴 때부터 그렇게 먹었나 보다. 엄마 딸기잼이 싫은 아들을 위해 동구 밖까지 나가서 다른 잼을 사 오곤 했으며 너무 묽은 노른자를 싫어하는 아들 때문에 수십 번 수란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반찬투정을 한다고 결코 몰아붙이지 않고 자식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려 깊은 엄마 밑에서 자랐나 보다. 엄마를 일찍 의고 누이와 함께 사는 지금도 누이는 웬만해선 레이놀즈와 충돌하지 않는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항상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구도 그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를 압도하는 자아를 드러내는 순간 그 균형은 처참하게 깨진다. 이놀즈는 그런 불균형의 상태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고 주문을 받아  알마를 온 정성을 다해 쳐다본. 레이놀즈는 주문을 기억하겠냐며 사뭇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그녀에게서 주문지를 빼앗는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 고스란히 기록된 아침 메뉴가 적힌 쪽지 간직하고 싶은 남자라니 로맨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미묘하게 퇴폐적이지 않은가. 남자는 드디어 자신의 취향이 완벽하게 구현된 아침을 함께 할 여인, 이 탐욕스러운 아침 식사처럼 그가 원하는 것은 다 줄 것 같은 여인을 만났다고 생각했을까. 음식을 주문할 뿐이며 음식을 먹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지만 이 장면들은 사뭇 관능적이다. 레이놀즈와 알마 사이에 오고 간 그들만의 은밀한 대화를 엿들은 기분이 든다.



지만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가 알마에게서 결핍된 모성애를 채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세계에서 또 다른 취향의 탑을 쌓고 있는 보통의 인간일 뿐이란 것을 간과다. 레이놀즈는 차 따르는 소리가 요란하다고 타박하고 빵 부스럭거리면서 먹는다고 다 큰 사람의 밥상머리 교육에 여념이 없는 남자이며 아스파라거스를 기름 대신 버터에 버무린 것 따위로 기분이 나빠져서 하루를 망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취향을 검증된 특허처럼 여기는 그이지만 알마는 의외로 물러서지 않는다.



레이놀즈는 항상 저 식당의 저 자리에만 앉고 싶은가보다.



세상에 없는 것이 취향 없는 사람지만 모두가 자신의 취향을 무기로 쓰진 않는다. 레이놀즈는 견고한 취향을 가진 동시에 그 취향으로 타인을 정복하고 속박하려는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비를 좀 맞더라도 고 갑갑한 그의 취향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사실 그는 겉보기에도 꽤나 멋진 사람이다. 까다롭고 괴팍하지만 뼛속부터 예술가인 그를 조금이라도 견뎌내서 그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왠지 모종의 성취감을 느낄 것 만 같은 환상을 준다. 은 여인들이 런 이유로 겨우겨우 버티지만 결국은 그를 이겨내지 못하고 떠난다. 하지만 알마는 좀 다르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우산 아래에 꿋꿋이 아서 그와 함께 우산을 거머쥐고 당당히 빗속을 걷는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할 때는 자신의 원칙을 내세우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상대를 못 견뎌하는 대신 타인에게도 자신을 견뎌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레이놀즈와의 관계에서의 지분을 조금씩 넓혀간다. 알마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레이놀즈를 사랑하고 지배하고 굴복시키고 싶다.



잘게 다진 버섯을 옮겨 담는 알마.



레이놀즈 강박적 성향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사실 레이놀즈 그 자신이다. 알마는 그런 고통으로부터 그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자신이라고 생각 그를 구원하다는 계획을 세운다. 숲 속에서 채집한 독버섯을 잘게 다져 그의 차에 섞는다. 죽지 않을 만큼의 독버섯을 먹고 병들어 신음하는 레이놀즈 앞에 죽은 엄마의 형상이 나타알마는 어린아이가 돼버린 그를 극진히 간호한다. 레이놀즈는 나중에 독버섯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음식에 버섯을 섞는 알마를 그냥 내버려 둔다. 레이놀즈는 자신의 취향과 고집,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모든 강박과 욕망에서 곧 자유로워질 것임을 기대하며 요리하는 알마의 뒷모습을 그저 응시한다. 그리고 순순히 독버섯이 든 오믈렛을 삼킨다.



랍상의 향이 독버섯의 향을 압도했을지는 모르지만 버섯의 독성은 이미 레이놀즈의 곳곳으로 스며들어간 후이다.



레이놀즈의 고상한 랍상 알마의 독버섯 만나면서 그들 사이의 팽팽했던 균형은 깨진다. 레이놀즈는 독버섯을 고 나서야  인은 물론 자신을 구속하 취향과 원칙이라는 독으로부터 구원받는다. 상차를 마실 때마다 늘 레이놀즈와 알마를 생각하며 의 어떤  혹은 규율을 떠올려본다. 누군가는 지금도 나의 어떤 약한 성향과 취향을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는 누군가에게 많이 견뎌지고 이해받고 사랑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 그런 생각과 타협이 되었기 때문에 레이놀즈는 알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알마의 버섯을 서서히 삼킬 수 있었다. 그러니 순간순간 고집스러운 염소뿔이 삐져나오기 직전에 정신 차려야한다. 우리는 여러모로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아무도 고약한 우리에게 독버섯을 먹일 생각을 하지 않은 것과 독버섯을 먹여서라도 무너뜨리고 싶은 고집스럽고 불편한 파트너를 가지지 않았다는 그 두 사실에.



독버섯 오믈렛을 삼킨 레이놀즈는 내가 앓아눕기 전에 키스해달라고 말한다. 레이놀즈의 눈빛이 낭만과 호러와 에로는 한끗차이라고 말하는듯 하다.


알마가 온전히 레이놀즈를 증오하는 감정으로 충만했고 그런 알마를 견딜 수 없는 레이놀즈였다면 이 장면은 의자에 밧줄로 그를 묶어놓고 꽉 다문 입을 벌려 버섯을 욱여넣는 식이 되었을 거다. 그랬다면 아마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던 미저리 같은 공포 영화가 되었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를 향한 믿음과 사랑, 이제는 좀 편해지고 싶은 간절한 욕망으로 독버섯을 씹는 레이놀즈의 모습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인다. 랑하는 사람에게 독버섯을 먹이는 이 러브 스토리가 한편으론 기괴하지만 분히 로맨틱한 이유이다. 레이놀즈와 알마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그들의 풍성했던 영국식 아침을 조만간 차려먹어야겠다. 랍상과 함께.

                     



.

                    


작가의 이전글 모카포트를 들고 다니는 뉴욕의 이방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