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리 Mar 26. 2022

왜 나는 매번 속는 걸까?
알면서도 당하는 이유

사람을 믿는게 잘못인가요?

"저기, 아가씨 잠시만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지금 지갑이랑 핸드폰이랑 다 잃어버려서 그런데 대구 내려갈 돈이 없어서요. 부대 면회 왔는데, 지금 돈이 아예 없어요. 내가 내려가면 바로 부쳐줄게. "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분이 지나가던 나를 세우고서는 땀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누군가 나에게 길에서 말 걸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적이 분명한 사이비이거나 봉사 단체, 불우 이웃이었기에 모른 척 지나갔었다. 이번에는 잠깐 타이밍을 놓쳐서 우두커니 서 버렸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길에서 말을 거는 사람들을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야지 다짐했건만 또, 그걸 듣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사기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나는 나름대로의 머리를 굴려 전화기를 빌려줄 테니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돈을 송금해달라고 요청하면 제가 기꺼이 전달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역시나 또, 속았음을 깨닫게 해주는 대답. 


"지금 핸드폰도 없어서 전화번호도 없어요. 그럴 사람이 없어요." 

"그럼, 집에 전화해보세요. 집 전화번호는 외우실 거 아녜요? " 

"다들 해외에 나가 있어서 안돼요." 

"아, 그럼 저는 도와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예전의 나 같았으면 내가 속는 걸지도 몰라 생각하며 KTX를 끊을 돈을 빌려줬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조금은 그 아저씨가 진짜로 핸드폰, 지갑을 모두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서른 살의 내가 낯선 타인에 대해 베푸는 배려는 거기까지였다. 들어주는 것. 그리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경험은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20살 초반쯤, 명동 한복판에서 대구에서 올라온 관광객 인척 길을 물어보는 여자 2명에게 길을 안내해주었다. 그들은 고맙다며 자신들이 답례로 자신들이 요즘 기에 대해 배우고 있어서 나를 분석해 주겠다고 했다. 이럴 때가 아닌데 하면서도 순순히 카페에 같이 가서 배가 고프다길래 커피와 빵을 사주었다. 그들이 얘기를 한참 듣다 보니 앞으로의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공양을 드려야 하기에 오늘 같이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거였다. 처음엔 긴가민가해서 따라갔지만, 나중에는 차마 거절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들이 지쳐서 간다고 할 때까지 들어주던 때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 후로부터 10년이 지난 그동안 몇 번의 사기를 당할 뻔했다. 차곡히 쌓인 낯선 이에 대한 불신으로 그때처럼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다 믿지는 않는다. 요즘 사회에서 낯선 누군가를 믿는 것은 어렵다. 특히, 뉴스에서 흉흉한 소식을 들을 때면 새로운 사람은 1순위 경계 대상이 된다.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 사건의 경우를 보았을 때도 낯선 곳,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것이 불리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모두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사기를 당하거나 피라미드에 연루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을 잘 믿었을 뿐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면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거는 행위 자체가 참 무섭다. 그렇지만 누가 말을 걸게 되면 우선은 멈춰 서서 들어본다. 그러면 왜 이상한 걸 알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냐고 물을 수 있겠다.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혹시 모르니까? 누군가 얘기를 하면 듣는 게 익숙한 사람이어서 그럴 수 도 있고, 그저 듣고 내가 판단하고 싶을 뿐이기 때문일 수 도 있다. 물론, 판단이 느릴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지만. 다 듣고서 판단하고 나면 우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했다는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을 수 있다.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호의를 베풀 수 있어서 좋다. 마지막으로 내 신념을 지킬 수 있다. 누구에게든 선입견, 편견을 갖고 바라보지 말자.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의심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믿지도 않는 길을 택했다.  


나는 누군가를 잘 믿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판단하지 않을 뿐. 이게 나의 적정선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건 내가 부족하네 근데 뭐 어쩌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