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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Jul 21. 2018

교사 혐오의 시대

교사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

#.1
얼마 전에 청와대 청원으로 '교사의 41조 연수를 폐지해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에 동의하는 이가 어느새 5000명을 넘어섰다. 그들의 요지는 이 정도쯤인 것 같다.


- 방학에 일 안 하는 교사들에게 왜 월급을 주냐.

- 41조 연수 폐지하고 수업 외 업무를 모두 방학으로 다 돌려라.

- 41조 연수 폐지하지 않으려면 월급 주지 마라.


이번 청원뿐이랴. 교사 관련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기만 하면 댓글들이 온갖 험담으로 가득하다. 교육 현실에 대한 기사를 읽겠다고 클릭했다가 나를 비롯한 교사들을 향한, 날이 선 댓글들에 울컥해 눈시울을 붉혀본 경험이 자주 있다. 게다가 나는 전교조 가입 교사이니, 그 이유로 들어야 할 욕이 한 종류 더 있다. 이제는 교육 기사를 읽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청원 글을 읽으며 41조 연수와 관련된 사실들과 교사들이 평상시와 방학에 어떻게 지내는지 속속들이 밝히고 '팩트는 이러하다'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한 켠에 들었지만,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을 말해봤자,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 말이든 그들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판단할 뿐이니. 보지 말아야지, 듣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나를 공격하는 말들이 너무도 흔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눈으로, 내 귀로 자꾸 흘러든다. 어젯밤에도 청원 소식을 접하고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겨우겨우 가라앉혔다.


#.2

어제는 방학식이었다. 3교시 내내 교실을 뜨지 못하고 우리 반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성적 분석 자료를 만들어 일일이 상담을 하고, 한 학기동안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받은 사연을 받아 사비로 산 선물을 나누어 주고, '우리 반 친구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한 친구의 사연에 마음이 뭉클해져 반 친구들 모두에게 과자를 한 봉지씩 안겨 주었다. 방학식이 끝나 학생들을 귀가시키고 나서, 오전 내내 못 갔던 화장실을 다녀와 학부모님들께 한 학기동안 고생 많으셨다, 학생들에게 격려 많이 해주십사 메시지를 보냈다. 바쁘고 쉴 틈 없었지만 우리 반 친구들이 무사히 한 학기를 보냈다는 사실이 감사해서 행복했다. "방학 잘 지내!"라는 인사에 "네, 선생님도요!" 인사를 건네는 몇 친구의 말에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3

방학식이 끝나고 옆 반 담임이 학부모와 통화를 했다. 학생이 종례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 무단조퇴 처리를 해야할 것 같다는 용건이었다. 학부모는 '한번만 넘어가 줄 수 없느냐'고 애원했고, 담임은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적용해야 해서,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것 같다' 답변하였다. 결국 담임은 삼십 분 넘게 학부모가 분노하여 지껄이는 폭언을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교육자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애를 미워하는 거다, 왜 오라가라냐 당신이 와라, 지금 날 가르치려 드는 거냐... 그러다 점심 먹으러 가야한다는 한 마디 던지고 제멋대로 전화를 끊었다. 담임은 그 전화 때문에 이미 점심 시간을 넘긴 상황이었다. 그 학부모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그리고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옆에 앉아 있던 내가 다 듣고 울컥해 눈물이 났다. 특히 옆 반 담임이 전화를 끊고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인가봐."라며 우는데,  옆 반 담임이, 그리고 우리가 너무도 처연하고 안쓰러워서 함께 울었다.
옆 반 담임뿐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이고, 교사들은 누구나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해꼬지 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동료가 당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아니 당했다는 말만 전해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마음 속에 깊은 상처가 생기는 것 같다. 교사를 향한 모든 일들이, 그게 특정 교사 단 한 사람만을 겨냥한 일이었더라도 모두 나의 일인 것마냥 동일시하게 된다.


#.4

교사에 대한 평판이 바닥을 치고, 휴가 얘기만 나왔다 하면 이리저리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교사가 마주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점점 거칠어지는 이 마당에도 여전히 교사는 '가지고 싶은 직업' 목록 상위에 있다. 부모들은 교사라는 직업이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청원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자신의 자녀가 교사가 되길 바라는 이들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나의 귀한 제자들이 사범대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교사들이 늘어만 간다.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사 혐오'라는 말로도 속시원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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