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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Sep 18. 2020

부전공 연수를 앞두고

진로진학상담교사에 대한 단상

신규 발령을 받아 근무했던 첫 학교에서 진로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임용 시험을 보면서도 '진로진학상담'이라는 과목은 접해 본 적이 없었기에 과목 자체가 낯설었다. 선생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본래 영어 과목을 가르치셨고, 부전공 연수를 받아 과를 옮기신 분이라 했다. 신규인 나는 교과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신기했다. 진로 선생님과는 교무실을 함께 쓰지도 않았고 교류할 일이 없었기에 시간표에서나마 이름을 확인하는 정도였고, 내 관심도 거기까지였다.


진로진학 상담교사. 학교에서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진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진 자리.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2011년부터 “진로진학상담”교사 자격 신설> 중 (2011.01.14.)


하지만 학교 구성원들의 시각은 좀 달라 보인다. 교사들의 수를 조절하기 위한 장치랄까. 최근 학생 수와 학급 수의 감소, 과목의 폐지 등으로 갈 곳 잃어가는 교사들 신분 보장을 위한 자리가 '진로진학상담교사'라는 것이다. 교육당국이 표면적으로 '그 과목 선생님 필요 없으니까 전과해!'라고 드러내지는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가 보다 끄덕이곤 했다. 아무도 진로 교육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보였다. 실제로도 진로 교사로 전환한 교사들의 연령은 꽤 높은 편이고, 교과의 폐지나 교육상 어려움 때문에 전환했다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심지어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있는 경우가 많고.


찬찬히 생각해 본다. 학생이 줄어들어 교사들이 남는다. 교사당 학생 수를 줄이고,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면 해결된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든다. 특정 교과의 수요가 줄어든다. 강제로 교육과정에 특정 교과를 편성하게 강제할 수 없으니 고심이 깊어진다. 때마침 진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학문적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공교육 속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연구자들 사이에 형성된다. 그럼 진로 교과를 만들자. 진로 교과를 담당할 교사들이 필요하다. 사범대에 진로 교육과정을 만들 것인가? 아니다. 경험이 풍부한 기존 교사들이 전환을 하게 하자. 이 정도의 판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현장의 교사들에게까지 진로 교육의 필요성, 교과목으로서의 당위 같은 건 잘 전해지지 않는다. 진로 교육에의 공감대 형성이 먼저 필요했겠지만 그런 절차는 뒤로 밀려난다. 현장에는 '진로 교사 부전공 연수'라는 공문 하나만 송달될 뿐이었을 테다.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2011년부터 “진로진학상담”교사 자격 신설> 중 (2011.01.14.)


그렇담 교사들이 진로 교사로 전과하는 교사들을 향해 '어쩔 수 없으니까 옮긴다, 마지못해 옮긴다, 또는 일하기 싫어서 옮긴다'는 말까지 하는 건 비단 교사들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진로진학상담 교사를 우대한다며 내놓은 '수업 경감(주당 10시간 이하), 진로진학부장 배정 등'은 전문적인 진로 지도와 상담을 위한 필요조건일 것임에도 그저 '그들만을 위한 우대'로만 비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교과 수업과 상담을 겸해야 하는 자리이고, 상담 시간도 수업 시간으로 산정해 주는 것을 보면 수업 경감이 과연 메리트였을까, 상담교사에게 당연 필요한 부분이었을까.


매해 업무분장 시기만 되면 숱한 갈등과 좌절, 분노까지 겪는 현장에서, 이미 업무가 정해져 있고 수업 시수가 적어 보이는 진로 교사는 타 교사들의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으리라. "교사들 누구나 다 자기 아이들 좋은 학교 가고, 좋은 직업 갖게 하려고 상담하고 애쓰지. 누군가가 특별하게 해주어야 해? 그렇게 해줄 수는 있어?" 이런 말들이 떠돌고 있음을 잘 알기에 나는 원서를 들고 더더욱 갈등했던 것 같다. 나조차도, '쉽게 가자'를 모토로 삼은 듯 보이는 진로 교사를 만나게 되면 시기와 질투가 나게 마련이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진로 교사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도마 위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란 기분마저 들었다.


부전공을 앞두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일단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뭐가 되었든 해 보고 후회하자고 되뇌며 시작했다. 막상 출발선에 서니 두려움이 많이 든다. 그냥 평소대로 담임 맡은 학급 하나만 책임지면, 내게 주어진 업무만 적당히 소화하면 학교 안에서 크게 주목받을 일 없이 한 해 한 해 잘 날 텐데, 싶은 생각도 든다. 무엇을 위해, 굳이 내가 무엇을 원해 이 길을 가고 싶은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정리가 잘 안 된다. 그래서 결론은 아직 없다. 내 안의 무엇이 나를 이끌고 있는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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