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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Aug 05. 2020

왼손잡이

나를  설명하는 단어 ①


‘왼손잡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찰싹! 내 손등에 찰싹, 와 닿았다 금방 떨어진 한 늙은 여인의 손.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 한글 낱자들을 삐뚤빼뚤 쓰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손등을 찰싹 때리고서는 연필을 빼앗아 오른손에 쥐여 주던 선생님. 그분의 상식으로는 오른손이 ‘옳은 손’이었을 테고, 글씨를 바르게 배우게 하고 싶은 교사의 사명감으로 어린아이의 손등을 찰싹 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겠다 싶다. 하지만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데다 선생님으로부터 손등을 찰싹 맞으며 나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엄마는 선생님께 손수 편지를 써서 내게 전하게 하셨다. 편지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선생님은 그 일이 있는 후로 내 손등을 찰싹, 때리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한 해가 지나고 2학년이 되었다. 학기 초 나와 내 친구 ㅇ은 친구들이 집에 간 이후 교실에 남아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손등을 때리는 선생님은 없었지만, 방과 후에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며 또박또박 받아쓰기를 다 한 다음에야 집에 가게 해 주는 선생님이 생겼다. 한동안 방과 후에 친구와 단둘이 교실에 남아 원고지에 삐뚤빼뚤 글씨를 쓰던 기억이 난다. 혼자가 아니라 덜 외롭기는 했지만 나도 ㅇ도 원치 않게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은 몹시 좋지 않았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방과 후에 남지 않아도 되게 되었는데, 기억이 선명치는 않지만 이 역시 엄마의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 언젠가, 왼손에 쥔 색연필을 오른손에 다시 쥐여주신 적이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내게 오른손으로 쓰라고 말하거나 고치게끔 하신 적이 없었다. 엄마는 왼손으로 쓰는 나를 그대로 인정해 주셨다. 밥상을 차릴 때면 내 자리는 항상 티가 났다. 다른 식구들의 자리에는 가장 왼쪽에 밥이, 그 오른쪽에 국이, 제일 오른쪽에 수저가 놓여 있었지만 내 자리에는 수저가 제일 왼쪽에, 국이 왼쪽, 밥이 오른쪽에 놓여 있었다. 국을 먹는 데 불편하지 않게끔 배치를 바꾼 것이다. 양손잡이용 가위를 찾아 문구점에 갔던 때도 기억이 난다. 엄마는 '바른손' 문구점에서 양손잡이용 가위를 찾아 사 주셨다. 양손잡이용 가위는 일반 가위보다 비쌌지만, 엄마는 그 소비가 당연하다고 여기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16년. 왼손을 쓰면서 많은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연필이나 잉크 펜으로 글씨를 쓰면 항상 왼손 손날에는 글씨 자국이 까맣게 남았고, 가위는 굳이 양손잡이용 가위를 사서 쓰지 않으면 가위질하기가 어려웠다. 가위질을 하는 게 아니라 가위로 종이를 꾸깃꾸깃 접는 것만 같을 지경이었다. 오른손잡이용 팔받침이 있는 의자가 있는 대학 강의실에서는 허리를 비틀어 삐딱하게 앉아 필기를 해야 했다. 강의실 책상에 노트북을 올려놓으면 마우스를 놓고 쓸 공간도 없었다. 커터칼 하나 쓸 때도 오른손으로 칼날을 빼고 넣어야 사용할 수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식당에 가면 왼쪽 자리를 선점하려고 노력했다. 어쩌다 사람의 오른쪽에 앉게 되면 최대한 멀리 오른쪽으로 붙어서 밥을 먹었다. 내 팔이 왼쪽에 앉은 사람의 팔과 부딪치기라도 하면 숨도 안 쉬고 바로 '죄송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했다. (생각해보면 무턱대고 내가 죄송한 일이었을까. 오른손을 쓰는 사람이 편하게 밥을 먹지 못하게 만든 것이 죄송한가. 나는 편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고?)


이러한 물리적 불편은 부지기수로 많았지만, 사실은 이러한 불편이 내게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소수니까 그냥 잠깐 불편할 수 있지, 곧 바뀌겠지, 때로는 조금씩 바뀌는 것에 기뻐하며 살아왔다. 내게 불편한 것은 시선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가 다르다는 점이 내 인생 최대의 문제로 크게 느껴지던 어린 시절, 왼손잡이라서 받아야 했던 관심은 내게 결코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항상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기만 했다. 한글을 배울 때는 ‘오른손으로 바르게 쓰라’는 주문을 들어야 했다. 한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너 왼손잡이구나?”, “불편하겠다.”,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안 고쳐 주셨어?”, “오른손으로는 아예 못 써?”와 같은 관심을 받아야 했다.


내가 성인이 되었다고 달라질 리 없었다. 내가 왼손잡이인 것은 누구든 보고 지적하고 참견할 수 있는 소재이고, 그 덕분에 수많은 버전의 말들을 듣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오른손으로 잡고 글씨를 쓰라는 직접적인 지시만 없을 뿐이다.


"너 왼손잡이구나!" → 네, 보시는 바와 같이.

"불편하지 않아?" → 불편한 것도 있지만, 전 이런 시선과 말이 제일 불편해요.

"요즘은 왼손잡이가 참 많아." → 그래서요?

"왼손잡이는 창의력이 좋다던데." → 그런데요? 전 창의력이 없나 보죠?

"오른손으로도 쓸 줄 알아?", "밥은 오른손으로 먹어?" → 아뇨.

"오른손으로 쓸 줄 알아? 한 번 써 봐." → 전 당신에게 왼손으로 써 보라고 하지 않잖아요.

"부모님께 어렸을 때 많이 혼났겠다."  → 아뇨. 몇몇 선생님한테만 혼났어요.

"양손잡이가 되었으면 더 좋았겠다."  → 어쩌라고.


대체로 낯선 이들이 대화의 소재로 나의 왼손을 들먹이는 경우가 많다. 어색한 사이, 말할 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고, 나를 관찰하고 친해지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류의 말을 건네니, 나로서는 항상 나의 왼손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는 마주 앉은 낯선 당신에게 오른손이 불편하지 않느냐 묻거나 왼손으로 한 번 써 보라고 주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과 무언가가 다른 사람의 겉만 보고 그것을 소재 삼아 입밖에 내놓는 것은 얼마나 안일하고 쉬운 일인가.


세상은 느리지만 조금씩 바뀌어 왔다. 이제는 양손잡이용 가위를 찾아서 문구점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 가위는 대부분 양손을 쓰는 누구에게나 편리하도록 바뀌었다. 가위뿐일까. 생활 속 곳곳에서 조금씩 불편이 사라져 갈 거라 생각한다. 세상은 사람들의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고, 소수에게든 다수에게든 당연히 그렇게 바뀌어야 하니까 말이다.


이제는 내가 나를 설명하는 일을 덜 하고 싶다. 내가 왜 왼손잡이가 되었는지, 왼손잡이인데 과연 창의력은 좋은지, 왜 양손잡이가 되지 못한 것인지 설명하고 싶지 않다. 식탁에서 팔이 부딪쳐도 나 때문인 양 즉각적으로 '죄송하다' 하는 일도 줄이고 싶다. 내가 왼손잡이가 된 것은 내 탓이 아니며, 그리고 당신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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