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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Nov 19. 2020

참을 수 없는 메시지의 무거움

2020년 11월 18일

늦은 밤, 오늘도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메시지가 왔다. 차라리 아예 못 보고 자면 좋았으련만, 하필 친구와 연락한다고 계속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A: 선생님, 저희 학교 혹시 타투 되나요?
그냥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거예요.


이런 메시지가 오면 제일 처음 고민하게 되는 것은, 답을 해 줄까 말까이다. 그냥 답해주면 간단한데, 뭘 그리 고민이냐 묻는다면 내 나름 할 말은 있다. 첫째, 늦은 밤에는 누구에게든 긴급한 일이 아니라면 연락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몇 차례 당부하였다. 둘째, 경험상 당부를 무시하고 연락하는 학생들은 답변을 해 주면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비슷한 연락을 해 왔다. 셋째, 발신자를 확인하고 놀라 메시지를 확인했다가 별 일 아니라는 사실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이미 평온한 감정을 잃고야 말았다. 이런 이유로 답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단순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답을 안 해주기까지 하느냐 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학교가 아닌 직장에 근무하는 친구들은 퇴근 후에 오는 직장 상사의 전화나 메시지에 치를 떤다고 한다. 학교가 직장인 나는 상사 대신 학부모와 학생의 연락을 받게 되게 마련이다. 학교 일과가 모두 끝나고 퇴근을 한 후 한밤에 받는 연락은 반갑지 않다. 나도 퇴근 후면 교사로서의 삶을 잠시 접어두고 자연인 또는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시시각각 초를 다투는 긴급 상황에 연락이 오는 것은 어찌할 바 없다. 하지만 이런 긴급 상황은 일 년에 한두 차례 있을까 말까 하고 주로 ‘왜 하필 지금?’이란 의문이 드는 메시지들이 대부분이다.


학부모도 학생도 모두 제각기의 사정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학부모도 모두 직장인이라 특별히 시간을 내지 않으면 저녁이 되어야 통화할 짬이 날 것이다. 그렇기에 퇴근 시간 이후 한두 시간 사이에 오는 전화는 최대한 잘 받아서 응대를 한다. 학생도 제 나름의 사정이 있. 학생들의 일과 상 학교 끝나고 학원에 다녀와 저녁을 먹고 그나마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밤 시간일 것이다. 밤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를 것이고, 학교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생기면 응당 교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 하지만 밤 아홉 시에 오는 메시지, 밤 열 시에 걸려오는 전화, 새벽 한 시에 전송된 장문의 메시지에는 나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 연락에 답변을 해 주어야 하는 걸까?


나는 학생들과 마음을 나누고, 학생들의 마음이 혼란한 시기에 곁에서 살펴보아 주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도와주는 교육 서비스 제공자이다. 나는 ‘교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학생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고 도와야 한다고 여긴다. 밤중에라도 긴급한 상황이 생겨 내가 학생을 도울 일이 있다면 적절히 대응하고 움직일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의지이고 내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퇴근 후의 연락을, 퇴근 후의 업무를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쉬고 있는 나에게 불쑥불쑥 ‘타투해도 되나요?’, ‘우리 아이 요즘 점심은 잘 먹나요?’, ‘지금 지난 학기 성적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라고 대답을 요구해 오는 일에는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다.


요즘은 초 연결 사회라고,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고들 한다. 확실히 10년, 20년 전보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가 편해졌고, 그 덕분에 우리는 끊이지 않고 마음을 주고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메시지를 밤늦게 보내면서도 으레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내가 시간이 날 때나 편할 때에 연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생긴다.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말이다. 그러니 특정 학부모나 학생을 탓하기도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퇴근 후에도 나의 일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언제나 친절한 교사가 되겠어, 하고 마음을 좀 내려놓고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몇 년째 도통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결론. 나는 답을 했다.


나: 규정에 있는지 봐야 알겠는데?
일단 타투 하지 말라고 지도하시는 건 봤어.
A: 규정 그거 지금 보실 수 있어요?
아니면 학생부장쌤한테 물어봐 주실 수 있어요?
연락처가 없어요.
나: 이 밤에 급하지 않은 문제로 개인 연락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내일 직접 여쭤보는 건 어때?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 주었고, 답을 읽은 학생은 마음에 드는 답변이 아니었는지 나의 답변을 읽고도 무시했다. 흔한 말로 ‘읽씹’ 당했다. 기꺼이 답변을 해 주었는데 읽씹 당하다니. 나의 평온한 밤이 흐트러진 것에 대한 속상한 마음이 점점 커져 왔다. 그래서? 또 말을 걸었다. 꽉 막힌 꼰대로 보일지도 모르고, 듣기 싫은 잔소리하는 담임이 또 설친다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냥 말하고 싶은 대로 말했다.


나: 쌤 답변이 네가 원하는 답변이든 아니든, 늦은 밤 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고 답변을 들었으면 최소한 알았다거나 고맙다는 대답을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 늦은 밤에 상대가 대답해 준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말이지. 잘자고 내일 보자. ^^


한참 지나 ‘네’라는 답이 왔다. 이 상황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이 말을 참았다가 다음날까지 감정을 끌어가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판단했다.


몇 개월 전, 주말에 담임에게 개학 연기하냐며 물었다가 담임의 잔소리 폭탄을 받은 학생이 자기가 잘못한 거냐며 올린 캡처 화제가 되었다. 담임은 개학 연기면 단톡에 내가 얘기를 했겠지, 라며 일축하고, 메시지 주고받는 예의에 대해 장문의 답변을 했다. 담임이 대면하지 않고 예의에 대해 20줄이 넘는 긴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방식은 결코 좋은 교육 방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아무리 좋은 말도 얼굴을 보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게 마련이니), 주말에 학생들이 다짜고짜 물어오는 바람에 계속 답변을 요구받았을 담임의 입장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 입장에서는 오비이락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고작 해 준 답변이라고는 별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알아봐 주지도 않으면서, 잔소리만 늘어놓 나는 불친절하고 못된 교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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