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은 나를 잠시 납치(?)한 적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집으로 가던 길, 차를 끌고 우리를 쫓아온 담임은 나더러 집에 데려다주겠으니 차에 타라고 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한 상황이었지만, 어린 나는 선생님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뒷문을 열고 차에 오르니 담임은 친구에게 먼저 집으로 가라고 했고, 얼떨결에 홀로 담임의 차에 올라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게 된 나는 매우 불안할 뿐이었다.
나와 담임이 도착한 곳은 참치회를 파는 일식집이었다. 아직도 상호가 기억이 난다. '동신참치' 그 당시에 일식집은 정말 흔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내 딴에는 고급 식당으로 느껴졌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어서 따라오라는 담임의 말에 나는 담임의 뒤를 따랐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룸에는 낯익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우리 반 반장의 어머니.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분이라 꽤 낯익은 분이었다.
그 자리는 당연히 내게는 매우 불편한 자리였다. 어른 둘이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못 알아들을 말들도 많았다. 아주머니께서는 '좀 먹으라'며 때때로 나의 몫을 내 앞접시에 내어주셨지만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했다. 그저 그들의 식사가 끝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시계만 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이 음식이 대체 어떤 맛인지 전혀 못 느낀 채, 알고 싶다고 느끼지도 못 한 채, 어서 그 식사가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초등학교 2학년에게 담임은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한 마디 던졌다.
"너희 어머니는 뭐하시냐?"
내가 어떤 음식들을 먹었고, 담임과 그분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2학년도 이 한 마디는 잊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와 마주 앉은 이는 반장의 어머니였다. 나는 우리 반의 부반장이었다.
담임의 그 한 마디가 내포한 의미를 이해한 건 시절이 한참 지나서였다. 그 고급 음식점에서 먹은 참치값은 당연히 담임이 냈을 리 없다는 건 일찌감치 알았는데 말이다.
어린 내게도 어떤 감이 있었던 걸까.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에도, 나는 엄마께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전하지 못했다. 집에 늦게 돌아온 이유도 그냥 친구들과 놀았다고 얼버무렸을 뿐이었다. 말을 전하면 엄마가 신경 쓸 일이 늘 거라고, 혹여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던 걸까. 세상 물정 몰랐던 나도 그 말이 내 마음 한구석 쿡 찌르고 엄마도 찌를 수 있다고 여긴 모양일까. 그렇담 왜 나의 담임은 어린 나만큼도 생각하지 않은 걸까.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일은 엄마께 말씀드리지 않았고, 영영 말씀드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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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학부모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꽤 있다. 언젠가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교의 운영에서 소외가 되어 왔다는 견해가 대두되며 학부모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부분들이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학운위, 교복선정위 등등.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요즘 맞벌이 안 하는 집이 없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밥 한 끼 먹기도 힘든 이 시대에 굳이 학부모를 일과 중에 오시게 해야만 하나 싶어서이다.
나는 학교 설명회에서 조직한 어마어마한 학부모회가 정말 학교에서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사실 의문이 든다. 아주 오래전, 몇십 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여전히 학부모회는 사실상 학교 임원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님들로 이뤄지는 것이 관례이고, 그들의 일당백 희생으로 각종 행사가 치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변해 가는 세상에 발맞춰 학교도 변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각종 행사에서 학부모에게 부담이 가는 부분은 배제가 되어도 모자랄 판인데, 학부모들의 위원회 활동 등을 강제하는 방침들이 늘어서, 학부모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학부모가 개입해야만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게다가 학교 일에 개입한 학부모는 그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책임마저 덤터기 쓰고 마는 일도 많다.
이삼 년 전에는 학부모님들이 바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학부모 감독을 섭외해야 해서 마음의 부담이 컸다. 안부 인사인 듯 안부 인사가 아닌, 감독을 해 주십사 청탁하는 메시지로 겨우겨우 학부모 감독을 모두 섭외하는 와중에 받은 스트레스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얼굴도 못 뵌 분들께 부담스러운 부탁을 했음에도 응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하고 송구스러웠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지만 시간을 내 보겠다'라고 하시는데 '안 해주셔도 괜찮다'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학부모님들께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해주십사 말하는 일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나와달라고 말하지 않지만, 학교에 아이를 맡긴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이를 위해' 어려움과 고생스러움을 무릅쓰고 부탁에 응하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학교나 교육청은 학부모들을 '돈 안 드는 보조 인력'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샘솟을 때도 있다. 물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느낌이다.
학부모님들과 더불어 함께 고민하며 교육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은 필시 중요하다. 하지만 깊이 있게 학부모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학부모들을 학교의 한 주체로 세우는 일도 아직 요원해 보인다. 학부모의 희생과 노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느낌이랄까. 학부모에게 일을 부과하는 방식이 아니면 좋겠다. 학부모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교육 공동체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여건은 언제쯤 마련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