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또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다. 진로 부전공 연수를 끝내고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던 지난 가을, 나는 그새 또 원서를 쓰고 학업계획서를 썼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바로 옆에 있는 대학교에 석사 과정에 파견을 보내준다는 공문이 왔다. 괜히 솔깃하여 공문을 슬쩍 열었다가 결국은 출력해서 읽고 또 읽었다. 석사 과정, 지역교육협력, 1년 파견, 인턴십. 공문에 있던, 이런 단어들을 며칠간 머릿속에서 굴리고 굴렸다.
진로 부전공 연수 후 전과 발령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새해에 대부분의 부전공자가 전과 발령이 나리라 믿고 본 전공 과목의 마지막 해를 잘 보내야지 마음먹던 참이었다. 하지만 주변 진로 교사들에게서 대대적인 정원 감이 있을 거다, 발령이 다 안 날 거다 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도교육청에서는 모두를 전과 발령낼 수 있는지 귀띔해주지 않고 계속 뜨뜻미지근하게 날을 보냈다. 당장 휴직이 필요하거나 지역을 옮겨야 하는 선생님들은 애가 닳아서 도교육청 담당자에게 몇 번이나 연락을 취했고, 교육청에서는 '아마도'라는 단서를 붙이며 부전공자의 반 정도가 발령이 날까 말까 한다고 전했다. 교육청에서는 체스하듯 말 하나 옮기듯 하면 되는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생활 터전이 달라지거나 삶의 형태가 바뀔 수 있는 일인데 너무도 무심한 듯한 답변이었다. 인사 문제는 누구나에게나 민감하니 최대한 보수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확실한 상황을 반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고 붕 떠 버린 기분에, 무엇이든 하고픈 마음이 커졌던 것 같다.
10월, 파견 원서와 학업계획서를 썼다. 11월, 도교육청 파견 추천을 받고 대학원 일반 전형으로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다. 12월, 비대면 면접을 보았고, 곧 합격 발표가 났으며 파견 발령을 받았다. 2월, 함께 공부한 선생님들의 부전공 전과 발령이 났고 나는 우리 지역 도교육청 사상 최초로 '전과 유예원'을 쓴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대학원 파견을 가지 않았더라면 올해 진로 수업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
지금에 와서 말이지만, 부전공 연수 동기 선생님들이 새 학기, 새 교과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도 올해 발령받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것을 보니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길도 퍽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임용 합격 후 학교에만 머물러 오래 시간을 보내고 참 오랜만에 공부를 하기 시작한지라, 세상 돌아가는 걸 너무 몰랐다 싶기도 하고 낯선 용어들에 당황하기도 한다. 앞으로 논문 쓸 거 생각하면 깜깜하고.
그래도 뭔가를 새로 시작한 재미, 모르던 걸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 한 해, 운 좋게 얻은 시기를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