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깊은 한 줄의 시를 닮은 삶
고등학생 시절 나는 작가라는 넓은 바다, 그 가운데 시인이라는 좁고 깊은 강물이 되고 싶었다.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으면 멈춰있는 것만 같지만 멈추는 법 없이 제 속도로 나아가는 가장 낮고 고요한 흐름이 되고 싶었다.
여전히 유효한 그 바람은 고등학생 시절에 들었던 강연에서 시작되었다. 아마도 문학인과의 만남이라는 행사였을 거다. 매년 한 명의 시인이 초청되어 강연을 하는 그 시간이 내게는 일 년 중 가장 큰 울림이 있는 날이었다. 성적과 무관하고 자신의 흥미와는 동떨어진 행사에 시큰둥하던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마른침을 삼키며 비밀스러운 꿈을 꿨다. 모든 것이 위태로웠던 그 시절에 만난 시인들의 말은 내게 무한한 용기와 삶에 대한 낙천을 쥐어준 유일한 시간이었다. 신입생만을 대상으로 하던 행사에 나는 꼬박 3년을 참석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굽이쳤던 시인들의 삶과 그 세월이 만들어낸 문장은 가난했던 주머니와 그보다 더 가난했던 마음을 부끄러워하던 나를 환히 밝혀주었다. 겸손하지만 부끄러움은 없던 그들의 고백은 그들의 시처럼 연약한 풀꽃 같기도 했고 단단한 바위 같기도 했다. 작고 연약한 삶을 비추는 문장의 아름다움과 무게를 그때 처음 알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 도저히 손에 닿을 것 같지 않던 동경의 이름, 그 삶에 다가갈 용기를 건네준 어른은 정호승 시인이었다. 이제는 십 년도 더 지난 그 하루를 선명히 그려낼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장면들이 있다. 기르던 강아지의 움직임을 칠판에 그려놓았던 것, 자연에서 느끼는 감정을 아주 천천히 이야기하던 것, 이야기를 듣는 어린 우리들을 지그시 바라보던 눈빛은 여전히 희미한 잔상처럼 남아있다. 그의 시선을 뒷받침하고 있던 삶을 향한 다정과 사랑, 주름진 얼굴에서 느껴지던 여유를 느끼며 나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좋은 시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보다 앞섰던 건 넉넉함을 향한 동경이었다. 열일곱에서 열아홉의 나는 여전히 좁고 날이 선 마음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부드러운 주름에 닿게 될 때면 나도 그들처럼 보드라운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를 대신하여 울어줄 수 있을까. 절박한 기대 같은 것이 불쑥 자라나던 가을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내가 시인이라는 이름에 닿고 싶었던 건 시라는 창작보다도 시인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삶을 향한 갈망이었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흘렀고 동경의 눈을 반짝거리던 여고생은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몇 권의 책을 냈지만 바람처럼 시인이 되지는 못했다. 등단을 하거나 시집을 내지 않았다는 명백한 이유가 있지만 나는 안다. 아직 내 삶은 그 시절에 마주했던 세상을 향한 다정과 사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시를 쓰지 못했고 그리하여 시인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꿈처럼 남아 있다는 것을.
내 안의 연약한 것들이 모여 단단한 힘을 내기까지 들여야 하는 뜸이 여전히 숙제처럼 남겨져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내가 배운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아름다운 문장은 온전한 아름다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닿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처음 시인을 동경하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해서 몸부림치고 있다. 날마다 날이 서는 세상으로부터 내 안의 시를 지켜내기 위해서, 가만히 고이지 않고 당신에게 부지런히 흘러가는 맑은 물결이 되기 위해서 고요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꿈틀거림이 멈추지 않는다면 그 언젠가에는 멀게만 느껴지던 시인들과 나의 삶이 작은 교집합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10여 년 전 당신의 흩어진 말들이 누군가의 삶을 세워 나갔다는 것을 시인은 알까. 가난한 마음에서도 깊은 시 한 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당신이 던져준 말 한마디를 붙들며 나아간 어린 삶 하나 있었고, 그 삶이 자라나 미약하지만 작은 문장들을 남기고 어디선가 느리게 읽히고 있다는 것을 시인은 알까. 할 수만 있다면 조금 천천히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 삶과 문장이 굽이굽이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 좁고 깊은 한 줄의 시가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