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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Jun 28. 2016

비밀은 없다(The Truth Beneath, 2015

연홍의 비극, 그리고 그녀의 '무지'

 

 영화는 연홍(손예진)의 감정선을 따른다. 딸인 민진이 사라졌다. 연홍은 점점 초조해진다. 초조함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미쳐 날뛴다. 영화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연홍과 초반에 등장하는 연홍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중&후반부의 연홍은 가위를 들고서 자해를 하는가 하면, 경찰서를 찾아가 깽판을 치기도 한다. 종찬(김주혁)을 붙잡고선 고함을 치기도 한다. 선거를 앞둔 예비 정치인 부인의 행보로 보기엔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아이를 잃고 난 뒤 연홍에게선 '합리성'이란 중요한 가치가 사라진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이토록 애정이 넘치는 '어머니'이지만서도 연홍은 딸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 연홍이 민진의 가장 친한 친구로 알고 있던 '자혜'는 가공의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연홍은 자신의 딸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영화는 비밀에 비밀이 폭로되는 식으로 구성된다. 연홍이 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연홍에겐 딸의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당연히도 연홍이 모르고 있던 딸의 모든 행적은 비밀이 폭로되는 것처럼 다가온다.



 연홍은 미옥을 제일 처음 의심한다. 미옥은 민진의 가장 친한 친구다. 이 역시 연홍이 민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못한지 보여준다. 연홍은 민진의 이메일 아이디를 추적한다. 아이디는 'whRkwhRk(조x조x)'다. 상스러운 표현이 연홍에겐 낯설기만 하다. '나쁜 아이'란 비밀에 대한 실마리는 이때 처음 제시된다. 연홍은 종찬에게 말한다. "어쩌면 우리 딸이 그렇게 착하지 않은지도 몰라." 연홍은 점차로 민진에 대해 알아간다. 비밀이 풀리는 와중에 드러나는 사실은 그때까지 연홍이 민진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다.


  그 결과가 '비극'이다. 연홍은 딸에 대해 몰랐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다 크게 얻어맞는다. 만일, 연홍이 '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비극은 미연에 피할 수 있었다. 연홍의 비극은 그녀가 '비밀은 없다'고 확신한 결과다.  민진과 미옥은 종찬의 선거 유세 첫날을 '프리 데이'로 지정한다. 연홍은 민진이 이날 무엇을 할지 전혀 가늠하지 못한다.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려니 한다. 관심따윈 없다. 비밀은 쉬쉬 된다. 결국 민진은 이날 검은 차에 짓밟히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델포이의 신탁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을 "소크라테스"라 전한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던 소크라테스는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현자를 만난다. 그 결과 신탁의 진의를 헤아린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내가 아는 건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무지'를 '인지'했기에 소크라테스는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위인으로 추앙받았다. 의외로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를 수 있다. 잘 안다고 확신한 상대는 의외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연홍은 그런 '비밀'이 없다고 단정했기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화가 연홍의 비극을 통해 경계하고자 하는 건 다름아닌 '인지'에 대한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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