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고개 숙이지 말자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할 일일 때가 있다. 열심히 글씨를 쓰는 작은 뒤통수들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있으면 뭐라도 쓰고 싶다. 손글씨로. 삐뚤빼뚤하더라도. 어제도 '무언가를 쓰고 싶다. 손으로, 손으로ㅡ'라고 쓰고 줄을 바꿔서 일기를 썼다. 그렇게 손글씨를 쓰다 보면 내 자세가 얼마나 나쁜지 알게 된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어깨와 굽은 등, 종이에 닿을 것처럼 숙여진 머리는 악필의 원인이자 많은 질병의 원인이다.
실제로 최근 온몸이 아파서 자세에 신경을 쓰다보니 아이들의 자세도 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꼿꼿이 앉은 아이들 틈에 허리와 목을 숙이기 시작한 아이들이 보인다. 고개를 떨구지마. 얘들아,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고 한껏 내려다보렴. 함부로 고개 숙이지 말자. 고개 숙여야 하고 허리가 휘는 일이 많은 세상에서 숙이는 법을 벌써 배우지는 말아줘. 책 앞에서는 더더욱 숙이지 말자.
오직 자연과 낮은 곳을 향해서만 허리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어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 말하자.
사랑을 말하고 손을 내밀 때 외에는 고개 숙이지 말자. 언제나 곧게, 곧게.
손으로 쓴 일기를 고쳐 옮기며 가슴을 펴고 어깨를 내린다. 어릴 적 선생님들은 종종 내게 묻곤 하셨다. "너는 책에 코를 박고 뭘 그렇게 쓰니?" 책이 좋으면 책이 나를 보게 할 걸 그랬다. 책속으로, 글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내가 현실에 바로 서려면 잔뜩 굽어버린 목과 허리를 치료하고 틀어진 골반과 고관절을 퍼즐처럼 맞춰야 한단다. 책상에 엎드려 세상을 곁눈질하다 바로 서는 게 힘들어진 나같은 아이가 더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몸이 서야 마음도 선단다. 몸이 무너지면 곧았던 마음도 자꾸자꾸 구겨진단다. 그러니 언제나 곧게 앉아 어려운 책에 압도되지 말고 한껏 내려다보렴. 수업이 끝나면 벌떡 일어나 달려나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