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효석 Aug 10. 2023

You are my guest

오늘 지하철을 탔는데 영국에서 온 잼보리 학생들이 옆자리에 앉았다. 모르는 아저씨가 말 거는게 불편할까봐 가만히 있었다가 지도를 꺼내 보며 길을 찾고 있길래 그래도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안내를 해줬다. 10년전만 하더라도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푸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는데 시대와 문화가 많이 변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10년전 나는 36개국을 도는 세계일주를 마치고 명동 근처에 있는 작은 광고회사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 퇴근하면서 습관처럼 명동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길 안내를 해주곤 했었다. 마치 자원봉사처럼 매일 퇴근길에 시간을 내어 그들을 도와주었다. 나는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여행의 경험이 나를 많이 변하게 해주었다.


동유럽 발칸반도의 어느 가난한 도시를 여행할 때였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현지인이 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 도시에 아마 거의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이방인인 나에게 첫 인상부터 환하게 환대해주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 나라의 직장인 평균 임금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을 했다. 그 분의 대답은 한국돈으로 약 80만원 정도 된다고 했다. 그때 그 분이 주문해준 식당의 메뉴를 보니 우리돈으로 6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는데 우리나라 임금 수준으로 계산해보니 직장인이 약 30만원 정도 되는 큰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였다.


나는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이 일을 수년간 떠올렸다. 그 사람은, 평생에 한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이방인 여행자에게 왜 그런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었을까. 시간을 내준 것도 대단한 일인데 자신의 급여의 상당한 부분인 큰 돈을 쓰면서도 말이다. 왜 나한테 이렇게 좋은 환대를 해주냐는 질문에 그 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Because you are my guest.


가난한 백수였던 내가 세계일주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숙박비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행자들끼리 자신의 집에 빈 방이 있으면 무료로 공유해주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org)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나는 세계일주의 거의 모든 숙박을 이걸 이용해서 무료로 해결할 수 있었다. 여행을 시작할때는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마칠때에는 국내에서 내가 가장 많은 카우치서핑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되기도 했다. 돈도 돈이지만 현지인의 집에서 함께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매력이었다.


여튼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기꺼이 외국의 이방인에게 자신의 집을 내주는 것은 물론 식사와 투어까지 극진히 대접을 해주었다. 그렇게 지구를 한 바퀴 돌며 마지막 목적지에서 나를 호스트해준 친구에게 물었다. 여행 내내 가장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너는 왜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평생에 다시 만날 일도 없을 이방인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푸느냐고.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Because you are my guest.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내가 여행자일때 같은 도움을 받았었기 때문에.


오늘 만났던 영국 학생들에게 나는 한 명의 오지랖 넓은 아저씨일 수 있겠지만 그 한 마디를 꺼내기전에 나는 내 청년의 시절을 관통한 경험들을 주마등처럼 꺼냈다. 나도 여행지에서 조건없이 도움을 받았던 것 처럼 그저 그들을 돕고 싶었다고.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척박해지는 나 자신에게 다시금 더욱 이타적으로 살자는 생각을 해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