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간호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 박도순 Jan 13. 2022

그리고 나머지는

간호일기

그리고 나머지는


“소장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저요, 확진 떠서요, 죽었다가 살아났잖아요(눈물). 환절기 때 찾아오는 알레르기 비염이랑 독감 증상이 비벼진 느낌? 열은 없는데 두통이 심하더라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에 보내온 후배 답글이었다. 의례적 답장이려니 생각하고 메신저를 열었는데, 그녀가 오래간만에 보내온 안부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어머나! 코로나에 걸렸었다고? 힘들었겠네. 지금은 어때요?” 재질문이 이어지고 (진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다는 글문들. 그녀의 몸 고생 마음고생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저벅저벅 실체감! 그녀는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접촉으로 감염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추가 접종도 마쳤다고 했다.


  올해는 얼굴 한 번 꼭 봅시다! 송년 모임 하루 전, 다른 50대 후반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격리 1일 차입니다. 참석하려 했는데 자가격리 명령 떨어졌습니다. 아, 정말 슬프네요. 무주에 못 가게 되었습니다. 속상하고 아쉽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그는 옆자리 건너편에 앉은 후배의 밭은 기침 소리가 거슬렸다고 했다. 혹시나 염려한 일이 역시나 현실이 되었다며 참담해했다. 강의실에 있던 사람 중 아홉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자신의 아파트에 격리 치료 중이라고 하였다. 달력에 그려진 동그라미는 물그림자로 사그라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그의 안녕을 물었다.


  식사하셨어요? 힘드시죠? 격리 2일 차 카톡. 밤새 어떠셨는지, 괜찮으신가요? 격리 3일 차 카톡. / 오늘은 좀 어떠세요? 격리 4일 차. 네,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식욕은 여전히 좋은데 그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아요. 숨을 크게 쉬고 대화를 하면 좀 나아요. / 며칠 격리입니까? 최소 열흘 이상이라는군요. /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어떠세요?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더니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 머리가 아주 아프네요. 5일 차…. 카톡카톡, 카톡! 오늘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식사는 잘 하시는지? 오늘은 좀 상태가 떨어지네요. 상태가 떨어진다, 는 것은 회복되고 있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점점 가라앉는 기분입니다. 일어나서 식사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러시군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기다립니다. 네, 고마워요. 힘내시고 몸조리 잘하세요. 격리 7일 차.


  위드코로나 하려면 혼자 사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병원보다 집에서 치료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테니까요. 격리되면 혼자 생활을 해내야(!) 하니까 가족 도움 없이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세탁도 할 수 있는, 진짜, 혼자되는 연습. 필요해요. 아홉 명 중 세 명이 아파트에 감금당했어요. 다들 미칠 지경이라고 해요. 밖에 나가지도 못하니까. 그나마 나는 주말부부라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해서 좀 나은 편이죠. 병원으로 실려 간 사람들 단톡방은 더 난리예요. 그분들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격리 8일 차.


  휴대폰 액정으로 톡톡 솟아오르는 글 밥을 훑어 읽으며 생각해본다. 스물세 평 아파트. 그 안에서 그는 자가 진단을 하고, 침실과 주방, 거실을 오가며 앉아 있기도 하고, 눕기도 했을 것이다. 하루 이틀 정도는 업무에서 분리되어 조금은 휴식 같은 기분도 들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부풀어나는 의욕 상실감, 위축감, 상실감, 갈등, 한계, 때로 어떤 분노감과 고독과 마주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물었다. 만일 보건진료소가 있는 농촌마을에 재택 치료받아야 할 코로나19 환자가 생긴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살다 보니 순풍만 있는 것이 아네요. 아무래도, 나에게 남아 있던 순풍은 이제 사라지고 역풍만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만 들어요. 증상이 사라지지 않아서 2∼3일 더 격리해야 한답니다. 농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중요한 질문이군요. 경험해보니까 다 아는 체 해주기! 마치 의사처럼. 소외되지 않게 해주기! 마치 옆에 있는 사람처럼. 말 걸어주기. 그것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이야기 들어주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을 헤아려 주기. 치료라는 이름으로 방치하지 않기. 나머지는 그냥 지켜봐 주기.”


  디지털 체온계나 산소포화도 측정기, 맥박계,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App)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홀로 두지 않는 것, 진심 어린 이해와 외롭지 않도록 해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최고의 간호라고 엄지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환자에게 행하는 정서적 지지의 온도는 몇 ℃일까. 그것은 간호 우선순위 중 얼마나 높은 상위(혹은 하위)를 점유하는 것일까.


  코로나19 확진이라는 진단 받던 순간, 철렁한 심정으로 격리되었다는 그녀.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보다 홀로 있는 시간이 무서워서 죽을 뻔했다는 그녀. 설마 했던 일이 감염으로 이어져 재택이라는 익숙한 곳에서 낯선 치료 방식에 자신을 맡겨야 했던 그. 괜찮으세요, 라는 안부가 희롱처럼 들리기도 했다면서 웃던 그 사람. 나는 여전히 그에게 다시 묻는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격리 12일 차.

.

.

@무주,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