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419 Seoul, Korea
Know something by heart 라는 말이 있는데 “그냥 원래 아는것”이 제일 어울리는 번역일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또 서울에서 살아서 당연한 일들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어딘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도 비슷한 것들이 있겠지. 그런 면에서 외국인 남편이 있으면 제 3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일이 종종 생긴다. 나에게 당연한 일들이 그에게 그렇지 않다는게 내가 나고 자란 이 곳을 조금 더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된다.
남편은 평생 딸기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사람이다. 굳이 나눠야 한다면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반면 나는 세살 생일상에 딸기를 요구하던 오리지널 딸기홀릭이었다. 어렸을 때 딸기는 복불복이어서 가끔은 설탕을 찍어야 먹을만 했던 때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딸기 자체가 업그레이드가 된건지 그 본연의 맛으로도 너무 맛있어지기 시작했다. 겨울에서 봄이 될 때 시장에 가거나 마트 과일코너를 지나면 달콤하고 싱그러운 딸기향에 오감이 행복해지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맛있는 딸기는 당연한 거였으니까 어딜가나 딸기는 맛있는 줄 알았다. 그러다 파리로 이사를 갔는데 왠걸 그 딸기맛이 안났다. 처음 몇번은 내가 잘못 골랐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 딸기의 달콤하고 깊은 향은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는 그나마 납작복숭아가 맛있는 딸기의 부재로 허한 내 마음을 달래주었지만 뉴욕에서 먹은 딸기의 그 무(無)맛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다를까 헛된 희망을 가지고 몇번이나 딸기를 사고 실망하던 내 모습을 본 남편은 딸기는 원래 맛이 없는거라고 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속으로 “딸기철에 한국에 가면 본때를 보여주겠다” 고 마음 먹었다.
드디어 올해 1월 우리는 (조금 이른) 딸기철에 한국에 왔다. 본때를 보여줄 첫 기회에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 압구정 현대백화점 식품관으로 가기로 했다. 압구정 현대 식품관 과일 코너는 입구에서 들어가자마자 위치해 있는데 제철과일은 왼편에 특별코너가 있어서 박스를 쌓아 놓고 판다. 탐스럽게 포장이 된 딸기 상자들 앞에 서니 향긋한 딸기향이 진동을 했다. 망설임없이 딸기를 고르고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딸기를 하나 씻어 test run으로 일단 내 입에 넣어봤다. 부드럽지만 무르지 않아 신선한 과육을 한입 베어물자마자 온몸으로 딸기향이 퍼진다. 분명 설탕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딸기를 하나 씻어 먹었을 뿐인데 어쩜 이렇게 달달할 수가 있지? 아 역시.....이게 딸기다.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딸기 하나를 더 씻어 무작정 남편 입으로 집어 넣었다. 한국 딸기의 마력에 빠지기 1초 전. 딸기를 천천히 씹기 시작하자마자 남편의 (작은) 눈이 동그랗게 튀어나왔다! 내가 뭐라 그랬니!!! 한국 딸기는 다르다고!!
“Oh my god! 이거 설탕 안찍은 것 맞아?”
괜한 딸기부심 부리지 말라고 한 말을 후회하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하나만 더 씻어줘”
드디어 한국딸기에 정식으로 입문한 남편은 이제 딸기철이 다 지나갈까봐 노심초사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딸기철이냐며 몇번이나 물었다. 그리고 마트에 갈 때마다 딸기를 사자고 했다. 한국 딸기가 이렇게 맛있는지, 아니 딸기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단다.
내가, 그리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는 맛있는 딸기가 누군가에게는 맛 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마력의 과일인지 누가 알았던가. 당연히 맛있는 딸기와 당연히 맛없는 딸기의 간극은 국제결혼 정도는 해야 좁혀질 수 있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