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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총총 May 19. 2019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를 외운다는 건

051819 Seoul, Korea

1. 5월 18일이 누군가의 생일이었던 것 같다. 생일이다 가 아니라 생일이었던 것 같다는 건 한 때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여러 사람 중 한 명의 생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을 우정의 척도로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친한 친구의 생일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저 알고 있는 인생의 배경지식일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를 외우는 것도 그렇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플립폰을 쓸 때만 해도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를 외우는 건 보통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를 머릿속에 외우고 있다는 건 내가 그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부여하는 특권이 되었다. 내 머릿속에 특별히 한 공간을 내어준 것과 진배없다고나 할까.

2.  “이모! 9월 13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딸은 어느새 7살이 되어 있었는데 유치원에서 매달 열리는 친구들의 생일파티, 크리스마스, 바다의 날, 그리고 현충일 등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나이었다. 달력을 매일 공부하다시피 하고 5월 21일이 무슨 요일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친구들과 가족의 생일을 달력에 메모하기도 하고 소풍날에는 큼지막한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는,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나이. 내가 7살이던 28년 전에도 달력을 (의도치 않게) 외우는 일이 즐거운 액티비티였던 걸 기억하면, 요즘 세상이 아무리 핸드폰이며 아이패드로 어린 시절이 달라졌다고 해도 어린이의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9월 13일은 추석이다.

3.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깨끗한 공기를 마셨다. 8년 전 서울에서의 내 인생이 불변의 현실 같았던 그때에 고민하거나 의문하지 않았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평소보다는 조금 더 긴 일정으로 서울로 돌아온 지금, 말이 통해 생활이 조금 편할 뿐, 나는 외국의 새로운 도시에 다시 처음부터 적응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featuring 미세먼지, 샛별배송, 그리고 신분당선.

4. 변하지 않아 주어 고마운 것들이 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았지만,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거쳤지만 예전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언제 만나도 좋지만 시장 구경을 할 때 특히 쿵짝이 잘 맞는 친구 J와 고터 지하상가에서 “여기 정말 오랜만이다” 나 “진짜 예쁘다”를 연발하며 발에 불이 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신세계 백화점 주얼리 코너에서 고터 지하상가의 전리품인 비닐봉지 소리를 사각사각 내며 럭셔리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미아니의 귀걸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쇼메의 반지에 영혼을 갖다 바친, 눈이 호강하는 윈도우 쇼핑.

5. 며칠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뉴욕이나 서울이나 싱가폴이나 이 세 도시 중 어디를 가도 나를 진심으로 기쁘게 반겨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누군가는 대학생 때, 다른 이들은 첫 직장에서, 또 누구는 서른이 훌쩍 넘어 만나 친구가 되었지만 내 인생의 다른 때에 들어와 그 시기 시기의 내 모습 그대로를 아껴주는 그대들. 고맙고 사랑해요.



도산공원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네
한국에서 이런 스타일의 건축물을 본 건 처음
한국의 쮸쮸바 하면 폴라포. 남편도 입문시키고 싶은데 계속 먹으려고 할까봐 비밀에 부치고 있다. My guilty pl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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