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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총총 Sep 16. 2018

MBA를 하러 프랑스에 간다고?

직장을 다니다 보면 3개월 때, 또 3년이 될 때 고비가 온다고 하는데, 나도 직장생활 3년 6개월이 되었을 때 MBA를 갈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나도 아마 전형적인 직장인의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았었나 보다. 원래부터 남의 돈으로 외국에 가는 것에 관심이 많아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알아봐 두었던 파스칼 장학금이 떠올랐다. 프랑스와 한국 정부가 아마 노무현 정권 시절 맺었던 파트너십 같은 것의 일환으로, 학비 전액과 생활비, 왕복 비행기표까지 책임져주는 그야말로 완벽한 장학금인 것. 그 장학금에 지원을 하려면 일단 합격증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2010년 8월 중순 GMAT을 보았고, 에세이와 추천서를 준비해서 9월 초에 지원을 했다. 가고 싶었던 학교는 단 한 군데, HEC Paris 였는데 미국인들이 세운 학교인 인시아드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고 HEC Paris는 프랑스에서 전통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이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학교에 합격은 했으나 프랑스 외무성이 주는 다른 장학금, 에펠 장학금을 받는 것이 먼저 확정되었기 때문에 파스칼 장학금은 신청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학교에 다니는 동안 엄청난 금전적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언제나 즐겁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정부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이유이다. 


2011년 9월 입학을 앞두고 6월 말에 직장에서 사직을 했는데 그때까진 합격의 기쁨이 너무 커서 사직의 압박도 그만큼 크다는 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막상 사직서를 내는 날짜가 오니 이거 내가 엄청난 실수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뭐 어쩌겠어 이미 저지른 일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첫 직장을 그렇게 내 발로 나오고 두 번째의 충격은 바로 월급날이었다. 아마 매달 25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월급날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 불안감과 충격이란. 이게 바로 월급에 중독된 것 아닐까. 불평불만을 하지만 월급날 계좌에 찍힌 금액을 보며 느끼는 달콤함, 만족감, 하루 이틀이나마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 직장인들이 한 달을 버틸 수 있게 하는 그 원동력. 그게 사라져 버렸다. 


월급의 중독에서 날 빠져나오게 한건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교생활이었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모인 200명의 동료들. 10명이 저녁식사를 하면 10명의 국적이 모두 다른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환경이었다. 내가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왔을 때 느꼈던 그 불안함은 비단 나만이 것이 아니었고 학교에 모인 대부분의 동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Out of comfort zone 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comfort zone이 되어주는 그런 환경. 국적도 인종도 문화도 모두 다르지만 서로가 너무나도 이해가 되는 특별한 경험의 시간. 한국에서만 나고 자란 나로선 문화가 이토록 다양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 깨달아지는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미국 친구들이 고등학교 때 방과 후 활동으로 풋볼이나, 수영이나, 라켓볼 같은걸 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야간 자율학습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학교에서 붙박이 생활을 했던 그때의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생활이라고 이야기하곤 했고, 지구 건너편 다른 나라의 고등학생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가늠해볼 생각조차 못했던 나만의 좁은 세상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MBA를 할 때의 나는 외국생활의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와는 조금 다른 정체성, living abroad를 할 때 나타나는 성격이 형성되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쏟아지는 다양성의 폭포 가운데서 나의 심지를 단단히 하고 어떤 환경에 있어도 변하지 않는 나의 true rule이 생기던 시기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영어 네이티브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반대로 영어 네이티브가 아닌 친구들이 하는 말은 조금 덜 믿을만하다고 느끼는 bias가 있었던 것.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러운 일인데 MBA 생활 중에 다양한 동료들과 같이 공부하고 놀면서 그런 bias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나의 living abroad 자아가 자리를 잡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생활이 너무 행복하면,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으면서도 여기를 떠나는 날 이 곳이 너무나도 그리울 거라는 게 진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프랑스에서의 시간은 매 순간이 그런 시간들이었다. MBA가 끝나고 취직이 너무 안돼서 괴로워하던 그 시간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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