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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Jul 03. 2017

직업의식에 관하여 3

이걸 직업의식 문제로 봐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든 자의 저의가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갤럭시 노트 엣지


UX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셨다


나의 첫 스마트폰은 하얀 조약돌 같이 어여쁘던 아이폰3였다. 처음 개봉했을 때의 경탄이 아직까지 기억날 정도로 그 심플함에 감동했었다. 한동안 잘 쓰던 아이폰은 매끄러운 그립감 때문인지(응 아니야) 곧잘 손에서 빠져나갔고 결국 얼굴에 금이 쩍 간 채로 유명을 달리했다. 아이폰5가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라 마침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갤럭시 s3를 샀다. 정말 나랑은 안 맞는 휴대폰이었다. 정이 안 가니 손에도 안 붙어서 그랬나(응 아님) 길바닥에 몇 번인가 떨어트리자 액정이 와장창 깨지면서 내장이 드러났다. 아이폰6는 출시가 미뤄지고 있었고 5를 사긴 싫어서 LG g3를 샀다. 군더더기가 덜하다는 점에서 삼성 휴대폰보다는 만족도가 높았지만 예상할 수 있다시피 또 휴대폰을 떨어트렸다(이쯤 되면 프로 드롭퍼다). 이젠 정말 아이폰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내가 7이 출시될 때까지 휴대폰 없이 지낼 기세로 뭉개고 있자 남자 친구가 당분간만 쓰라며 중고나라에서 공기계를 사다 줬다. 그 공기계가 바로 "갤럭시 노트 엣지"다.


왼쪽은 평범하게 생겼는데 오른쪽은 동그란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곡면 때문에 이름도 '엣지'라고 붙인 것 같은데 바로 이 엣지가 문제다. 휴대폰을 오른손에 쥐고 액정의 왼쪽 위에 있는 앱을 누르려고 하면 이 곡면 위의 무언가가 필연적으로 먼저 눌린다. 인스타그램을 누르려고 엄지손가락을 뻗을 때 이미 손바닥이 캘린더를 누르고 있는 식이다. 곡면부터 닿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앱을 엄지손가락을 늘리지 않아도 되는 범위 안에 배치해야 한다. 80평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방을 한 칸 밖에 못 쓰면 이런 기분일까. 특히 엄지손가락이 짧은 사람은 액정의 아주 작은 범위만 쓰거나 항상 공손하게 두 손으로 휴대폰을 사용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더 빡치는 건 정작 곡면 상의 작은 아이콘을 누르겠다고 마음먹고 누르면 또 잘 안 눌린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쯤 반복되면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이라는 숙어를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공손하게 휴대폰을 사용하는 데에 좀 익숙해질 무렵 '그럼 왼손잡이는 어떻게 쓰라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왼손잡이는 손을 저어어어만큼 뻗어서 잘 눌리지도 않는 곡면을 눌러야 하는 건가? 설마. 인터넷을 찾아보니 소수의 왼손 사용자를 위해 화면이 180도 전환된다고 해서 직접 전환해봤다. 옹색하기 그지가 없다. 그럼 뒤집어서 휴대폰을 쓰다가 전화가 오면 다시 뒤집어서 받으라는 건가. 화면을 이용하는 동시에 전화를 받으라고 오른쪽에 공간까지 따로 마련했다면서 정작 전화가 오면 뒤집어서 써야 하다니. 이게 무슨 기둥 뒤에 공간 있는 답답한 소리인가.


고구마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기 위해 화면을 돌리면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가로로 화면 보기가 고정이 안 된다! 곡면 쪽을 위로 해서 가로 화면을 보면 위에서 바도 안 내려진다. 아니 왼쪽 오른쪽 아래 그 어느 쪽에서도 바는 나타나지 않는다. 바가 아예 사라지고 옵션 설정을 사용자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누우면 자동으로 다시 세로 화면이 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못 찾는 거겠지 하고 인터넷을 뒤져봤으나 진짜 가로 화면을 고정하는 기능 따윈 없었다. 충전기 꽂아놓고 모로 누워 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는 기쁨을 못 느끼는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건가. 넓은 화면을 즐기라고 일부러 곡면까지 넣어놓고선 누워서 동영상을 볼 때는 세로로 보라는 이 모순! 이 속 터짐을 표현할 단어가 세상에는 아직 없다. 시원시원한 가로 화면을 보고 싶으면 역시 공손하게 앉아서 봐야 하는, 실로 동방예의지폰이 아닐 수 없다. 


앞뒤로 박아놓은 삼성 로고나 액정 위아래에 있는 줄무늬 디자인 같은 건 취향의 문제라서 넘어갈 수 있다(늙어 보이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쓰는 사람의 입장 따위 1도 모르겠다는 완강한 태도의 저 곡면은 UX 관련 전문지식이 1도 없는 사람 입에서도 '이건 아니다'가 튀어나오게 만든다. 커브드 디스플레이라고 그럴듯하게 표현했지만 "이것 봐라↗! 우리 이런 기술도 갖고 있다↗!"라고 자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 기능이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하면 좋은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목표와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다면 안 하는 게 맞다. 좋은 문장이 그렇듯 좋은 물건은 심플하다. 삼성은 소프트웨어고 하드웨어고 뭘 자꾸 넣으려고만 하지 말고 뭘 빼야 실용적 일지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야심 차게 내놓은 신제품도 폭발한 김에 적폐를 적절하게 청산하길 바랍니다. 




아, 이 휴대폰 장점도 있긴 있다. 나 휴대폰 또 떨어트렸는데 아직 살아있더라고(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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