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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min Kim Sep 26. 2016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본
영화의 '선택과 집중'

영화 <호킹>, <잡스>, <스티브 잡스>

어떤 일을 한다고 가정하자, 그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 '선택과 집중'이다. 내가 잘하는 것, 또는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 뒤 그것을 '선택'해서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에 집중해서 그 일에 대한 능률과 성과를 동시에 내게 되는 것이다. 이 '선택과 집중'은 단순히 '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 원리는, '영화'라고 하는 문화 예술에도 적용된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감독'이라는 주체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그 주제를 명확히 '선택'하고 그 주제를 분명히 하기 위해 모든 인물의 성격을 특정하고, 상황을 특정해서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게 그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 '선택과 집중'이 무너지면 영화를 접하는 대중들은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초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면, 그리고 그렇게 전개한 이야기라면, 그것을 보는 관객들의 초점도 여러 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영화는 이야기의 구조가 무너지고, 대중들과의 소통은 불협화음이 된다. '공감'이라는 단어는 퇴색되고 일방적인 '주장'만 남을 뿐이다. 심지어 그 주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한 영화로 예를 들어보자. 차가운 얼음물에 물을 맞고,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는 캠페인이 유행한 적이 있다. 캠페인 덕분에 루게릭에 대한 관심도는 올라갔고 루게릭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에 대한 인지도 또한 올라갔다. 그 무서운 루게릭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이다. <호킹 Hawking, 2004> 은 그 스티븐 호킹 박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국의 TV 영화이다. 영화는 흔히 있는 영화적 상상력을 극도로 자제하며 있는 사실만 전하기 위해 애쓰는 듯 보인다.

  

호킹 Hawking, 2004 (BBC TV Movie) / 감독 : 필립 마틴 /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외


영화에서 전하려 애쓰는 사실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스티븐 호킹이 루게릭이라는 병을 앓았으며, 그 병에 걸렸음에도 그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라는 '호킹'이라는 '인물'에 대한 서사이며, 두 번째 사실은 “스티븐 호킹은 우주 물리학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했다.”라는 '업적'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영화의 일등 공신인, 우리나라에서 이미 수많은 '덕후'를 양성해낸 영국의 TV 드라마 시리즈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열연으로 설명은 가능하다. 점차 근육이 무력해지는 상황들에 대한 사실적인 연기와 그가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멀어져 가는 모습과 그 상황 속에서도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 스티븐 호킹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에 대한 존경심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베네딕트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의 퀄리티는 낮아 보인다. 그 이유는 이도 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태도 때문이다. 영화는 스티븐 호킹의 일대기라고 보기에는 그의 이야기가 많이 생략된 느낌을 받게 되며 한편으로는 그가 연구한 '우주의 시작'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반대로 일대기가 아니라 '우주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 또는 '호킹의 업적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도 호킹의 이야기가 너무 크게 그려진 느낌이다. 심지어 영화의 오프닝에는 이 영화가 '우주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이다.'라는 맥락의 자막이 뜬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이 필요한데 그것에 실패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에 관해 다른 예를 들어볼까 한다. 역시 어떤 인물에 관한 이야기인데 접근 방식이 사뭇 다른 두 영화 <잡스 Jobs, 2013>와 <스티브 잡스 Steve Jobs, 2015>다. 둘 다 '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러나 두 영화가 '스티브 잡스'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잡스 Jobs, 2013 / 감독 : 조슈아 마이클 스턴 / 출연 : 애쉬튼 커쳐 


2013년에 개봉된 <잡스>는 스티브 잡스가 이른바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계기부터 회사를 만들고 난 뒤의 일련의 과정들을, 그가 가진 아이디어를 파트너들과 공유하고, 구체화시키면서 실제 제품을 생산하고 주목받는 일련의 과정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잡스> 속에서 '잡스'의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은 건 아니다. 분명히 인물에 대한 묘사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2015년의 <스티브 잡스>와 비교하면 그 정도는 다르다. <잡스> 속에서의 '스티브 잡스'는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나 일을 처리하는 능력 그리고 고집 같은 면에서 그의 성격을 그려내고 있다. 딸 '리사'와의 관계도 조금은 곁가지처럼 묘사될 뿐이다. 요컨대, <잡스>는 애플의 탄생이라는 '연대'와, 그 중심에 있었던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의 이를테면 '능력'을 표현하기로 '선택'하고 그 일련의 과정들을 그려내는 데에 '집중'했다. 


<잡스> 속에서의 '스티브 잡스'는 비지니스적인 마인드나 일을 처리하는 능력 그리고 고집 같은 면에서 그의 성격을 그려내고 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앞서 말한 바 대로 그 결이 다르다. 영화평론가인 이동진 평론가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한 줄 평으로 "흡사 펜싱 선수처럼 현란한 아론 소킨의 극작술"이라고 표현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영화는 대화의 연속으로 가득 차 있다. 숨 쉴 틈 없이 가득 찬 대화들을 통해 각본가인 아론 소킨은 '스티브 잡스'의 캐릭터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 수많은 대화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스티브 잡스'를 알아가도록 유도한다. 그 화려하고 빼곡한 대화들을,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아론 소킨을 이동진 평론가는 펜싱 선수에 비유한 것이다. <잡스>와는 달리,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탄생이라는 연대 속에서 '스티브 잡스'의 '인간성'을 그려내기를 '선택'하고 '집중'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 Steve Jobs, 2015 / 감독 : 대니 보일 / 출연 : 마이클 패스벤더, 케이트 윈슬렛 외


<스티브 잡스> 속에서 '스티브 잡스'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딸 '리사'다. 앞서 말한 바 대로 <잡스> 속에서는 '리사'와 '스티브 잡스'의 관계에 대한 표현이 거의 없는 반면 <스티브 잡스>에서는 그 관계를 절절히 보여준다. 두 사람의 갈등부터 그 갈등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리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화들을 관찰하다 보면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이 어떻게 감정이 변화하고, 그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과한 언급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이왕이면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리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화들을 관찰하다보면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이 어떻게 감정이 변화하고, 그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지 확인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 대해 묘사한 두 영화 중, 무엇이 더 잘 만든 영화인지 가려내기보다는 영화는 이렇게 선택과 집중에 신경 써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지, 그 내용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호킹>에는 빠져있다. 그런 맥락에서 <호킹>은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좋은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이 이야기에 빠져들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고 '공감'하려면 영화를 이끌어 갈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선택'하고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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