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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HLEE Prosthodontist Sep 24. 2021

01. 사연없는 틀니는 없다

어느 치과의사의 틀니 이야기 1

01. 사연 없는 틀니는 없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연탄길"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책이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그 책을 읽으며 참 많이 눈물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철과 전문의로서 환자분들의 틀니를 접하다 보면 "연탄길"이라는 책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환자분들이 내미는 틀니의 모습을 보면 가슴 어딘가를 간질간질하게 긁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이는 틀니를 보면 대략 어떤 불편을 겪어 오셨을지 짐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틀니 환자분들의 경우 유독 사연이 많은 분들이 많습니다. 틀니가 필요해지는 연령대면 우여곡절 없는 사람이 없는 게 더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 사연은 틀니로 만나게 되는 경우 밝기보다는 어두운 쪽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 종류도 많은데 외로움, 다른 질병으로 인한 고통, 씹지 못하는 괴로움, 주위와의 갈등, 자식들 걱정 등 만나 뵙는 분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사연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는 뒤늦은 효도의 대상물이 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젊어서 신경을 못써드렸지만 지금 부모님께 가능한 최고의 진료를 해드리고 싶다는 분도 보았습니다. 가능한 치료 계획이 틀니 밖에는 없지만 그것이라도 잘해드리고 싶다던 따님의 눈물을 아직 기억합니다. 


어찌 보면 나름 대한민국에서 보편화된 임플란트 치료를 못하고 틀니를 하게 되는 경우는 임플란트를 식립 할 잇몸뼈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혹은 경제적인 여력이 충분치 않은 경우 또는 양쪽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로 생각할 수 있고 그런 상태까지 미루게 된 것은 아마도 큰 사연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글에서 사연 없는 틀니는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임플란트가 불가능할 때까지 치료를 미루어야 했던 이유이건 경제적 이유이건 말입니다. 






틀니의 사연은 보통 저에게 직접 말로 다가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틀니의 모습과 진료실에서 보여주시는 모습으로 제가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틀니를 보면 틀니를 착용하고 지내신 세월의 흔적도 보이고 그 틀니를 착용하시는 환자분의 성격이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꼼꼼하게 틀니를 닦고 관리하시는 할머님도 보이고 너무 무던하셔서 틀니가 깨지고 틀어져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할아버님도 보이고 틀니를 대하는 자세가 고스란히 틀니에 묻어나 제 앞에 놓이게 됩니다. 


간혹 성정이 불같으시면서도 손재주가 좋으신 분들은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직접 틀니에 손을 대기도 합니다. 운 좋게 조절해도 되는 틀니의 부분을 수정하시면 괜찮은데 행여 없어지면 안 되는 부분이 갈려나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치료를 담당하는 치과의사는 난처해지기 마련입니다. 


예약 날에는 보이지 않으시다가 어느 날 문득 진료실 앞에 나타나셔서 반갑게 손을 치켜드시는 할아버님도 있으셨습니다. 금형을 전공하셔서 손재주가 좋으신 분이었는데 스스로 틀니를 조절하면 안 된다는 저의 이야기에 답답하셨는지 치과에 오시는 날이면 틀니에 연필로 군데군데 표시를 해오셨고고 해당 부위들이 어떻게 불편한 지 친절히 말씀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불편하시면 또 찾아오시겠다며 웃으며 으름장을 놓곤 하셨습니다.


매번 치과 의자에 오르시기 전부터 내려오실 때까지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쉼 없이 하시는 할머님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사연 없는 분들이 오셔서 저와 같이 추억을 만들고 가시는 과정이었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진료실에서 보여주시는 모습, 내려놓으시는 틀니의 상태에 따라 어르신들을 서서히 알아갑니다. 앎이 깊어질수록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 있고 그렇게 어르신들을 알아갑니다. 때론 외로움이 전해지기도 하고 두려움이 전해지기도 하고 슬픔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틀니는 만들기 위해 내원해야 하는 횟수가 많고 일부 과정에서는 진료 시간이 길어지곤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다소 낯설어하시다가 제가 진료하는 것이 마음에 드시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고 열어주시는 만큼 살아가시는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주시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는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저에게 풀어놓는 이야기가 많아지고 깊어질수록 환자분들과의 유대감이 깊어져 가는 걸 저 스스로도 느낍니다. 때로는 쓸쓸함을,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장난스럽게 일상을 공유하면서 그렇게 진료실에서 틀니를 만들거나 고치거나 합니다. 


물론 틀니를 제작하거나 혹은 조절하는 과정에서 모든 분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으레 사람 사는 일이 그렇듯 진료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고 내원하여 진료하는 관계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열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픈 상태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경험하여 알지 못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려 합니다. 오는 것도 힘든데 와서 좋아지지도 않고 만들었는데 계속 아프기만 하면 자연스레 짜증은 솟구치고 눈앞에 틀니를 만지작 거리는 저 인간이 미워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틀니는 만드는 과정에서도, 조절하는 과정에서도, 점검하는 과정에서도 사연이 하나씩 쌓이게 됩니다. 좋은 이야기만 남는 것이 아니라 힘든 과정에 따른 아프고 힘든 기억도 남게 됩니다. 그렇게 사연을 들고 와서 사연 하나 만들고 가는 것 그것이 진료실에서 보는 틀니 치료입니다. 






감사합니다 


DHLEE.Prosthodontist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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