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치과의사의 틀니 이야기 5
제 작은 이모부께서는 미국에 계십니다.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현재 틀니를 사용 중이십니다. 틀니를 사용한 기간이 오래되셨는데 제작한 틀니로 고기도 드시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사용하시는 무던한 성격이십니다.
그런 이모부께서도 틀니를 만드신 뒤 꼭 하시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모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자는 것인데 항상 틀니를 뺀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먼저 일어나서 틀니를 닦고 장착하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시고 이모가 잠들고서야 비로소 틀니를 빼고 침대로 들어오신다고 합니다.
무던하신 이모부께서도 배우자에게 이가 없는 모습을 보이기 꺼려하시는 이야기를 통해 배우자에게는 이가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환자분들의 마음을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여성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경험적으로는 어머님들이 특히 남편에게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으신데 그래서 어떤 어머님은 남편이 병원에 따라오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셨습니다. 오셔도 치료 도중에는 꼭 진료실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왜 그러느냐며 이해를 못하는 눈치셨지만 제 눈에는 어머님의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배우자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그 나이의 많고 적음이 결정하는 문제는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기사로 가수 이석훈 씨가 각자의 노년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나타난 아내의 모습에 "예쁘다"라고 말한 내용을 얼핏 접하게 되었는데 정말 뭉클했습니다. 아마 틀니를 만드시는 모든 분들이 그 노년의 나의 모습이 배우자에게 그렇게 다가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만약 배우자가 이가 빠지고 틀니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런 변화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듬어 주십시오. 배우자가 모른 척을 바란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듯 지나가시고 웨딩드레스를 고르듯 신중하게 같이 봐주길 원한다면 결혼식 그 순간보다 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봐주십시오. 더 나은 개선의 방향과 문제 해결을 위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마시고 그냥 변함없이 예쁘다고 그리고 원하는 행동을 해주십시오. 더 나은 모습은 저희들이 진료실에서 고민하겠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보통은 어머님들이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시는데 틀니를 손보고 만드는 저에게마저 틀니를 빼거나 장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몸을 돌리시거나 그 짧은 순간에도 휴지에 말아서 저에게 틀니를 건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가 빠져서 황량하게 변해버린 입안을 보여주기 싫고, 그 큰 덩어리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마냥 싫은 것입니다. 그 무던하신 제 이모부님도 이모님에게는 그 모습을 보이기 싫어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자는 삶의 방식을 찾았듯 틀니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분들 모두 한결같이 이가 없는 나의 모습을 행여 누구에게 보일까 숨기고 또 숨기게 되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는 제가 틀니를 만드니 괜찮다는 말을 건넸지만 지금에서는 그 건네는 충분한 시간을 드립니다. 천천히 빼셔도 되고 떨어뜨리지 않게 여기에 안전하게 놓으시라 그럼 제가 보겠다 말씀드립니다.
어머님들도 아버님들도 이가 모두 없는 것은 또 다른 변화이기에 쑥스러움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최근 접한 제목들 중에 "엄마는 처음이라서"라는 뉘앙스의 제목을 접했는데 이와 비슷하게 어르신들도 이가 없는 상황이 처음이라서 낯설어서 더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춘기에 아이들이 보이는 여러 행동들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다른 복잡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아이가 성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충격과 스트레스를 인정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틀니를 만드시는 어르신들도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또 다른 변화들을 받아들이셔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춘기의 신체적인 변화를 인정하듯 어르신들의 변화에 따른 그 충격과 스트레스를 보호자들이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DHLEE.Prosthodontist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