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언제 놀아?’
이 작품이 개봉했을 당시, 세간에 많은 호평과 기억에 남는 리뷰들이 많아 꼭 보고 싶었지만 한국에 있지 않아서 극장 관람을 놓쳤던, 그 후에는 나름대로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잊고 살았던 윤가은 감독의 작품 ‘우리들’ 을 후속작 ‘우리집’ 을 감상하기 전날 부랴부랴 감상했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본 작품은 짜임새 있고 단단하다. 불필요한 장면 하나 없이 뛰어난 카메라 워킹으로 호흡을 조절해가는데 94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 특히나 롱테이크 기법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추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관계에 대한 고찰’ 을 담아낼 때, 극장에서 관람하는 값진 경험은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손톱에 물드는 봉숭아 물과 화려한 색으로 그 위를 덮을 순 있지만 결국 벗겨지고 마는 건 매니큐어라는 걸 보여줌과 동시에 엔딩 속 타인의 모습을 통해 오프닝 속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며 성장하는 모습, 여름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도 계절의 싱그러움과 존재감을 표현해내는 것, 모두 선명히 기억에 남는 연출이다.
관계, 참 어렵다. 정확하게 발음하여 말하기도 쉽지 않은 ‘관계’ 는 비단 내 삶을 돌이켜보더라도 쉬웠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다. 가족, 친구, 애인 그 주체가 누구이든지 간에 삶 속에서 타인과 어떤 관계를 구축하고 나면, 그 안에서 신뢰를 쌓아야 했고, 그 신뢰가 무너지지 않게 가끔씩은 거짓말도 해야 했고, 그 거짓말로 인해 관계가 무너지기도 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극 중 선이, 지아, 보라 또래의 나이였을 때 오히려 더 힘들게 나를 괴롭혔다. 요령이란 게 조금도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던 그때 그 시절엔 어떻게 해야 맞는지를, 무엇이 옳은지를 내게 알려 준 책이나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더 쉽게 상처를 주고받았고 그러면서 키도 크고 관계를 다듬는 내 요령도 함께 다듬어졌다. 그럼에도 관계는 내게, ‘우리들’ 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실로 복잡한 질긴 실타래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 4학년, 내 나이 11살일 때는 숨기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지금은 부끄럽지 않은 것들이 부끄러운 나이였고, 어떤 무언가를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숨기다가 탈로 났을 때 흡사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 비슷한 것을 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고민이 있으면 편하게 털어놓으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때 우리에겐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학교 앞 분식집 김밥처럼 쌓여있는 ‘우리들’ 에게는 모든 게 어려운 숙제였다. 학교 숙제가 없어도 학원 숙제가 있었고, 학원 숙제가 없으면 인생의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일 말고는 정녕 쉬운 것이 없었다.
우리들은 그렇게 성장하며 살아 왔고, 아마 내일이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 그럼 언제 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