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타인의 삶을 열어보고 들여다보는 일은 그다지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 내면에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되려 더 멀어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알던 사람 아니 어쩌면 그를 조금도 알지 못해 그저 겉으로 비추어지는 모습으로만 판단한 것에 대한 벌을 받듯 나와 이 사람과의 거리를 실감하고 조금 실망하고 또 아쉽고 그러면서 약간의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먹고사는 일에 치여 자식들에게 동등하고 평등한 애정과 관심을 주는 법을 알지 못하는 부모. 가부장적인 성향의 아빠 그리고 내 딸은 자기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가 있다. 언젠가 본듯한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할 그런 모습의 가정을 세밀한 연출로 평범하지 않게 담아낸다. 촬영 구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짙은 인상을 남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시퀀스가 많이 보이는데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다가오는 그 장면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편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과 단어 자체로 그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가정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주인공 은희는 불편하고 행복하지 않고 괴로워 울부짖으며 거센 날갯짓으로 허공을 퍼득인다. 비상식이 상식을 삼켜 세상을 잠식할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 무엇이 우선인지 나중인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세상에 빠져 살아야 할 때,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만 할 때 삶은 그 자체로 가 괴로움임을 깨닫게 한다. 행복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어떤 슬픔과 독대해야 한다. 끝내 이겨내야 할 이 슬픔과의 갈등이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님을 느낄 때, 다행히도 누군가 내 옆에서 온기를 나눌 때 세상은 많이 살만해진다.
1994년, 15살이었던 은희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분명 빛났을 것이다, 신기하고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