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끝내주게 재밌었던 영화 ‘포드v페라리’ 를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극장에 갈 시간이 없었다. 거진 한 달 만에 감상하는 영화를 아무 작품이나 보고 싶지 않아 상영작 중 가장 보고 싶었던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미안해요, 리키’ 를 2020년의 첫 영화로 감상하였다. 우선적으로 밝히면 나의 선택은 옳았고, 이 영화를 통해 감독 ‘켄 로치’ 가 내고자 하는 목소리는 그보다 더 옳다고 여겨진다.
그의 바로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가 그러했듯, 이 작품 역시 영국 내에서 외면받는 하위 계층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니 영국을 비롯한 다른 곳들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직설적이며 현실적이고 그래서 잔인한 이야기로 들린다는 건 삶이 주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영화 속 이 부부는 정직하다. 자신들의 할 일을 성실히 다 해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두 자식과 자신의 배우자, 즉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삶을 감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는 넘치게 존재한다. 주 6일을 하루 14시간씩 일하며 발버둥 쳐도 지갑은 쉽게 두꺼워지지 않으며, 그러한 생활고로 인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한 부모의 노릇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게 말 그대로 겉잡을 수 없이 복잡하고 심각하게 꼬여버리고 만다.
세상은 늘 이런 식이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풍족하고 달콤한데 어떤 누군가에게는 쓰다 못해 처절하고 슬프기에 눈물이 앞을 가려 저 밖에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조차 없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게 세상이고 국가이며 사랑이라고 여기지만 현실은.. 멀다, 아득하게 그리고 비통하게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엔딩이 주는 여운이 더더욱 옅지 않다. 눈물을, 피를 흘리면서 현실로 나아가는 리키에게 모든 포커스를 주고 이 이야기의 매듭을 맺기에 이 세상을 현실의 이면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 를 ‘미안해요, 리키’ 라고 번역한 건 여러 의미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연히도 이 영화를 관람하기 불과 몇 시간 전 어떤 상황을 마주했다. 보내야 할 택배가 있어 수거를 예약을 해둔 날이었다. 12:00 수거예정이라는 메시지에 맞춰 일터에서 볼 일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12시 하고도 4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여전히 기사님은 오지 않았다. ‘조금 늦으시네’ 라는 생각을 할 때 즈음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연신 고개를 숙이시는 기사님에게 나는 괜찮다 라는 말뿐이 할 수가 없었다. 월요일 오후, 도산대로의 말도 안 되는 교통체증을 뚫고 제시간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기에 촉박하게 일정을 잡아두지도 않았다. 나는, 진짜 괜찮았다.
우리는 미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그토록 미안한 것인지, 정말 미안한 것이지 생각해 볼 일이다.
훗날, 정말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