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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Feb 17. 2021

소울

‘하늘을 보거나 걷는 건 목적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극장에 갔는데 써보지도 못한 VIP 쿠폰들이 사라지면서 함께 자연스레 멀어지고 말았다.  전염병은 우리의 삶에서  많은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이마를 까서 체온 체크를 하고 영화관 자체 시스템의 QR까지 등록하고 나서야 상영관으로 자리할  있었다. 이 정도의 수고라면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영화가 볼만한 가치가 있었냐는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예스다.

이미 지인들의 극찬세례와 영화와 관련된 감동적인 리뷰들을 넘치게 읽은 터라 기대감이 한껏 올라가 있던 픽사의 신작 ‘소울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따뜻하고 인상적인 메시지를 스크린을 통해 전달한다.


영혼을 울릴만한 어떤 삶의 이유를 찾느라 많은걸 놓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면전에 대고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치는 작품이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이 성립하는 조건에는 단순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아닌,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고차원적이며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감성적인 측면에서 삶은 존재하고 반짝인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주를 배경으로 떠다니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여주는 , 우리의 삶과 영혼은 그렇게 마주하여 자리한다는  한 장으로 요약하는 모습처럼 보여진다.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게 되면 점점 커지는  간절함이 현실이란 그림자마저도 밝게 비추어내고 만다. 어두운 면을 가려버리고 덮어두게 만들어 외면하게 한다. 간절함 끝에 원하는 것을 마주하고 그림자를 만들던 빛을 등지고 나면 예기치 못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덮어두었던 어둠을 안아야 할  사람은 한없이 작아진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손에 잡을 때마다 영혼이 울리는 떨림을 죽을 때까지 느낄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내가 전부라고 여기는 세상은 결코 세상의 전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있는, 살아가는 이유는 바다가 아닌 물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바다를 찾아 나설  있는 삶이 있어서다. 바다는 멀지만 삶은  바로 여기 있고, 삶이 있어서 나는 영혼을 느낄 수도 있다.


삶이 없는 영혼의 존재 목적, 그런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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