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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Mar 17. 2021

미나리

‘할머니께서 자리를 참 잘 고르셨다’


받침소리가 없어 아마 미국인들도 상대적으로 발음하기 쉬울 단어를 제목으로  영화, 미나리를 관람했다. 국제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으며 침울하고 우울한  전염병 시대에 계속해서 반가운 수상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런 작품이다. 그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 같은  영화의 발견은 아마 쉬운 발음 때문만은 아닐 테다. 직접 스크린에서 확인한 미나리의 가치는 역시, 결코 발음 때문이 아니다.


 당시에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가족들의 모습이 모두 이들과 같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이런 모습을  가족들 역시 손가락으로 세기에는 부족할 만큼 많았을 것이다. 한국 가족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지내며 느끼는 문화적인 충돌과 가치관의 괴리감,  외부의 요소들 보다도 가족이라는 집단안에서 구성원 개개인이 지닌 생각과 책임감으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의 모습들을 줌인하여 다루는데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미나리를 비롯한 식물, 어디 식물뿐이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에게 물은 모두가 알고 있듯 삶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아무데서나 뿌리내리고  자란다고 알고 있는 미나리 역시 물이 가까이에 있어야 비로소  성격을 보여줄  있다. 가족이 생활에 사용해야  물까지 본인의 농사에 끌어서 써야만 했던 아버지이자 남편, 누군가의 사위인 제이콥에게 많은 감정이입이 된다. 그도 남들처럼 잘할  있다고 믿었고, 분명 잘하고 싶었을 것이다. 떳떳하지 못한 남편, 자랑스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수컷의 말로를 누구보다  알고 있는 인물이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팔도 들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된다.


쿠키도 구울  모르는 ‘그랜마 비로소 할머니로 받아들이면서 데이빗은 성장한다. 과연 부모의 품 안에서만 자란 아이들이 조부모의 사랑까지 받은 아이들보다  빨리 뜀박질을   있을까. 여러 부류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가 아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는다.


   가족들의 집은 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집 같지도 않은 집에서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간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씻겨주기도 하며 가족만이   있는 일들을 해내며 하루하루 그들만의 뿌리를 내려간다. 어디서든 알아서  자란다는 미나리, 순자라는 인물을 통해서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주제의식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느껴지는 갈증과 오로지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해소할  있는 갈증이 있다.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매서운 불길 같은 고난과 역경에도, 미래라고는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은 가장 가까운 곳에 샘물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름은 

역시 가족이고, 앞으로도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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