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재미있었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아니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어떤 게임, 아니 게임이 아닌 드라마.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률 집계에서 조차 1위의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을 내게 안기는 작품으로 기억될듯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글로벌 집계 1위는 국내 컨텐츠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며 딱히 적절한 예시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엄청난 기록이라고 생각을 한다.
글로벌 집계에서 이 드라마가 1위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건 전체를 아우르는 대중성과 뼈대 굵은 주제를 안고 있는 작품성, 이 둘이 만나 탄생하는 결과물을 마주할 때, 대중의 반응이 어떠한지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수치라고 보여진다. 우리 모두는 쉽게 컨텐츠를 만지고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컨텐츠를 쉽게 끊어버릴 수도 있다는 소리다. 빨리 감기 해버릴 수도 있고, 정지해버릴 수도 있고, 아예 어플을 종료해버릴 수도 있다. 고작 몇 번의 손동작만으로도 모두 가능한 그러한 시대 속에서 국내 작품이 이러한 주목을 받고 수치를 보여준다는 건 상당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 아니 사람들이 등장한다. 내용이 점차 흐르면서 각자가 처한 상황과 처지를 알게 되고 나면, 보는 이의 입장에서도 느껴지는 암울함과 좌절감이 가증된다. 더 이상의 나락은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 더 극한의 낭떠러지로 스스로를 몰고 가는 주인공을 보면 답답함과 안타까움, 분노와 동정 그리고 연민까지 더해져 공존하기 힘들 것만 같은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만다. 거기에 그 한 명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상황 속에서 이 작품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456이라는 숫자를 곱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게임이라니.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연출이 특히나 눈에 띈다. 알록달록한 색채들로 꾸며진 게임 안의 세상 그리고 무채색의 톤을 가진 게임 밖의 세상, 즉 우리의 현실이 완벽하게 대비되는 비주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지옥보다 지옥 같은 게임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지옥일지도 모르는 현실의 세계를 극의 초반에 교차로 보여줌으로써 톤의 대비를 이루는 연출로 그 게임의 잔인무도함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아이들의 놀이터와 같은 형형색색 한 색채를 화면 가득 채우고난 다음 그 위를 빨간 피로 덮어버리는 연출, 이 게임의 아이러니함을 색깔로 정확하게 그리고 소름 돋게 표현해낸다. 빨간색 딱지부터 시작해서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내 시달린 기훈이 마지막에 선택한 헤어스타일이 나타내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언젠가 장항준 감독이 우스갯소리로 한 프로그램에서 말했다. 넷플릭스는 제작과정에서 창작자에게 돈만 준다고, 작품 내용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돈만 지원한다고 농담처럼 사실이라고 말을 했다. 불필요한 PPL 이 걷어내지고, 시대와 맞지 않는 방통위가 고집하는 규제의 틀에 걸리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증명하는듯한 작품 오징어 게임. 정말이지 중간에 게임 참가자들에게 잘 포장된 배달음식을 주지 않은 사실이 어찌나 반갑던지.
오징어 게임은 재밌는 작품이다. 어떤 장면 장면들로 인해 과거의 몇몇 작품들을 한데 묶어둔 기분도 들지만, 그 배치나 오마주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다. 뜨거운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속편 같은 건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복되면 지겨운, 뻔한 플루트임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퀄을 쿠키로 짧게 담아줬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게 살짝 아쉽다. 다시 말해 뻔하디 뻔한 문어 게임은 결사반대다. 오징어 게임, 딱 거기까지만.
작중 기훈은 초반에 아무 것도 없을 때도, 후반에 어마무시한 것을 가지고 나서도 누군가와 10,000원을 주고 받으며 그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단돈 만원으로 말이다.
정말, 충분히 잘 만든 게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