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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연 Sep 17. 2016

지금은 아무런 말이 필요하지 않아요

제주 비자림을 만나는 가장 완벽한 방법


붉은 흙 길


양팔을 가득 벌려 안아도 다 잡히지 않을 둘레의 나무들


걸을 때마다 저벅저벅 경쾌한 흙소리



숲마다 색깔과 느낌이 다를지언데, 비자림은 마치 태초의 신비가 담겨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숲길을 걸을 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사실, 정말로 아무런 말도 필요하지 않다






오랜만에 떠난 제주 여행. 가장 기대가 컸던 곳이 바로 비자림이었다.  


비자림은 수령이 500~800년인 오래된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하늘을 가리고 있는 매우 독특한 숲으로 제주도에서 처음 생긴 삼림욕장으로 알려져 있다.


단일 수종의 숲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숲이다.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아 연중 푸르른 비자나무 숲.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


나는 설레고 행복한 마음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의 말소리가 이렇게 크고 성가실 줄이야.


가족단위로 온 한 일행은 숲을 걷는 내내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말을 하는지 나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기억조차 남지 않을 이야기들, 시시콜콜한 건너건너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 등… 말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앞선 일행과의 거리가 떨어져 말소리가 희미해질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고요함을 느끼고 싶었던 나는 말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뿐이다.



"여름의 숲은 크고 깊게 숨 쉬었다. 나무들의 들숨은 땅속의 먼 뿌리 끝까지 닿았고 날숨은 온 산맥에서 출렁거렸다. 뜨거운 습기에 흔들려서 산맥의 사면은 살아있는 짐승의 옆구리처럼 오르내렸고 나무들의 숨이 산의 숨에 포개졌다."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177p


오롯이 자연 안에서 바람, 새소리를 듣고, 대지의 숨결을 느끼기에도 부족한 귀한 시간이다.


목소리를 줄이고, 조용히 숨을 고르는 순간 자연의 소리는 확성기를 단 듯 내 귀에서 울려 퍼진다.


바람소리, 거리를 알 수 없이 우는 새소리. 풀벌레 소리. 이내 숲의 신성함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숲을 찾는 이유도 바로 자연 속에 들어오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가족끼리 쌓여 있는 이야기는 조금 뒤에, 뛰어다니며 재잘거리는 아이에게도 '잠시 숲이 주는 고요함과,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자' 말해주면 어떨까.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작가의 말 中


일상 속에서 만나는 매일 만나는 인공의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드물다. 적막강산이지만, 마음속에 오래 기억에 남을 무언의 발걸음은 숲길을 걷는 완벽한 방법이지 않을까.


다시 비자림을 찾는다면, 나도, 당신도 모두가 그 적막함과 고요함을 온 몸으로 누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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