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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May 13. 2016

차(茶)로 지은 섬, 스리랑카

지구를 거닐다_20150822

후끈한 열기와 함께 나를 아찔하게 만든 것은 진한 차 향이었다. 진하다 못해 코가 마비될 정도의 차 향. 찻잎이 건조되고 부서지는 과정에서 나는 향기는 향긋함을 넘어 어지러울 정도였다. 코가 익숙해지는 데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차를 말리고 롤링하고 선별하는 과정을 둘러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긴 머리를 곱게 땋아 내리고 숙련된 손으로 찻잎을 다루는 스리랑카 여성들에게서 분주함이 느껴졌다.


공장 밖은 온통 차 밭이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더라도 그곳에는 초록빛의 차 나무가 있었다. 차 나무의 키를 비슷하게 관리해 깔끔하게 정돈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방이 차 밭인 곳이라 차 인심이 후했다. 이곳을 방문한 모든 이에게 무료로 차 한잔을 대접한다고 했다. 금테가 둘린 하얀 찻잔에 담겨오는 차는 빛깔만큼이나 맛이 곱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방문했다는 맥우즈(Mackwoods) 티 팩토리의 명성답게 훌륭한 맛이었다. 사발만한 찻잔에 담긴 차는 나의 차 욕심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블루필드(Blue field) 티 팩토리에서는 실버팁(Silver tip)을 주문했다. 앞 테이블에 앉은 서양인 가족 중 막내로 보이는 소년은 꽤나 진지하게 차를 마셨다. 찻잔에 코를 대고 향을 음미했다가 한 모금 입에 품고는 이내 눈을 감고 미소를 짓는다. 가족 모두가 차를 사기 위해 상점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끝까지 혼자 남아 찻잔까지 마실 기세로 차를 들이켰다. 차 맛에 홀려 정신이 팔렸는지 시계를 벗어 두고 갔다. 쫓아가 건네주었더니 특유의 영국식 악센트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차를 향한 영국인의 사랑은 어른에서 아이까지 나이를 구분하지 않는가 보다.


이윽고 주문한 차가 나왔다. 실버팁은 자연 상태에서 그대로 햇빛에서 잎을 건조한 차이다. 인공적인 가공이 없는 탓에 고가에 팔리는 최고급 차라고 했다. 얇고 긴 찻잎을 그대로 넣어 우려내는 실버팁은 맑은 빛깔만큼 깨끗하고 깔끔한 맛이 났다. 홍차보단 녹차에 가까운 맛이었다. 온종일 차 밭을 거닐었고, 차 향에 물들었고, 차 맛에 녹아들었다.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우아한 하루가 오천원도 채 되지 않은 돈으로 완성되었다.




오직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아트래블(ARTRAVEL)' 잡지 5월호에 스리랑카 여행의 기억을 담은 원고가 실렸습니다. 그 중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아트래블 잡지를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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