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는 접두사는 한국을 바라보는 보다 확장된 이들의 시선과, 이를 대하는 한국인의 시선이 교차하는 특성을 갖는다. 우리가 ‘K-’라는 접두사의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복합성에 있다. 외부에서 벌어진 현상인 ‘한류’를 자신에게 적용하는 노력의 동력으로 전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이 K에 담겨 있다. 현재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글로벌 미디어스케이프의 변동 속에서, 한국의 문화적 코드와 보편적 관점에서의 콘텐츠의 품질이 ‘K-’라는 접두사를 통해 묶여 있는(coupling) 조건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접합의 결과는 언제든지, 다시 분리(de-coupling)될 수 있다. 문화 코드로서 K의 매력 수준이 높아질수록, K-콘텐츠 생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 한국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화가 진전될수록 한국의 문화 코드로 부터는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글은 ‘K-’ 개념의 특성에 주목하며, 이를 계기로 우리의 문화적 인식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기회를 만들어나갈 것을 제안한다.
1. 들어가며: K-콘텐츠는 어떤 K-의 꿈을 꾸는가?
‘K-’로 시작되는 접두사가 한류라는 단어를 대체하며 부상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하던 한류의 흐름이 전 세계를 범위로 하는 현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이를 포착하는 핵심어로 ‘케이(K-)’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한국의 영상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순간에, 이를 기존의 드라마와 비교하기 위해 ‘한류 드라마’와 ‘K-드라마’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했다(이상원, 2021.12.15.). K-개념의 흐름을 빅카인즈를 통한 분석한 박소정(2022)의 연구에 따르면, K-담론은 2019년과 2020년을 분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다수의 연구자가 ‘한류 4.0’ 혹은 ‘한류 제4기’(채지영, 2021; 양수영, 이성민, 2022)로 구분하는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류는 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지리적 확장에 성공했다. 그렇기에, ‘K-’라는 접두사는 한국을 바라보는 보다 확장된 이들의 시선과, 이를 대하는 한국인의 시선이 교차하는 특성을 갖는다.
우리가 ‘K-’라는 접두사의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복합성에 있다. 이에 대해 박소정(2022)은 ‘K-’라는 개념이 문화적 흐름과 산업으로서 상품의 특성, 수용과 발신, 선진과 후진의 양가성 사이를 오가며 담론장 내부에서 경합하며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한류’라는 개념 대신, ‘K-’라는 접두어를 활용하는 현상 자체가 이러한 변화의 국면적 특성을 드러낸다. 즉, 한류라는 개념으로 포착되었던 문화적 흐름의 새로운 국면에서, ‘K-’는 모호한 현실 일부를 품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K-는 콘텐츠 중심의 개념인 한류를 보다 확장된 범위에서 활용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기존의 한류가 ‘흐름’을 강조했다면, 지금의 K-는 출처를 강조한다. 한류가 해당 지역에서의 ‘현상’을 호명하는 용어라면, K-는 지금 우리가 ‘발신’하는 상품화된 요소들 개별을 지칭하는 용어로서의 힘을 갖는다. 즉 ‘K-’ 접두어의 활용은 수용 현상(홍석경, 2021)으로서의 한류에 주목하기보다, 우리가 만들어낸 무언가로서의 요소를 강조하는 용어적 특성을 갖다. 즉, 한류에서 ‘K-’로의 개념의 이동은 타자의 시선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충돌하고 교차하는 지점들을 고민하게 하는 전이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K의 모호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외부에서 벌어진 현상인 ‘한류’를 자신에게 적용하는 노력의 동력으로 전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이 K에 담겨 있다. 다시 말해, ‘K-’에는 타자(글로벌)에게 인정받고 싶은 부분과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포착되는 우리의 특질 사이의 틈새만큼의 모호함이 존재한다. 결국 우리가 어떤 ‘K-’를 상상하느냐에 그 모호함의 크기가 달려 있다. ‘K-콘텐츠’란 용어에서 우리는 무엇을 꿈꾸는가? 한류로부터 시작된 흐름을 의도적 성과로 전유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는 결국 그 꿈의 실질적 내용과 방향에 대한 인식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콘텐츠와 문화 관점에 집중해서 K-담론의 확장 과정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유’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는 ‘K-’라는 접두어가 갖는 현재 맥락에서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이를 계기로 한류, 혹은 K-콘텐츠 성장을 위한 적절한 단계를 모색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 즉 기존의 K-담론을 넘어서기 위해 K-개념을 다시 돌아보고, 그 의미의 확장을 위한 담론적 수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글은 K-담론의 모든 측면을 다루기보다, K-콘텐츠 영역 안에서의 변화에 집중하려 한다.
2. 돌아보기: K-의 확장을 이끄는 K-콘텐츠의 성장과 고민
‘K-’라는 접두어 활용의 출발점은 K-pop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기존에 일본 대중음악의 세계적 성과를 의미하는 ‘J-pop’이란 용어를 변형한 ‘K-pop’이란 표현은 기존 서구 문화의 전유(박소정, 2022)의 성공 사례로서 아시아 문화의 국가별 특징을 포착하는, 일종의 원산지 표기에 가까운 의미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즉 ‘K-’라는 접두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특정한 국가라는 ‘출처’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보편성의 기회를 얻은 개별 국가 단위의 구별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K-’ 개념이 다른 장르와 분야로 확장되는 과정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K-드라마의 부상 과정은 강혜원과 이성민(2022)이 주목한 ‘이중의 상품화’라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장르와 취향을 중심으로 획득한 보편성의 코드에 개별 국가의 문화적 코드가 접합되는 방식으로 ‘글로벌 텔레비전’으로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기획되고 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역의 공유된 취향에 근거하여 기획-제작이 이루어졌던 기존의 ‘한류’ 드라마의 전형성을 벗어난 새로운 콘텐츠들이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 중에서도 한국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면서 이러한 ‘K-드라마’에 대한 주목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적 코드 역시 유사한 방식의 ‘이중의 상품화’의 구조에 위치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르코스’나 ‘종이의 집’과 같은, 남미의 드라마들도 장르와 국가적 문화 코드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오징어 게임’과 유사한 위치를 공유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K-드라마’는 국제적 문화 흐름의 사례로서 ‘한류’와는 구분되는, 현재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서비스가 만들어낸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개별 국가들 작품의 위치를 드러내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즉, 일종의 원산지 표기로서 ‘K-’와 같은 표현은 타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는 확장성을 갖는다. 이는 ‘한류’라는 현상을 통해 확인한 ‘주변’ 국가의 문화적 생산물이 세계 시장에서의 ‘중심’으로 흐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좀 더 다양한 국가에서 확인 되는 과정 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 1996/2004)가 제시한 미디어스케이프(mediascape)와 에스노스케이프(ethnoscape)의 개념은 ‘K-’개념의 복합성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이는 ‘풍경(landscape)’이란 은유를 통해 기존에 단단하게 묶여 있던 미디어-풍경과 인종-문화적 풍경을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세계화 과정에서의 문화-미디어의 변화를 적절히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즉,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문화적 정체성 재료의 공급이 글로벌 범위로 확장되면서, 우리의 인종-문화적 정체성의 구조 역시 변동을 겪고 있는 상황에 주목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글로벌 OTT 중심의 영상 콘텐츠 환경 변화는 더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들이 각 문화 코드의 특수성 상품화 전략과 글로벌 보편성의 발굴(강혜원, 이성민, 2022) 과정에 참여하게 만든다.
특히 이러한 미디어스케이프의 변동은 전통적인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다. 각 나라의 문화적 특질은 더 다양한 타자의, 보편적 시선에 노출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코드’화 된 형태로 상품화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러한 상품화의 전략에 따른 외부의 시선이 개별 국가 단위에서 내면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확장해나가는 보다 긴밀히 연결된 세계-문화의 변동 속에서, 상품화 가능성이 큰 개별 문화의 요소들을 코드화된 형태로 묶어내는 전략과 이 전략 안에서 자신의 특질을 분별하려는 시도가 교차하고 충돌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K-’를 활용한 용어가 한국에서 확장되고 있는 것은 문화적 특수성과 보편성의 요소를 타자의 시선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이러한 글로벌 미디어스케이프의 논리에 자신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적 코드와 보편적 관점에서의 콘텐츠의 품질이 ‘K-’라는 접두사를 통해 묶여 있는(coupling) 조건이 발생한다. 이 점에서 ‘K-’를 활용한 개념은 이중의 욕망, 즉 우리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내적 역량의 차원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조정될 수밖에 없는 코드화된 문화 차원이 위태롭게 접합된 결과물(assemblage)’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접합의 결과는 언제든지, 다시 분리(de-coupling)될 수 있다. ‘K-’의 위기와 가능성도 바로 이러한 변화의 방향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3. 내다보기: K-경계의 혼란 속, 디커플링의 전조 읽기
최근 주목할만한 영상 콘텐츠 산업의 흐름 중 하나는 문화 코드로서 K의 매력 수준이 높아질수록, K-콘텐츠 생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금 다수의 사람에게 K-콘텐츠의 일부로 인식되는 작품 중에, 한국의 자본과 제작진의 참여와는 거리가 있는 결과물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애플TV를 통해 공개 된 ‘파친코’다. ‘파친코’는 한국 국적의 배우가 참여한, 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의 많은 요소가 반영되어 있지만, 제작의 과정과 유통의 관점에서 한국 드라마 산업과의 연계성은 높지 않다. 특히 소위 말하는 K-콘텐츠의 ‘품질’ 측면의 성취를 설명하는 작품으로는 부적할한 위치에 있는 결과물이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의 문화적 코드의 활용은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파트너 트랙(Partner’s Track)’은 한국계 미국 여성 변호사의 일과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다수의 한국 문화가 드라마 안에 재현되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의 원작은 중국계 문화를 배경으로 나온, 중국계 미국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이다. 미-중 갈등의 상황과 오리지널 작품 배급이 어려운 넷플릭스의 조건에서 대안으로 ‘한국문화’를 선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 문화를 배경으로 삼은 ‘쿵푸팬더’나 ‘뮬란’을 ‘중국 애니메이션’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듯이, ‘파트너 트랙’ 같은 작품 역시 한국 드라마로는 볼 수 없다. 이러한 ‘한국문화 코드의 전유’가 점차 확대된다면, 우리가 이야기 하는 ‘K-드라마’의 경계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 현재 활용되는 ‘K-’의 용법에는 한국-문화와 한국-창의성, 혹은 한국-산업적 역량의 요소가 결합하여 있다. 문제는 한국문화의 매력이 높아질수록, 이들 간의 긴밀한 결합은 점차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서구의 시각에서 한국적 요소의 상품화와 장르 기반 보편화의 역동이 결합한 결과물이 바로 ‘K-드라마’를 상징한다면(강혜원, 이성민, 2022), 이때 K-드라마의 두 가지 요소, 즉 글로벌 보편성을 지향하는 높은 프로덕션 퀄리티와 한국의 문화적 요소 상품화의 연결, 즉 이러한 복합체(assemblage)는 은 지금의 미디어-콘텐츠 산업 지형 속에서 얼마든지 분리-결합할 수 있다. 이는 K-라는 개념 아래 묶여 있던 한국문화와 콘텐츠 산업이 얼마든지 분리(decoupling)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한국의 콘텐츠 기업 들은 한국적 색채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글로벌 IP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이 한국의 문화적 코드를 전면적으로 차용하는 상황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K-개념에는 한국문화 코드의 상품화라는 타자의 시선과 우리 스스로 내세우는 고유의 문화적 요소들이 결합하여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끊임없이 ‘갈등하는 K’의 풍경을 소환한다(이규탁, 2020). 타자의 문화가 매끄럽게 보편화된 외피를 입은 채 유통되면서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문화권에 대한 무신경한 인식의 결과들은 글로벌 수용자와의 접점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충돌을 불러일으킨다. 더 큰 문제는 개별 국가의 문화적 코드가 경쟁적으로 상품화되는 현재의 글로벌 미디어스케이프 상황에서, 누가 해당 문화 코드의 주인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봉황 비녀’가 중국의 것인지 한국의 것인지를 두고 소셜 미디어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문화적 전유(cultral appropriation)’을 둘러싼 논쟁과 경쟁은, 상품으로서의 문화적 코드의 가치가 높아진 미디어스케이프 환경에서 벌어지는 진정성 투쟁, 즉 전유의 권리를 둘러싼 힘겨루기 양상을 보인다.
흥미로운 부분은, 글로벌 문화 산업을 주도하는 서구의 미디어 기업들은 자신의 문화 코드를 ‘K-’와 같은 조어로 명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K-’와 같은 표현이 ‘Made in Korea’와 같이 원산지 표기 중심의 신뢰와 상품화 구조가 작동하는 영역에서나 의미가 있음을 드러낸다. 즉, 아직 ‘K-’라는 접두사는, 우리의 욕망이 여전히 타자의 시선을 갈망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방증한다. 우리의 산업적 성장은 지금의 인정 투쟁의 단계를 넘어서, 진정한 글로벌 보편의 일부로서 당당하게 자리잡는 단계로 진입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한국 문화의 상품화 흐름과 문화-콘텐츠 산업의 성장 방향은 이미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웹툰 기업들은 이미 다수의 지역에서 현지 창작자들의 창의성을 품는 ‘플랫폼’으로서 현지화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남미 출신의 미국 국적 웹소설 작가의 영어 소설을 태국의 웹툰 작가가 웹툰 작화를 담당하고 다시 미국과 한국의 드라마 제작사가 협력한 결과물을 글로벌 OTT를 통해 전 세계로 서비스하는 것이, 지금 한국의 선도 기업들이 형성하고 있는 글로벌 가치사슬에 내포된 잠재적 미래의 모습이다. 오히려 한국의 문화적 요소는 글로벌 기업이 적극적으로 전유하면서 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보다 넓게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방향의 분리(de-coupling)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 자체에 대한 이해 자체가 한 단계 더 성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흐르고, 교차하고 충돌하며, 융합된다. 한국이 거둔 지금의 성취는 이러한 거대한 흐름의 결과물이다. ‘K-’를 활용한 개념들은 때로 이러한 흐름의 한 장면을 포착해서 고정화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흐름’을 고정화하려는 시도는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K-’의 활용은 결국 좁게는 한국 콘텐츠 산업, 넓게는 한국의 문화적 성취가 다음 단계의 흐름으로 넘어가기 위한, 일시적인 시도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문화 매력 국가’라는 목표를 상상한다면, 이는 ‘K-’를 경유하면서 결국 ‘K-’를 넘어서는(Beyond-K) 과정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목표인 것이다.
4. 나가며: K-의 모호함을 통해 K-의 다음 단계를 상상하기
대중문화 영역에서 나타난 한류 현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꽤 오랜 기간 회의적 입장을 취했다. 그 네 번째 단계에 이르러서,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을 향한 도약을 이루어 낸 이후에야 이제 한류라는 ‘수용 현상’은 자신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K-’ 개념의 형태로 재인식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타자의 수용 현상을 스스로의 전환과 성숙의 기회로 전환하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되는 ‘K-’ 개념의 모호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갈 것인가이다. 이 글에서는 ‘K-’ 개념의 부상을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문화-상품의 구조 변동 속에서 이해하고, ‘K-넘어서기’(Beyond-K)를 위해 필요한 노력의 방향을 발견하고자 했다.
개념은 일종의 도구이다. ‘K-’를 활용한 개념들을 적절한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그 안에 담겨 있는 ‘모호함’을 전략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K-’의 모호함을 통해 글로벌 문화 흐름의 복합성을 인식하고, 우리의 문화적 인식이 타자에 대한 인정 투쟁에 치중하는 단계를 넘어 보다 확장된 방식으로 성숙할 수 있기 위한 노력을 고민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K-’가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수용자의 ‘문화 다양성’에 주목하고, 창작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확대하는 것을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론 한국의 문화적 코드들의 상품화 국면에 적절히 대응하며 우리의 문화적 매력을 극대화해볼 수 있겠지만, 그다음엔 보편의 문화를 품을 수 있는 더 큰 그릇으로서 ‘K-’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따라서 ‘확장하고 경합하는 K’(박소정, 2022)를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분명 지금 ‘K-’의 환상은 글로벌을 향해 있고, ‘K-’의 본질은 현재 타인의 시선에 의존한 한국의 문화적 매력 발굴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간극을 어떤 방식으로 채워나갈지는, 앞으로의 경합과 확장의 과정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의 한류, 혹은 K-콘텐츠의 성과는 언제나 이러한 성숙의 결과로서 나타났음을 인식하고, 더 적극적으로 ‘K-’의 다음 단계를 상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Arjun Appadurai(1996). Modernity At Large: Cultural Dimensions of Globalization. 채호석 외(역) (2004). 『고삐 풀린 현대성』, 서울: 현실문화.
강혜원, 이성민(2022). 넷플릭스의 초국적 콘텐츠 소구 전략 : <오징어 게임>에 나타난 장르적 보편성과 문화적 특수성의 이중적 상품화 구조 분석, 《언론과 사회》, 30권 3호, pp. 5~41.
박소정(2022). 확장하고 경합하는 K : 국내 언론 보도를 통해 본 K 담론에 대한 분석, 《한국언론학보》, 66권 4호, pp. 144~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