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을 둘러싼 인종-문화다양성 논의의 맥락 읽기
* 이 글은 2023.1.19일에 진행된 세미나 <K팝의 인종과 젠더>(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 주최)의 라운드테이블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케이팝은 이후에 나타난 'K' 조어의 출발점이었으면서, 동시에 K의 확장과 균열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탐구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K-라는 접두사는 한편으론 출처를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한국'이란 국적성을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국을 넘어선 새로운 문화의 확장을 담아내는 용어로서의 기능적 역할도 함께 담고 있다. 케이팝을 '인종'이란 렌즈로 바라보는 작업은 이러한 K-의 복합성을 읽어내기 위한 흥미로운 논점을 발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화두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1. 케이팝 개념의 확장과 한계: 아시아와 서구 사이
케이팝은 한국에서 탄생한 혼종적 음악의 장르로서, 한국이란 국적성이 부분적으론 매력의 요소로, 부분적으론 그러한 국적성의 모호성이 매력의 요소로 활용되는 이중적 측면을 갖는다. 음악산업의 관점에서는 음악과 영상 등 복합적 경험이 결합된 장르의 확장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이를 한국이라는 국적성과 인종적 특성에 한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각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아시아인 중심으로 구성된 인종적 시각화의 틀을 벗어난 케이팝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전략적 무국적성을 추구하는 혼종적 장르라 평가되는 케이팝에서 멤버 구성원의 확장의 범위가 여전히 아시아에 머물러 있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케이팝을 장르적 기호로 활용하길 원하는 다른 인종의 참여의 사례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주류적 케이팝에서는 아시아-인종 중심의 시각적 재현의 경향은 유지되고 있다.
케이팝의 확장이 다양한 x-팝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에도, 서구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이러한 조어로 호명하지 않은 문제는 케이팝이란 기표가 담고 있는 아시아-한국 인종의 중심성과 연결해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문제는 아시아-한국의 위치의 변화와 맞물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음 주제와 연결된다.
#2. 케이팝의 양면적 위치: 주류와 마이너리티 사이
케이팝은 가장 성공한 아시아-마이너리티의 서사를 포함하면서도,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의 긴장을 동시에 담고 있다. 한국에서는 가장 주류의 음악이며,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산업인 케이팝이, 다른 국가, 특히 서구 주요 국가의 맥락에서는 하위문화이자 마이너리티를 대변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적 위치로 인해,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해외에서와 한국에서 정치적, 혹은 사회적 발언을 둘러싼 이중의 요구에 노출된다. 보다 적극적인 발언을 요구 하는 해외의 팬덤과, 정치적 참여에서 거리를 두기 원하는 국내 팬덤 사이의 긴장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미묘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아시아'라는 지역 전체의 세계적 위상의 변화의 문제이다. 아시아는 경제, 안보 등 여러 의미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국면이며, 특히 미국 중심의 주류-문화산업에서 다양성과 포용의 근거로서 아시아계 아티스트의 부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케이팝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아시아-인종의 시각적 기표와 더불어 사회-문화변동의 의미를 담아낼 것을 요구받는 상황 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국내-해외의 맥락 차이가 만들어낼 긴장이, 케이팝의 향후 진화와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3. 케이팝을 향한 국가의 욕망: 정책과 산업 사이
마지막으로 케이팝이 국가-인종의 문제와 다시 한번 엮이는 부분은 바로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욕망이다. K-컬쳐의 확산을 통한 문화매력국가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의 전략 속에서 한국의 문화 상품들은 '한국'이란 국가의 이미지를 해외에 퍼뜨리는 매개로서 인식되고, 구체적인 정책들은 이러한 연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들로 이어진다. 어떤 의미에서 케이팝의 일부는 이러한 욕망에 포섭되고, 다른 일부는 이러한 포섭으로부터 벗어남으로서 대안을 찾는다. 실제 이 과정은 정책의 목표와 산업의 목표가 만나는 지점 어딘가에서 균형을 만들어낸다. 결국 앞서 논의한, 케이팝의 확장과 균열의 범위와 한계를 조절하는 요인으로서, 국가의 욕망의 크기와 방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한류와 국가 정책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 논의가 있지만, 대부분 정책이 한류에 기여한 바가 있는지를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보면, 국가 정책이 한류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한류가 국가 정책을 바꾸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류의 확장 속에서 국가의 정책이 조정과 조율을 거치는 과정에서 진화해왔고, 이는 결국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한뼘 더 자라는 것에 기여했던 것이다.
케이팝은 아시아-한국의 인종적 기표의 한계를 넘어선 보편을 향하는 방향과, 오히려 이러한 특수를 강조하는 새로운 지향의 대표성을 드러내는 방향을 모두 포괄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케이'의 의미가 조정될 것이다. 한가지 기대하는 것은, 이 과정 자체가 썩 만족스러워 보이진 않더라도, 결과로서 우리의 '케이'와 문화에 대한 이해의 경계가 확장되는 방향성을 모색해볼 수는 있을 것이란 점이다. 앞으로 이러한 방향의 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