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2024.8.1)
* 이 글은 PD저널(2024.8.1)에 특집 기획 기고문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아카이빙 차원에서 브런치에도 올려둡니다. 기고된 글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0316
지상파에서 스튜디오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SBS는 지난 해 11월, 예능 콘텐츠 제작 전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프리즘’을 공식 출범시켰다. 기존에 드라마 본부를 ‘스튜디오S’로 독립시킨 이후, 다시 예능 본부를 예능 콘텐츠 기반의 제작 스튜디오로 전환한 것이다. 스튜디오 프리즘의 제작 부문은 기존의 예능 본부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면서, 콘텐츠 제작의 범위를 기존의 채널 중심의 접근에서 확대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방송 콘텐츠 뿐 아니라 OTT 콘텐츠, 공연사업, 공동제작 및 포맷 판매, 디지털 콘텐츠, 브랜디드 콘텐츠 들을 포괄하는 사업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MBC도 지난 6월, 콘텐츠 제작 전문 스튜디오 모스트267을 설립했다. MBC로서는 첫번째 외부 제작 스튜디오로, 플랫폼과 장르에 연연하지 않는 콘텐츠 기획 제작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PP와 종편에서 시작된 스튜디오화의 흐름이 확대되어 지상파 사업자도 보다 본격적인 스튜디오 전략을 추진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콘텐츠-플랫폼 환경 변화와 스튜디오화의 가속화
지상파 사업자들이 외부 조직으로 스튜디오를 독립시켜 설립하는 흐름은 변화된 방송 환경에 대한 대응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해 12월 발표한 ‘2023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지상파 사업자의 방송사업 매출액 중 광고는 1조 2,104억원으로 전년 대비 0.1% 감소한 것에 비해 방송 프로그램 판매 매출은 1조 664억원으로 전년 대비 17.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콘텐츠 수출이 확대된 것도 중요한 변화다. 지상파 사업자의 프로그램 수출은 2022년 2억 7,124만 달러로 전년 대비 27.1% 증가했다. 지난 6월 발표된 2022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 자료에서도 유사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 방송사업자의 매출 구성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18.7%에서 2022년 15.5%로 감소했다. 프로그램 판매 매출은 2018년 8.3%에서 2022년 10.5%로 증가했다. 기존의 방송 산업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광고 매출이 정체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에서 콘텐츠를 통한 판매 수익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게 된 이유는 플랫폼 환경의 변화, 그리고 이와 연계된 콘텐츠 수출 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며 크게 성장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기존의 방송채널을 통한 콘텐츠 소비보다는 VOD를 통한 콘텐츠 이용이 확대되고 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한 콘텐츠 유통의 확대는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주목과 관심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과 해외 채널에서 국내 콘텐츠를 구매하려는 움직임도 확대되었다. 반면, 기존의 채널을 통한 콘텐츠 소비가 위축되는 과정에서 광고 유치를 통한 수익화의 기회는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방송사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광고를 주요 매출로 하는 채널의 수익성보다, 콘텐츠 판매를 주요 매출로 하는 스튜디오가 산업적으로 더 큰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상파 사업자 입장에서는 성장의 기회가 열려 있는 콘텐츠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스튜디오 모델의 도입이란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튜디오 모델의 장단점
스튜디오 모델이 방송 사업자의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유일한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스튜디오 모델이 확대되는 배경으로는 콘텐츠 유통에 대한 자율성과 이를 통해 창의적 기획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방송사업자 내부에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전개하는 경우, 기존의 성공 방정식, 특히나 편성 기반의 채널 운영에 있어서의 실시간 시청률이란 지표의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 또 콘텐츠 유통의 범위에 있어서도 자사의 채널을 통한 유통을 우선하다보면, 기획과 제작의 방향 역시 채널의 성격의 범위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콘텐츠를 둘러싼 경쟁이 방송사업자들 간의 경쟁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라는 점에 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유형과 성격의 콘텐츠들이 이미 세밀하게 분화된 취향을 가진 이용자들의 주목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 채널에서 소위 ‘본방 사수’를 하는 실시간 편성의 대상이 되는 시청자의 연령대는 높아지고 있으며, 창작자 입장에선 방송 심의 등 치밀한 규제의 틀 속에서 콘텐츠 기획에 한계를 둘 수 밖에 없다. 플랫폼이 다양하게 분화하는 상황에서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한계를 넘어선 기획과 제작을 장려할 수 있는 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조직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방송사업자의 외부에 설립된 스튜디오는 ‘자사 채널’의 ‘편성’이 목적이 되는 콘텐츠 기획의 틀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장점을 갖는다. 콘텐츠 유통의 첫번째 창구가 자사의 채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채널과 플랫폼의 성격에 맞는 다양한 기획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상파 사업자 입장에선 과거보다 훨씬 세분화된 타깃을 대상으로 한 ‘뾰족한’ 기획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콘텐츠의 형식 측면에서도 ‘편성’의 단위가 되는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난 기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콘텐츠 성과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시청률’이라는 단일 지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직 구성원들의 역량을 확보하고 결집시킬 수 있는 전략 자체를 다양화할 수 있는 강점을 갖는다. 콘텐츠 기획에서 제작, 유통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단일한 경로가 아닌 상황에서, 콘텐츠의 성과를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것 자체가 콘텐츠 기업에겐 중요한 경쟁력의 요소라 할 수 있다. 외부의 IP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서 콘텐츠를 기획 개발하고, 내부의 IP자원을 다양하게 확장하며, 다양한 플랫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며 복잡한 계약과 협상을 전개하는 새로운 ‘역량’의 축적이야말로, 스튜디오 모델의 도입에 대해 기대해볼 수 있는 이상적인 발전의 방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스튜디오 모델의 도입이 반드시 이상적인 결과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본래 방송 사업자와의 관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자칫 서로 다른 이해 관계와 성과 지표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스튜디오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이 방송사 내부의 조직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스튜디오가 어느 정도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또 기존 방송사 내부의 의사결정자와 구성원의 역할에 대해 어떠한 기준을 두어야 할지 등을 고민하는 노력이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내부의 조직으로 협력할 때와는 다른 새로운 비효율이 발생할 우려도 존재한다.
지상파가 스튜디오 모델 도입의 이유와 의미
최근 지상파의 스튜디오 모델의 도입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이들 스튜디오가 ‘예능’ 콘텐츠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유료방송이나 종편 사업자의 스튜디오 모델 도입이 드라마 부문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흐름은 예능 콘텐츠의 시장 변화와도 연결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현실적으로 드라마 부문에서의 경쟁력의 중심은 이미 기존 스튜디오와 드라마 제작사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지상파 사업자로선 현재 남아 있는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으로 예능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예능 콘텐츠의 ‘쓸모’의 변화다.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한 <피지컬: 100>과 <솔로 지옥>의 성공은 예능 콘텐츠 역시 수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물론 여전히 문화적 할인이란 벽을 완전히 넘을 수는 없겠지만, 보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한국의 예능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엔 충분했다. 무엇보다, OTT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나타난 변화들도 예능 콘텐츠에 대한 주목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먼저 제작비가 가파르게 상승한 드라마에 비해서,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측면에서 예능이 투자 비용 대비 효율이 좋은 콘텐츠라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예능 콘텐츠는 보다 장기적으로,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콘텐츠로서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유리한 측면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SNL>이란 콘텐츠로 플랫폼의 인지도를 끌어올린 쿠팡플레이의 약진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였다. 콘텐츠IP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실질적으로 지상파 방송이 활용할 수 있는 IP의 원천의 다수가 예능 콘텐츠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방영되며 팬덤을 쌓아온 <무한도전>과 같은 콘텐츠가 OTT 플랫폼에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는 콘텐츠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지상파 사업자로선 예능 콘텐츠의 활용 가치가 확장되는 지금이야 말로 스튜디오 모델의 도입을 통해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콘텐츠 중심의 경쟁력을 복원하고 확장해야 할 시점이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지상파 사업자가 스튜디오 모델을 도입할 때 어떤 전략이 가능할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로 SBS의 ‘더 매직스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술사들의 오디션 콘텐츠를 표방한 ‘더 매직스타’는 기존의 웨이브(wavve) 플랫폼이 아닌 쿠팡 플레이를 통해 VOD가 오리지널 콘텐츠 공개되어 주목을 받았다.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도 앞으로 보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통될 수 있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더 매직스타’는 오디션이 마무리되는 것과 동시에 전국 단위의 마술 공연 투어 일정을 준비했다. 스튜디오 프리즘의 사업 영역 소개에 제시된 ‘공연’ 사업과 ‘OTT 사업’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인 셈이다.
방송 콘텐츠는 더 이상 편성의 단위인 ‘프로그램’으로서 시청률 기반의 광고 판매의 수단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 하나의 콘텐츠가 국내외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통될 수 있으며, 시즌을 이어가며 ‘흥행’의 리스크를 관리하며 안정적인 제작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공연이나 포맷 판매 등 형태를 달리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지상파 사업자의 스튜디오 모델의 도입은 이러한 콘텐츠IP 비즈니스 중심의 사업 전략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전문적인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상파가 후발주자로 스튜디오 체제를 안착시킬 수 있을까? 기대와 전망
한국 방송 산업에서의 스튜디오 모델 도입은 ‘스튜디오 드래곤’이 설립된 2016년을 시작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기존 사업자가 스튜디오 모델 도입을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온 것과 비교하면, 지상파 사업자의 스튜디오 모델 도입은 다소 늦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후발주자로서 지상파가 갖는 장점도 명확하다. 먼저 기존 방송 사업자들의 스튜디오 모델 도입 사례들을 통해 이러한 전환의 장단점을 미리 검토하고,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특히 앞서 제시한 조직 간의 성과 지표와 이익 동기의 충돌이란 문제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예능 콘텐츠의 확장성이 가시화된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변화란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는 ‘예능’이란 이름으로 콘텐츠의 장르를 구분하지만, 보다 넓게는 ‘넌-스크립트(non-scripted)’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는 콘텐츠를 포괄하는 분야의 변화이기도 하다. 지상파 사업자들은 제작 역량의 외부 유출이 오랜 기간 이어져오는 과정에서도 ‘넌-스크립트’ 분야에서는 나름의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지금의 스튜디오화라는 변화는 콘텐츠 경쟁력 중심의 사업 전략 재편을 위해 가용한 자원을 분명히 하고, 이를 활용하는 전략을 고도화하는 노력의 과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상파의 스튜디오 모델 도입의 성패란 결국 보다 확장된 예능 콘텐츠의 쓸모를 발견하고, 확장하며, 사업적으로도 진일보한 전략들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