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민 Nov 30. 2023

OTT와 미디어 산업의 변화와 전망

4가지 장면으로 읽는 미디어 산업의 변화 #글로벌OTT동향분석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하는 '글로벌 OTT 동향 분석' 제4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occa.kr/globalOTT/vol04/document/ott4_4_1.pdf


1. 들어가며: 미디어 산업 변화를 읽는 4가지 장면

2023년은 미디어 시장에게 여러모로 혼돈의 기간이었다. 코로나19의 확산 기간 동안 빠르게 성장했던 OTT에 대한 기대와 미디어 전반의 팽창이 마무리 되고, 엔데믹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시장 전반이 얼어붙었다. 경제 여건의 변화 속에서 OTT를 바라보는 시각도 빠르게 달라졌다. OTT는 이제 성장성을 바탕으로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적자에 대한 우려로 지속가능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지난 1년여의 기간은 급변한 시장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분투의 기간이기도 헀던 것이다.


‘킹덤’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OTT 중심의 미디어 산업 변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OTT 중심의 미디어 산업의 변화도 벌써 4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가 OTT 중심의 산업 변화의 제1기였다라고 한다면, 이제 제2기를 여는 변화의 방향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미디어 산업 변화를 읽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글은 OTT와 미디어 산업의 변화를 바라보기 위해 2023년에 드러난 특징적 흐름을 보여주는 4가지 장면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다시 콘텐츠 활용의 확장(예능, 스포츠)과 OTT 서비스의 분화(장르별 버티컬 OTT, 광고 기반 FAST)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콘텐츠와 미디어 측면에서 나타는 변화의 흐름들을 살펴보면서, 이들을 통해서 앞으로의 OTT와 미디어 산업의 변화의 방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OTT, 예능을 콘텐츠 경쟁의 무기로 선택하다

OTT에 대한 이용자의 주목을 이끈 것이 오리지널 콘텐츠였다는 점에 대해서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경쟁이 OTT 산업의 수익성 악화를 이끈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는 점에 있다. 국내 OTT가 겪고 있는 재무적 위기는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투자는 늘어났지만, 구독자의 확대만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거두기는 어려웠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용자의 성장은 어느 정도 둔화된 상황에서 수익화에 대한 기대는 축소되면서, 높아지는 영업손실에 대한 우려도 늘어나고 있다. 


여기엔 높아진 비용의 문제 역시 자리잡고 있다. 2011년 회당 평균 1억원 수준이었던 국내 드라마 제작비는 2023년에는 회당 10억원에 달하는 수준으로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이러한 제작비의 부담은 OTT 시장에서 예능 콘텐츠에 대해 주목하는 첫번째 이유와 연결된다. 드라마 제작 비용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예능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예능이 정기적인 편성의 흐름에 어울리는 굉장히 ‘방송적인’ 콘텐츠라는 점이다. 다수의 ‘국민 예능’들은 일상적으로  TV 앞에 앉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넷플릭스에서 강조한 ‘몰아보기’가 이끄는 비일상적 소비와는 다소 다른 위치에 있는 것이다. OTT 사업자들은 예능 콘텐츠를 활용해서, 이용자의 일상의 흐름 안에 보다 다양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OTT 서비스가 미디어 시장을 바꾸는 양상은 비즈니스 모델과 콘텐츠 제공의 방식, 이용자의 위치 등의 묶음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에 있다. 방송이란 미디어가 광고를 기반으로 가족을 단위로 선형 편성으로 TV라는 스크린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하나의 묶음이라면, OTT는 구독을 중심으로 개인이라는 이용자의 위치를 강조하며 다양한 스크린으로 침투하며 기존의 묶음에 균열을 가져왔다. 이때 넷플릭스가 활용한 균열의 전략은 몰아보기라는 이용의 습관을 통해 기존에 일상성이 높았던 방송이라는 소비 양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일상의 시간 감각과 다른 방식의 비일상성의 강화를 통해 OTT라는 미디어는 방송보다는 기존의 영화 소비와 더 유사한 개인화된 소비를 유도하고 있었다.


흥미로운점은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거치면서, 다시 ‘방송적인 것’의 귀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사업자들은 다시 기존의 방송과 같은 순차 공개의 형태를 활용하며 콘텐츠의 효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 비일상성의 강화를 통해 OTT의 주목도를 높이는 국면을 지나서, 이제는 다시 일상성의 강화를 통해 OTT가 더 다양한 상황에서 이용자의 삶 속에 위치할 수 있게 만드는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엔데믹으로의 전환 속에서 사람들이 일상의 습관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OTT의 위치 역시 다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OTT의 성장이 기존의 방송 사업자와의 경쟁을 높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보다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영화 시장이었다. 거실의 TV 스크린 크기가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서사극(epic) 중심의 드라마 소비의 확대는 영화가 담당하던 비일상적 이야기 소비의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OTT 사업자의 예능 콘텐츠 투자 확대는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다른 시장 변화를 이끌 가능성이 높다. 예능 콘텐츠는 선형 편성에 어울리는 콘텐츠로서 방송이 우위를 갖는 영역이었다. OTT의 예능 콘텐츠 투자 확대는 직접적으로 방송과 이용자의 일상을 둘러싼 경쟁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제작의 구조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예능 콘텐츠는 다수의 제작 부문을 외주화하는 과정에서도 방송사업자가 제작 역량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였다. OTT 사업자의 예능 콘텐츠 투자 확대는 기존 방송사업자 내부에 머물러 있던 창작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과거 예능 콘텐츠의 도약을 주도했던 김태호, 나영석 PD를 비롯해서 다수의 예능 콘텐츠 창작자들이 방송사를 벗어나 독립 스튜디오에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드라마 산업이 다수의 독립제작사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전환된 것과 같은 변화가 OTT의 투자 확대 속에서 예능 영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OTT가 예능을 경쟁의 무기로 삼게되면서, 영상 콘텐츠 산업의 구조 변동이 보다 가속화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3. 쿠팡 플레이의 약진이 말해주는 것

2023년 국내 시장에서 가장 크게 약진한 서비스는 바로 쿠팡플레이이다. 아마존프라임과 같이 이커머스 기업의 멤버십 서비스로 다른 구독형 OTT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2023년 6월 월 사용자(MAU) 486만명을 기록하며(모바일인덱스 기준) 2년전의 152만명과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한 것은 분명 유의미한 성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해당 기간에는 웨이브(395만명, 모바일인덱스 기준)의 월 사용자 수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며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쿠팡플레이의 성장을 주도한 콘텐츠 전략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예능 콘텐츠의 전략적인 활용이다. 쿠팡플레이는 론칭 초기부터 SNL코리아를 대표작품으로 활용하며 관련 캐릭터들의 화제성을 높여 주목을 얻는데 성공했다. 2021년 ‘주기자’(주현영 배우)에 이어 2023년 ‘맑눈광’(김아영 배우)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은 극장 상영 중 독점 VOD를 제공하는 등 영화 콘텐츠를 활용하는 전략이다. 2022년에는<한산>을 빠르게  독점공개하고, 2023년에는 <존윅4>를 회원에게 무료 공개하는 등 영화 시장의 홀드백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이용자의 주목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온라인 영화 시장의 기존 질서에 균열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단기간에 시선을 모으는 전략으로서는 유효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콘텐츠의 전략적 활용이다. 쿠팡플레이는 직접 주최, 주관, 중계하는 스포츠 이벤트인 ‘쿠팡플레이 시리즈’를 통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초청경기 등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로 주목을 모았다. 이미 쿠팡플레이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는 손흥민 선수가 활약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경기를 중계했고, 2023년에는 K리그 전 경기 디지털 독점 중계를 시작했다. 특히 K리그가 2023년 역대 최다 관중을 기록하며 흥행했다는 점에서 쿠팡플레이의 선택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분명 쿠팡플레이는 이커머스 서비스와의 번들 형태로서 구독료 부담이 낮으며, 이미 다수의 ‘와우 멤버십’ 이용자들을 구독자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단독형 OTT 사업자들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분명 효율적이고 전략적인 콘텐츠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란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스포츠 콘텐츠와 같이 타 사업자와 차별화될 수 있는 영역에서서의 승부수가 긍정적인 성과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스포츠 중계에 대해서는 구독을 유지하는 ‘락인 효과’의 관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스포츠 팬덤은 보통 하나의 시즌 전체를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구독자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콘텐츠로서 가치를 갖는 것이다(이수현, 2023.3.25). 이러한 이유에서 다수의 OTT 사업자들이 스포츠 중계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애플은 미국 프로축구(MLS)를 10년간 독점 중계하는 권한을 사들였으며, 넷플릭스도 골프대회 ‘넷플릭스컵’을 개최하고 중계하는 등 스포츠 생중계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이완기, 2023.10.22). 앞서 예능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중계 역시 기존의 방송 사업자들이 우위를 가지고 있던 영역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OTT 서비스의 진화가 더 넓은 범위의 시장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4. OTT 서비스의 분화

OTT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다른 신호 중 하나는 보다 세분화된 취향을 타겟팅하는 서비스의 분화가 나타탄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OTT의 사례로는 중화권 등 아시아 콘텐츠에 특화된 MOA, 애니메이션 전문 서비스인 라프텔, BL 콘텐츠에 특화된 헤븐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PC웹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서비스하면서 특화된 장르의 팬덤을 대상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찾아볼 수 있다. 소니가 인수하면서 주목을 받은 애니메이션 전문 OTT 크런치롤이 대표적이다. 크런치롤은 한국의 웹툰인 ‘나혼자만레벨업'의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면서 특히 관심을 모은 바 있다. OTT를 통한 콘텐츠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15세 이상의 연령대에서 애니메이션 소비가 확대되고,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특화 OTT와 이들의 제작 투자가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OTT가 만들어낸 영상 콘텐츠와 미디어 지형의 변화의 한 측면을 잘 보여준다. 개인화된 이용을 특징으로 하는 OTT 서비스는 보다 다양한 개인의 취향을 발굴하고, 이들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 배포해왔다. 거대한 성공을 거둔 오징어게임 역시 다소 마이너한 것으로 여겨졌던 서바이벌 장르를 소비하는 글로벌 취향 집단을 대상으로 기획된 결과였다(강혜원, 이성민, 2022). 글로벌 OTT가 열어준 취향 중심의 콘텐츠 시장에서 다양한 버티컬 OTT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흐름의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버티컬 전략을 내세우는 OTT의 분화 역시 앞으로의 시장 변화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먼저 다양한 규모의 OTT 사업자가 존재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구성될 가능성이다. OTT 시장 경쟁이 격화 되면서 소수의 사업자 중심의 과점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있지만, 이들 사업자들 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틈새 시장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이들 버티컬 OTT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앞으로의 콘텐츠 확장에 있어서 다양한 국가에서 등장하는 버티컬 OTT들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이러한 버티컬 OTT들을 통해서 시장에 존재하는 강력한 취향 집단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들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콘텐츠 전략을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쿠팡플레이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OTT 시장에서 콘텐츠 장르의 분화와 타겟 세분화 전략은 아직 더 정교화될 필요와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버티컬 OTT의 분화가 보여주는 것이다.


5. FAST, 한국의 맥락으로 읽기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선형편성(linear programming)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FAST(Free Ad-supported Steaming Television)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북미시장에서는 FAST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구독 서비스의 이용 부담이 늘어나는 ‘스트림플레이션’ 시대의 대안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FAST 서비스가 아직 큰 관심을 얻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북미 시장과의 가장 큰 차이는 OTT가 만들어낸 코드-컷팅'의 정도에 있다. OTT 서비스의 성장이 기존 유료 케이블 방송에서의 완전한 전환으로 이어진 북미 시장과 달리, 한국에서는 기존 유료 방송 가입을 유지하면서 추가적으로 OTT를 구독하는 공존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강력한 콘텐츠 파워를 가진 방송기반의 선형 편성 채널에의 접근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와 유사한 콘텐츠를 공급하는 FAST 채널의 효용이 상대적으로 높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FAST에 대해서 업계에서의 관심이 높은 이유는 FAST가 2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구독형 OTT 서비스와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료 구독이 아닌 광고기반이란 점에서 비즈니스모델이 다르고, 주문형 비디오(VOD) 방식이 아닌 선형편성으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과 콘텐츠 제공 방식이 기존의 방송과 사실상 동일하다는 것이다. SVOD중심의 OTT 시장이 성장의 한계를 만나면서 콘텐츠 측면에서나(예능, 스포츠), 미디어 측면에서나(FAST) 기존 방송의 모델들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 한국에서 FAST 서비스는 앞으로 어떤 위상을 갖게 될까? 이는 FAST 서비스의 확산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가 TV스크린로의 연결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때 그 흐름을 예측해볼 수 있다. FAST 서비스가 코드 컷팅이 이루어진 상황에서의 대안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핵심은 TV스크린으로의 연결성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내느냐를 둘러싼 경쟁에 있다. 한국의 맥락에서 FAST는 삼성과 LG와 같은 TV셋트에서 유료방송 연결 없이도 이용자의 최소의 노력으로 영상이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는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유료방송 셋톱이 TV스크린으로의 ‘관문’에 대한 장악력을 여전히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FAST의 활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매우 높은 유료 방송 보급율과 저가의 결합 상품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유료방송이 스마트TV 등 CTV와의 ‘리모컨’ 경쟁에서 아직 유리한 상황이란 점은 국내에서 FAST의 활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현재의 결합 상품의 구조가 약화되는 상황이 나타난다면, 코드컷팅과 함께 FAST로의 전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알뜰폰 시장의 성장은 이러한 결합 상품의 구조에 균열을 가져오는 중요한 흐름이다. 여기에 스마트TV와 같은 커넥티드TV의 보급 역시 중요한 변수다. TV가 직접 인터넷과 연결된 상황에서는 별도의 셋톱 없이 TV가 앱의 형태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FAST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는 것이다.  


2023년 4월 말을 기준으로 알뜰폰 점유율은 17.6%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동통신사 3사의 점유율은 2001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점유율 40% 밑으로 하락했다(임혜선, 2023.6.21).  디지털 TV의 판매 역시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에게서 OS 경쟁의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2021년 기준 지난 1년간 판매 점유율은 1위 웹OS(48.99%), 2위 타이젠 OS(점유율 4년 전 5.12%에서 32.34%로 증가), 3위 안드로이드 OS(점유율 4년 전 0.45%에서16.55%로 증가)로 나타났다. 이중 타이젠(삼성)과 웹OS(LG)에서는 각각의 FAS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OS를 활용하는 중소기업의 TV셋트에서는 별도의  FAST 서비스의 활용 가능성도 일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FAST의 ‘쓸모’가 TV 연결성의 관문 싸움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단기적으로는 국내에서 FAST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알뜰폰의 성장 추이 등을 볼 때, 기존의 유료방송 중심의 미디어 생태계에 또 다른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흐름이 유료방송 대신 OTT 가입 경험이 많은 새로운 세대의 성장과 결합한다면 새로운 시장이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OTT’라고 부르던 것의 전형적인 모습인 SVOD 기반의 서비스만이 아닌 다양한 서비스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러한 서비스의 형태 변화가 결국 시장에 새로운 경쟁 환경을 만들어내고,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며, 결과적으로 산업의 구조 변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한 부분이다. OTT와 미디어 산업의 변화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며, 이는 기존의 미디어 산업의 요소들의 재배치와 재묶음(re-bundling)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6. 나가며: OTT의 진화가 열어갈 미디어 산업의 변화

지금까지 살펴본 4가지 장면은 모두 OTT가 기존의 미디어 요소들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변화를 지속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OTT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OTT의 변화와 함께 공진화하는 미디어 산업 역시 아직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단기적인 진통을 경험하고 있지만, 여전히 OTT는 스스로의 모습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하며 미디어 산업의 변화를 주도해나갈 힘이 있다.


OTT의 가장 중요한 강점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액체 미디어(liquid media)’로서의 특징을 갖는다는 점이다. OTT는 얼마든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콘텐츠 전달 방식을 도입하며 스스로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다. 기존에 OTT를 설명하던 다양한 요소들, 예를들어 몰아보기(Binge Watching)나 일괄 공개, 광고 없는 유료 구독 모델 등은 서비스의 진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요소도 재편될 수 있다. 시장의 위기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글은 미디어 시장의 위기 속에서, OTT가 새로운 콘텐츠를 활용하고,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형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OTT가 촉발한 미디어 산업의 재편은, OTT 스스로 기존의 미디어 요소들의 재묶음화를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양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의 변화가 기존의 요소들의 재배치를 통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OTT가 방송을 닮아가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반복’에 그치는 것이 아닌, 변주를 통해 전혀 새로운 성격의 시장으로의 전환을 가져올 수도 있다. 최근 웹소설 시장에서 유행하는 장르로서 ‘회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서 유사한 요소들을 만나지만, 이러한 요소들 다시 결합하며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OTT 이후의 미디어 산업도 어찌보면, 이러한 ‘회귀’물의 속성과도 닮아 있다. 그동안 낡은 것으로 치부했던, 방송의 역사 속에서 존재했던 요소들이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다시 혁신의 동력으로 부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주목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강혜원, 이성민. (2022). 넷플릭스의 초국적 콘텐츠 소구 전략 : 〈오징어 게임〉에 나타난 장르적 보편성과 문화적 특수성의 이중적 상품화 구조 분석. 언론과 사회, 30(3), 5-41.

다나와(2022.8.12). 차트로 알아보는 스마트 TV 트렌드 총정리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292585&memberNo=639132

이수현(2023.3.25). 쿠팡플레이는 왜 드라마보다 스포츠 중계에 매진할까, 전자신문

https://www.etnews.com/20230324000201

이완기(2023.10.22). "스포츠 잡아라"…판 커지는 OTT 중계,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9W25G056G

이정현(2023.6.13). 쿠팡플레이, 국내 OTT 중 신규설치 최다…사용자 수도 2위,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30613146400017

임혜선(2023.6.21). 철옹성 깬 알뜰폰…'자생력 확보'는 숙제, 아시아경제

https://www.asiae.co.kr/article/2023062017052422972

매거진의 이전글 정체된 시장 속 OTT의 쓸모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