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가, 잡초
(이나가키 히데히로 / 더숲/ 1판 1쇄/ 2021.03.26)
- 잡초처럼 -
중학생 때였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반드시 채워야 하는 필수 봉사시간이 있었다. 40시간 정도로 기억한다. 학생들에게 봉사 정신을 함양하고, 나눔 의식을 키운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봉사 시간은 입학사정관에서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매주 봉사기관에 가서 몇 시간씩 봉사를 하곤 했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내게 봉사는 그저 채워야 하는 숙제일 뿐이었다. 그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숙제였다.
봉사는 셀프 측정이 안됐다. 봉사 기관에 가서 일정 시간 봉사를 하고, 봉사 확인증을 받아야 했다. 봉사는 여러 군데에서 했다. 도서관, 어린이집, 공공기관, 복지관 등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하기 싫었던 곳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면 책 정리를 할 것 같지만, 내가 한 건 도서관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 잡초뽑기였다. 그 이유는 하는데 비해 성과도 없고, 보람도 없기 때문이었다.
잡초는 뽑기 편한 곳에 있지 않았다. 돌멩이들 사이에 듬성듬성 나 있어서 돌멩이를 일일이 치우며 뽑아야 했다. 또 뿌리는 깊어서 잘못 뽑으면 뿌리가 아닌 줄기만 뽑혔다. 그러면 흙을 더 파서 뿌리를 들어 올려야 했다. 잡초는 아무리 뽑아도 일주일만 지나면 무성히 자랐다. 뿌리째 뽑아도 자라는데, 이렇게 무작정 뽑아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봉사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난 뒤, 프린터를 하러 도서관에 가면 내가 뽑은 자리에 다시 잡초가 숙숙 자라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잡초 같은 근성이니, 끈기니 하는구나 싶었다. 뽑아도 살아남는 잡초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끈질기고, 강인할 수 있을까.
책, <전략가, 잡초>는 훼방꾼처럼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 자라는 잡초가 어떻게 그렇게 자랄 수 있는지, 어느 곳에서든 살아남는 잡초의 전략은 무엇인지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의 식물학자로 이름도 생소한 '잡초 생태학'을 전공했다. 저자는 훼방꾼으로 치부되었던 잡초가 얼마나 전략적이고 강한 식물인지를 쉽게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잡초는 훼방꾼이 아니고, 자신의 개성과 목적을 잃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목적을 이루려는 강인한 엘리트 식물이다. 그와 동시에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잡초 같은 근성, 끈기, 생명력이 말해주듯 잡초에겐 강인한 인상이 있다. 도로가에 핀 잡초를 보면 아스팔트도 뚫을 힘을 가졌고, 돌멩이 가득한 곳에서 자란 걸 보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을 가진 듯이 보인다. 저렇게 강한 힘을 지녔기 때문에 다른 풀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기고, 다른 풀이 자랄 자리를 꿰찼다고 생각했다. 그 강인함이 잡초의 힘이자 생명력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잡초는 본디 연약한 식물이다. 연약하다는 건 경쟁에 약하다는 의미다. 잡초가 길바닥이나, 돌무더기에서 자라는 건 그곳에서는 다른 풀들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을 피해 찾은 곳이 풀이 자라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고, 그곳들은 대개 인간이 만든 곳이었다. 인간이 만든 논과 밭, 아스팔트, 내가 봉사활동을 한 도서관 주변 등이다. 그곳에서 잡초는 자신의 목적인 씨앗 뿌리기와 꽃 피우기를 이룬 것이다. 목적을 잊지 않은 잡초는 환경을 탓하기보다 환경에 맞게 자신을 바꿔 그 목적을 이룬다. 또한 목적을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전략은 다양하다. 스스로 자신에게 꽃가루를 뿌려 자가 번식을 하기도 하고, 동시에 다른 식물의 꽃가루를 받아 새로운 씨를 뿌리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꽃가루를 받아 씨를 뿌리는 걸 '제꽃가루받이', 다른 식물의 꽃가루를 받는 걸 '다른꽃가루받이'라고 한다. 잡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며 어떻게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뿌린다.
또한, 밟혀도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밟혔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 역시 잡초에겐 힘을 소진하는 일이다. 그것보단 애써 일어나지 않고, 견디며 밟힌 상태로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운다. 밟혔을 때 일어나는 게 강인함으로 보일 수 있지만, 묵묵히 견디는 것 역시 강인 함이다. 오히려 발끈해서 억지로 일어나 목적을 이루지 못할 바에야, 굴욕을 견디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게 더 현명하다.
전략은 또 있다. 그건 자신의 때를 아는 것이다. 대부분의 꽃은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꽃을 피운다. 잡초는 그렇지 않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와도, 그 봄의 환경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과 맞는 때를 기다리며 휴면에 들어간다. 이 환경은 잡초마다 다르다. 자신의 때와 환경이 다르다는 건, 잡초마다 명확한 개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성 있는 잡초는 남들과 똑같이 따라가는 꽃과 다르다. 개성 없는 꽃이 한 번에 폈다가 사라지는 반면, 잡초는 저마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시기에 일어난다. 때문에 인간이 보기엔 언제나, 어딜 가나 있는 잡초로 보이고, 하나를 뽑아도 다른 곳에서 또다시 일어날 정도로 질겨 보이는 것이다.
약하고, 경쟁을 피하는 식물인 잡초가 자신의 개성과 목적을 잊지 않고, 변하면 안 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알고 나아가다 보니 끈질기고 강한 잡초로 굳어졌다.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잃지 않고, 이 두 가지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변화를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게 잡초의 전략이다. 현재 이 잡초는 30,000종 정도가 있다.
책을 읽으며 목적과 다양성의 중요성이 다시 상기된다. 목적이 명확하다면, 이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 명확하다면, 그 외 것들은 변할 수 있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개성이 드러난다. 그 개성의 다양성이 잡초를 강하게 만들었다.
일을 하면서 원하는 바나 생각이 뚜렷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맞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건 세상을 바꾸는 것이고,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그 문제의 원인이 비즈니스에 있다고 생각하고, 특별히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스템과 비즈니스가 기후변화, 양극화,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즈니스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끝까지 나아간다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지금 있는 직장에 오고 싶었던 이유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들이 만드는 변화와 방법을 알고 싶었다. 또한 내가 추구했던 것과 같은 부분이 일부 있었다.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내가 변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약 6개월이 지났다. 변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또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하는 부분도 있다.
한 가지 변한 생각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한 생각이지만 이 부분을 간과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답을 내려놓고, 이곳이 내가 원하는 답안으로 흘러가는지를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 정답이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하지 못했다. 문제 원인을 적으로 보고 그 문제에 맞서는 것도 정답이 될 수 있고, 문제 원인과 해답을 조율하는 것도 정답일 수 있다. 또한, 선행지표를 잘 만들어서, 그 지표를 따라 나아가게 하는 것도 정답일 수 있다. 내가 있는 조직은 세 번째 방법을 사용했고, 이 방법 역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 맞을 것이다.
해답이 다양할수록 문제도 더 잘 해결될 수 있다. 잡초는 총 30,000 종류로 다양하다. 이 잡초의 다양성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을 강하다고 말하게 한다. 이는 문제 해결에도 적용된다. 비영리, 소셜벤처, 스타트업, 임팩트 투자, 사회 책임 투자, 지속 가능 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등. 문제 해결의 다양성이 있어야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 다양성이 없다면, 하나가 없어지는 순간 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조직이 단 한 곳이라면, 이 한 곳이 사라질 때 기후변화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같은 문제도 여러 조직이 해결해야 하나가 사라져도 끝까지 해결될 수 있다. 지금 있는 회사가 얼핏 비슷해 보이는 솔루션을 가진 스타트업과 소셜벤처에 다양한 액셀러레이팅, 컨설팅, 임팩트 투자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다양성이 내 생각의 변화고, 앞으로 받아들여가야 할 방향이다.
어떤 점이 문제였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걸 알았으니 6개월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개성을 담아 받아들여보자면, 아직까지는 글을 써는 것 같다. 이 이외 것이 아직은 내게 보이지 않는다. 겨울이 사나워지고 있다. 아마 내년의 겨울은 내게도 조금 사나울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다행히 나는 추위에 강한 편이다. 무딘 것일 수도 있다. 추운 기간 동안 조금 더 쌓고 변해갈 내 생각이 봄이 왔을 때 싹으로 피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잡초처럼 변화해 가면서 나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밑줄
- 잡초라고 하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풀이 주변에 아무 의미 없이 자라나 있는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잡초가 자라난 곳을 유심히 살펴보자. 잡초는 길이나 밭이나 공원 등 인간이 만들어낸 곳에서 자라난다. 이런 곳은 자연계에 없는 특수한 환경이다. 사실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고 특수한 진화를 이룬 특수한 식물이다.(p.8)
- 잡초가 방해가 되는 풀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하는데, 사실 방해가 되는 풀이되기는 꽤나 어려운 일이다. 잡초를 흔하고 하잘것없는 식물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잡초가 어디서나 자라는 건 아니다. 또 모든 식물이 잡초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길가나 밭에서 싹을 틔워 점점 번식해 나가는 일은 식물에는 상당히 특별한 일이며, 방해되는 식물이 되려면 그런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 잡초가 되기 쉬운 식물의 성질을 '잡초성 weediness'이라고 하는데, 이 잡초성이 있는 식물만 잡초로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무 식물이나 잡초가 되는 것이 아니다.(p.24)
- 잡초가 이 세상에 3만 종류나 있다는데, 농사지을 때 문제가 되는 주요 잡초는 250종 정도라고 하니 주요 잡초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잡초는 '자칫 방해가 되는 식물'이라는 특별한 분야에서는 엄선된 엘리트인 셈이다.(p.24~25)
- 잡초가 연약하다는 말은 잡초가 경쟁에 약하다는 뜻이다. 자연계에서는 쉴 새 없이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자연계의 움직일 수 없는 법칙이다. 그것은 식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식물은 서로 빛을 받기 위해 앞다퉈 위로 뻗어 올라간다. 게다가 앞을 활짝 펼쳐 다른 식물을 가리며 올라간다. 만일 이 경쟁에서 진다면 다른 식물의 그늘에서 빛을 받지 못한 식물은 시들게 된다. 치열한 싸움은 비단 땅 위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땅 밑에서도 물이나 영양분을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다툰다. 식물의 세계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식물은 살아남으려고 서로 짓밟는다. 식물은 햇빛과 물과 땅만 있으면 살아간다고들 하지만, 그 빛과 물과 땅을 차지하려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p.30)
- 풍요로운 숲은 식물이 생존하기에 적합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쟁터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경쟁에 약한 잡초는 깊은 숲 속에서 살아날 수 없다.(p.30~31)
- 잡초는 강한 식물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만 골라서 자라난다. 그런 데가 바로 길가나 밭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특수한 장소다.(p.31)
- 연약한 식물 잡초의 기본 전략은 '싸우지 않는 것'이다. 강한 식물이 자라는 곳은 피하고 강한 식물이 자라지 않는 곳만 골라서 자리 잡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경쟁사회에서 도망친 낙오자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널리 퍼진 잡초는 누가 봐도 성공자로 보인다. 잡초는 경쟁을 피해 도망친 것이 아니다. 흙이 많지 않은 길가에서 난다는 것 자체가 잡초로서는 싸움인 것이고, 경작되거나 제초되는 밭에서 나는 것 역시 잡초로서는 싸움인 셈이다. 잡초가 강한 식물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를 피해온 것은 분명하지만 생존을 걸고 경쟁에 도전하는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승부를 겨뤄야 할 상황이 온다. 잡초는 그 승부를 겨룰 장소가 어딘지 알 뿐이다.(p.31~32)
- 경쟁에 강한 것만 강인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묵묵히 견뎌내는 것도 강인함이라고 할 수 있다.(p.34)
- 밟히거나 갈아엎어지거나 뽑히는 것은 식물의 생존에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경쟁에 약한 잡초에는 그 상황이 바로 살아남을 절호의 기회다. 뿌리까지 완벽하게 없애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만큼 잡초는 뽑고 또 뽑아도 자라나지만 잡초를 안전하게 없애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잡초를 뽑지 않는 것'이다. 잡초를 뽑지 않는다니 대체 무슨 말일까? 그리고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잡초를 뽑지 않으면 빠르게 번식한다. 그러면 잡초뿐만 아니라 관목 등 대형 식물이 연달아 자라나면서 덤불이 되고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숲을 이룬다.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일반적으로 다른 식물과 경쟁하는 데 약하다고 했다. 그래서 잡초는 풍요로운 숲에서는 자라날 수 없다. 잡초를 뽑지 않으면 경쟁에 강한 대형 식물이나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그러면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살아남을 수 없다. 물론 잡초는 사라져도 그곳은 이미 덤불이 되고, 머지않아 울창한 숲을 이루니 고작 밭이나 정원의 잡초를 없애자고 이 방법을 쓰기에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설명은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p.35~36)
- 씨앗은 어떻게 해서 봄을 알아차릴까? 식물의 씨앗이 봄을 느끼기 위한 조건은 겨울 추위다. 겨울의 낮은 기온을 경험한 씨앗만이 봄의 따뜻함을 느끼고 싹을 틔운다. 일시적인 따뜻함은 곧 찾아올 겨울 추위를 예고할 뿐이다.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야 비로소 봄이 찾아온다. 그래서 씨앗은 일시적인 따뜻함에 쓸데없이 기뻐하지 않고 잠자코 겨울 추위를 기다린다. 겨울 추위, 다시 말해 저온을 경험하지 않으면 싹을 틔우지 않는 성질을 '저온 요구성'이라고 한다. 저온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요구하는 것이다. '겨울이 오지 않으면 진정한 봄도 오지 않는다'는 씨앗의 전략이 우리 삶에도 어떤 암시를 주는 듯하다.(p.52)
- 일정한 시간이 지난 씨앗은 휴면에서 깨어나 싹을 틔우려고 한다. 하지만 잡초 씨앗은 봄이라고 해서 꼭 싹을 틔울 만큼 단순하지 않다. 연약하고 작은 잡초는 발아시기가 생사를 결정하므로 환경을 복잡하게 읽으며 싹 틔울 시기를 잰다. 싹을 틔우려고 했는데 환경이 발아에 적합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잡초 씨앗은 다시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를 '2차 휴면(유도 휴면)'이라고 한다. (중략) 잡초의 휴면 구조는 계절에 맞춰 규칙적으로 싹을 틔우면 된다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매우 복잡하다. 잡초가 돋아나는 환경에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생긴다. 봄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싹을 틔울 기회가 온 것은 아니며 언제 극적인 기회가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잡초는 일반적인 야생식물보다 더 복잡한 휴면 구조를 갖추고 있다. (p.52~53)
- 잡초 씨앗은 되도록 시기를 들쑥날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잡초 씨앗이 채소나 꽃 씨앗처럼 한꺼번에 출아하면 어떨까? 그러면 인간이 풀을 뽑을 때 다 같이 망하고 만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차를 두고 출아기를 엇갈리게 해서 드문드문 돋아나는 것이다. 이렇게 성질이 모두 다른 모습을 인간 세계에서는 '개성'이라고 하는데 잡초 세계에서는 이 개성이 아주 중요하다.(p.54~55)
- 유선적으로 다양성이 없는 특이한 식물이 있다. 바로 인간이 기르는 농작물이다. 농작물은 인간이 준비한 환경에서 재배된다. 발아 시기도 성장 속도도 모두 같아야 관리하기 더 편하며, 맛이 좋아야 하거나 병에 강해야 하는 등 인간이 원하는 성질도 정해져 있다. 따라서 그런 기준으로 뽑힌 엘리트들이 균일하게 길러진다.(p.68)
- 잡초처럼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야생 식물이 전멸하지 않고 오랜 시간 세대를 이어나가려면 뛰어난 형질을 고르고 골라 똑같이 만들기보다는 개성 있는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p.71)
- 잡초는 조건이 나쁠 때도 최대한 활약해서 씨앗을 생산하지만 조건이 좋을 때도 최대한 성과를 내서 씨앗을 생산하지만 조건이 좋을 때도 최대한 성과를 내서 씨앗을 많이 생산한다. 자기 자원을 씨앗 생산에 얼마나 분배하느냐 하는 지표를 '번식 분배율'이라고 하는데, 잡초는 개체 크기에 상관없이 번식 분배율이 가장 알맞다. 조건이 나쁘면 나쁜 대로, 조건이 좋으면 좋은 대로 최선을 다해 최대한의 씨앗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잡초의 강점이다.(p.87~88)
- 잡초가 가소성이 크다는 말은 '바꿀 수 없는 것은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꾼다'는 뜻일 것이다. 잡초는 환경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밖에 없는데 잡초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잡초 자신이다. 이것이 바로 잡초의 가소성이다. 그리고 잡초가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는 이유는 '변화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식물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는 것이다. 잡초는 이 부분에서 흔들림이 없다. 잡초는 어떤 환경에서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씨를 생산해야 한다는 목적이 명확하므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그래서 잡초는 크기를 바꾸거나 생활 패턴을 바꾸거나 자라는 방법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p.88)
- 잡초의 이런 생존 방식은 우리 인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바꿔도 좋은 것과 바꾸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꿔도 되는 것을 고집해서 괜히 에너지를 허비하기보다는 바꿔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을 지키면 된다.(p.88~89)
- 어떤 장소에 있든 잡초는 반드시 씨앗을 남긴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을 놓고 푸념해 봤자 소용없다.(p.89)
- 인간은 정리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생물이라서 스스로 이과와 문과, 예능과 체능 등으로 구별하기 좋아한다. 그리고 '남자다워라, 여자답게 행동해라' 또는 '넌 고등학생이니까……' 등 여러 가지로 분류해서 특징을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잡초의 자유로움을 보면 '이렇게 해야 해'라는 의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알 수 있다. 자연계는 인간계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p.91)
- 잡초는 딴꽃가루받이를 하면서도 제꽃가루받이라는 보험을 걸어둔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여러 가지 옵션을 준비해 두는 것이 잡초의 전략이다.(p121)
- 비포장도로에서는 차바퀴 자국을 따라 질경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질경이의 학명 중 속명은 '플란타고'인데 이는 발바닥으로 옮긴다는 뜻의 라틴어다. 또 한자 이름은 '차전초'인대 이것도 길을 따라 어디에서든 자라난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렇게 길을 따라 자라는 이유는 사람이나 차가 질경이 씨앗을 옮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질경이의 경우 밟힌다는 것은 인내해야 하는 일이 아니며 더욱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아니다. 밟혀야만 널리 퍼질 수 있을 정도로 그 점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에게 밟혀서 번식하는 잡초도 있고, 사람이 모이는 도시에서 자라는 잡초 중에는 씨앗이 울퉁불퉁해서 신발 바닥에 달라붙기 쉬운 구조로 된 것도 많다. 인간도 이렇게 모르는 사이에 잡초 씨앗이 널리 퍼지는 데 한몫하고 있다.(p.131)
- 도전하면 실패할 수도 있지만 변할 수도 있다. "도전하면 변화한다." 잡초도 곱게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길가에서 거칠게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봐주기 바란다. 그리고 씨앗이 이런저런 수를 써서 이동하는 이유는 그밖에 더 있다. 바로 어미 식물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다.(p.134)
- 씨앗이 어미 식물 근처에 떨어졌을 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가 바로 어미 식물이다. 어미 식물의 잎이 그늘을 만들면 아기 씨앗이 겨우 싹을 틔웠다 해도 건강하게 자라날 수 없다. 또 물이나 영양분마저 어미 식물에 빼앗기고 말거나 어미 식물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새싹의 생육을 막을 수도 있다. 아쉽게도 어미 식물과 씨앗이 필요 이상으로 같이 붙어 있으면 오히려 폐해가 더 커진다. 그래서 식물은 소중한 자식들을 어미 식물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땅으로 보내려는 것이다. "자식을 귀히 알거든 객지로 내보내라"라는 말이 있듯이 식물에도 자식을 떼놓는 것이 중요하다.(p.134)
-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잡초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훼방꾼이라고 깊이 인식되어 있을 때 비로소 '잡초'가 된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훼방꾼'이라고 여기면 그저 그런 잡초일 수 있지만 이것이 곧 이제껏 본 적 없는 가치를 지닌 식물일지도 모른다. 잡초인지 아닌지는 우리 마음이 정하는 것이다.(p.193)
- 밟혔는데 왜 일어서야 할까? 잡초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밟히고 또 밟혀도 계속 일어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 낭비다. 그런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밟히면서도 꽃을 피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밟히면서 씨앗을 남기는데 에너지를 쏟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것이다. 그래서 잡초는 밟히면서도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써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확실히 남긴다. 밟히고 또 밟혀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무모한 끈기보다는 훨씬 굳세고 듬직하다.(p.198)
- 잡초는 밟히면 일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잡초는 밟히고 또 밟혀도 반드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긴다.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는 삶,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잡초의 혼이다.(p.198)
- 올곧은 길이 없으며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기에 인생이 의미가 있다. 그런 것도 모두 인생의 즐거움이다. 길가에 핀 잡초를 보며 올곧게 자라난 잡초는 하나도 없다. 잡초 인생에도 온갖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뒤돌아봤을 때 인생은 짧다. 내 할머니는 "소년이 나이 들기는 쉬우나 배움을 이루기는 어렵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어렸던 나는 이 말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지금에야 뼈저리게 느낀다. 나 또한 젊은 독자 여러분에게 마지막 한마디로 이 말을 드리고 싶다.(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