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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Jan 23. 2023

재활용품 수거인의 삶

책, <가난의 문법>




가난의 문법
(소준철/ 푸른숲/ 첫판 6쇄/ 2021.05.10)

- 재활용품 수거인의 삶 -



불평등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작년에 읽은 <가난의 문법>을 다시 읽었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주인공들은 폐지를 줍는 노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폐지보단 재활용품이라고 하는 게 맞다. 단순히 폐지라고 하면, 쓰레기를 줍는 빈곤한 삶으로 생각되지만 재활용품이라고 하면 그들의 역할이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가난의 문법은 저자가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인터뷰하고 '윤영자'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그의 하루를 돌아보며 쓰는 글이다. 사회학자여서인지 각종 자료와 본인이 직접 본 내용을 충실하게 담았다. 무엇보다 쉽다. 사회학 책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을 읽다 보면 재활용품 수집인의 삶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책을 다시 읽은 이유도, 그들의 삶을 다시금 봐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배경지가 된 북아현동을 가봤다. 설날이어서인지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은 없었다. 그들의 주된 수거 품목인 택배 상자가 여러 군데 널브러져 있었다. 북아현동은 골목길이 많았고, 오르막이 많았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 통행이 불편할 것 같았다. 마주 오는 차나, 뒤에 있는 차가 있으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구간들이 많았다.


책은 이 북아현동을 배경으로 윤영자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보여준다. 윤영자의 삶은 고됨과 어려움, 경쟁적인 삶이다. 그럼에도 그에겐 그에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의 일은 현재 제도권 밖의 비노동으로 취급받기에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그에겐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생각해 봤다. 노후의 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하는 건 맞는데, 그 소득 보존 방법이 일자리가 맞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없으면 제대로 된 노후소득을 얻을 수 없는 현실이다. 애초에 윤영자가 제도권 밖의 비노동으로 나가게 된 건, 제도권에서 받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제도권에서 윤영자의 삶을 구원할 수는 없어 보인다. 윤영자가 같은 삶은 너무나도 많고, 사회가 그 모두를 품을 수는 없다. 결국, 공공과 민간이 모두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글을 쓰며 말하고 싶은 건, 제도권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민간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이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도 알아보고, 알려보고 싶은 마음이다. 또한 그 모습을 통해 어떤 변화를 생각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고 싶다. 다행히 책에서 내가 생각하는 민간 영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법들을 잠깐 소개하고 있다. 다음에는 그들이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조금 더 공부해 봐야겠다.


밑줄

- 이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건 현재의 노인 세대로, 노인들의 가난은 그 구조가 복잡하게 꼬인 산물이다. 지금의 일부 노인들은 사회보험 제대고 정착하기 전에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종사하던 업종이 노화되어 생계가 어려워졌거나, 가족의 문제로 모은 돈을 날린 경우도 있다. 게다가 노인인 된 상태서 생계를 위한 유일한 자구책은 노동뿐이지만, 사회적으로 노인의 노동을 금하기만 할 뿐, 이에 대한 지원은 딱히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제도 바깥의 노동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존 경로가 바로 폐지를 주는 일(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등장)이다.(p.9~10)


-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분을 떠나, 재활용품 수집이란 어느 도시에나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일'이다. 우리에게 문제적인 이유는 바로 이 일을 하는 이들이 '노인'이라는 데 있다. 노인들의 이 일은 아주 잠깐 우리의 눈앞을 스쳐갈 뿐이고, 우리는 그때 포착한 이미지로 그들을 판단하게 된다. 어디에나 있는, 그렇지만 어디에서나 보이지 않는 이 일을 알 때, 우리는 사회의 가려진 부분을 애해 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에게 기대어 살고 있었는지 말이다.(p.11)


- 노인들에게 가난은 경쟁을 통해 드러난다. 이들은 경쟁 속에서 팔 만한 재활용품을 획득해 생계를 꾸렸다.(p.29)


- 65~69세의 고용률에서 한국(45.5%)은 아이슬란드(5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70~74세의 고용률은 33%로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즉,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에게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노인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노인의 고용률이 상승한다 해도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p.45~46)


- 남성노인의 경우,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기존의 경력을 이어가는 경우가 ㅁ낳은 편이지만 여성노인의 경우 숙련된 기술 혹은 장기적인 경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낮은 취업문에 막혀 나쁜 환경과 조건의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거나 진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남성과 여성이 갖게 되는 '일자리'의 종류에 있어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남성의 경우, 경비직 혹은 수위직의 비중이 높지만, 이외에도 건설∙기계업종, 운전∙운송업종, 생산 작업 등의 직업 전선에 참여할 수 있다. 여성은 청소와 가사도우미, 음식업∙조리업 외에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여성노인들의 일자리 부족에 대해 아직 우리 사회는 별다른 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기술과 경력 없이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게 된 것이다.(p.57)


- 무엇보다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팔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격이다.(p.103)


- 한 고물상이 조금이나마 가격을 더 준다는 소문을 들으면 수 킬로미터를 더 걸어서라도 그 고물상에 가서 거래를 하기 마련이니, 노인들의 이동 거리는 어떤 고물상이 더 많이 값을 쳐주는가에 따라 결정된다.(p.104)


- '가격'의 결정에 노인들과 고물상의 영향은 미미하다. 이 가격은 제도에 의해 정해지기보다는, 최종 구매자인 제지업체가 정한 가격에서 중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들을 뺀 가격으로 결정되는 형편이다.(p.104)


- 폐지 가격의 변동은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p.104~105)


-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재활용품을 골목에서 수집해 고물상에 판매한다. 앞에서 골목에서 재활용품 줍는 일이 제도로부터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일이라 설명했는데,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일 역시 '비공식'의 행위다. 비제도권의 영역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고물상의 법적 지위 때문이다.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내다 파는 도심의 고물상은 대개 불법인 상태에 놓여 있다.(p.108~109)


- 즉, 노인(과 고물상)의 처지는 '자원 순환 정책' 혹은 '재활용 산업'으로도 불리는 산업의 끄트머리 어딘가에 위치한 비공식적인 존재로 보아야 한다. 고물상과 노인들은 모두 일종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며 사회의 암뭄적인 용인으로 유지되는 상황이다.(p.109~110)


- 한국사회서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란 말은 모순된 표현이다. 적어도 산업과 고용의 측면에서는 그렇다. 한국사회의 고용 정책은 65세 전후의 나이인 은퇴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하지 않게끔 계획됐다. 그리고 사회복지 정책은 은퇴를 한 노인이 더는 임금을 버는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사회보장 제도가 그들의 삶을 보호하게끔 되어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인들의 취업률은 여느 나라보다 높고, 정부 역시 사회복지 정책의 일종인 '노인일자리'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즉, 산업은 노인을 은퇴자로 이해하지만, 복지 정책응ㄴ 노인을 복지사업의 참여자로 이해하는 상호 모순적인 상황이다.(p.142~143)


- 특히, 청장년층의 노동 조건을 노인들의 일자리에 대입해서는 안 된다. 노인에게는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거,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노동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새벽 시간 첫 차를 타고 일을 하러 가는, 청소와 같은 '서비스업'만 고민해서도 안 된다. 가능하다면, 마을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실험이 필요하다.(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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