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난동 현장을 지나가지 못하는 이유
(前略)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이런 반응이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상, 그중에서도 해당 지역을 가지 않으려고 하는 회피 현상”이라고 말한다. 무차별 흉기 난동 같은 사회적 재난을 겪은 이들에게는 트라우마가 쉽게 따라온다. 범행 장면이 끝없이 떠오르거나 유독 예민해지는 등 심리적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다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증상들이 트라우마에 해당하는지, 또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정 이사와의 문답으로 정리했다.
Q : 범행 현장에 있지 않았던 이들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나.
A : 당연하다. 범행이 일어난 지역에 있는 주민들과 그 현장을 자주 지나다니던 사람들, 그 현장 근처에 살거나 거기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도 매우 큰 충격을 받는다. 또 최근엔 일반인들이 적나라한 범행 영상을 올리기 때문에 흉기가 식별 가능할 정도의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범행 현장과 멀리 떨어진 일반 국민도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Q : 트라우마 반응에도 종류가 있나.
A : 보통 네 가지 정도를 본다. 첫째가 재경험이다. 자꾸 그 장면이 생각난다. 핏자국이나 흉기를 들고 다니던 사람의 영상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두 번째가 과각성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별거 아닌 일에 대단히 놀란다.
실제 서현역 사건이 벌어진 지 사흘 뒤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에서 방탄소년단(BTS) 팬들의 고함을 사고로 오해한 시민들이 급히 도망치다가 부상자가 발생한 일도 있다.
A : 다음이 회피다. 그 지역을 아예 가지 않는다든지, 지역 사회에 정신질환자를 받아들이기 꺼린다든지 한다. 회피 반응이 많아지면 공격성이 없는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도 선입견과 편견이 강화되고 해당 지역의 상권이 붕괴하는 등의 영향이 생긴다. 마지막이 해리 증상이다. 갑자기 멍해지고, 아이가 학교에 가서도 수업에 집중을 못 하고 반응도 덜하게 된다. 직접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한테서 더 흔한 증상이다.
Q : 트라우마 증상은 얼마나 가나.
A :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보통 길어야 한 달, 짧으면 2~3주 안에 그 영향에서 벗어난다. 문제는 계속 비슷한 사건이 이어지는 거다. 1~2주 차이를 두고 계속 같은 사건이 벌어지니까 트라우마가 점점 더 커지고 벗어나기가 힘들다.
Q :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A :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주위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거다. 자신이 충격받고 힘든 것을 혼자 너무 괴로워하면 도움이 안 된다. 지역 사회에서도 이런 일을 다시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책을 논의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또 SNS 같은 미디어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관련 뉴스를 계속 보고 영상을 의도치 않게 시청하는 행위들이 트라우마 반응을 증폭한다.
Q :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A : 트라우마 때문에 술을 너무 마시게 된다든지, 공황을 경험한다든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손에 잡을 수 없는 경우 상담을 받는 게 좋다. 일상에 심각한 지장이 있으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
Q : 트라우마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 있을까.
A : 아이들이다. 지금 정부나 지자체에서 나오는 트라우마 대책들이 다 너무 어른 위주인데 아이들을 제일 먼저 챙겨야 한다. 어른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트라우마에 이미 노출이 됐는데 아이들은 준비가 안 돼 있다. 처음 겪은 충격적인 장면이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아이들을 어떻게 안심시켜야 하는지,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을 방법, 미디어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빨리 나와야 한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중앙일보 김나한 기자의 대담 중 발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6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