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쉽게 인간 관계의 종결을 논한다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가, 최근 굉장히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바로 '손절'이다. 손해 보고 팔아버린다는 뜻의 손절은 본래 주식 등 투자 쪽에서 쓰이는 용어였는데, 요즘엔 인간관계에서 더 많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으로 '손해'를 보았지만, 여기서 더이상 관계가 완화될 것 같지 않고, 더이상의 손해를 보느니 밑졌더라도 지금 끝내겠다는 뜻임을 생각하면 꽤 어울리는 단어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모두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속 욕망이 항상 있다. 내가 없을 때 나를 찾았으면 좋겠고, 내가 던진 실없는 농담에도 박장대소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깊은 고민과 슬픔을 나와 나누고 싶어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려고 했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사람인지라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나의 바보같은 실수로 손절당하기도 했다. 나 역시 버티려고 해보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손절한 사람도 있다.
예전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내가 소중하지!'하는 생각에 나를 상처주는 사람들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게 컸다. 나와 맞는 소규모의 사람들과만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손절은 무조건 '사이다'라고 생각했고, 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뜻하지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친 적도 있었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애써 정당화했다.
요즘 들어서는 좀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겪은 갈등들 중에는 충분한 대화가 있었더라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대화와 타협과 화해는 어렵다. 나 자신을 낮춰야 하고, 그 사람의 입장도 헤아려야 하고, 나의 과오를 사과해야 하고, 상대의 입장을 들으면서 내 입장도 설명해야 한다. 차근차근 감정을 조절하며 길고 긴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 알렉산드로스처럼 화난다고 칼로 잘라버릴 순 없다. 그런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손절은 정말 쉬운 길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관계도 있다는 걸 알지만, 노력하면 되는 관계도 있다. 어쩌면 그런 관계들도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맞춰보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쟤는 나랑 안 맞아'하고 넘겨짚은 것 아닐까.
김태리는 브이라이브에서 손절을 고민하는 팬에게 잠시 거리를 둘 것을 추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잠시 시간을 두는게 좋을 거 같아요.
잠시 거리를 두고서 서로의 삶에 좀 더 집중을 하다가 간만에 만나면 또 좋을 수도 있거든요. 추억 이야기도 하고, 옛날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아, 내가 이 친구의 이런 면을 좋아했었지. 내가 이런 일들이 있어서 얘랑 재밌게 놀았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고 전환점이 될 수도 있어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인간관계는 그렇게 쉽게 맺기 어렵다. 우린 언젠가부터 그걸 너무 가볍게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인연에는 노력이 들어가야 하고, 일정 시간 함께 해온 사람이라면 잘 맞기 때문이라서도 있을 것이다. 쉽게 손절하는 대신, 어렵더라도 돌아가보면 어떨까.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보면 분명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때 가서 인연을 포기해도 늦지 않다. 잊지 말자, 안 좋아진 관계를 돌리는 것보다 끊어진 관계를 잇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