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톨 Jul 15. 2020

인생에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게 됐다

공부와 노력이 전부라고 생각한 어렸던 나에게

학생 때부터 나는 승부욕이 강한 애였다. 게임에서 지거나 시험을 망치면 울어버릴 정도로 지는 걸 싫어했다. 시험을 잘 봤을 때 남들이 주는 칭찬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던 것도 있겠다. 사실 공부를 했던 동기의 과반수는 이것이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게 좋았고, 무엇보다 성적이 나의 가치라고 느꼈다. 감사하게도 성적은 그럭저럭 나왔고, 나는 서울의 공부 잘한다는 고등학교에서도 전교권을 겨루는 내신을 받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만했다. 수시 6개 제한이 생긴지 얼마 안 된 후여서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나는 꿋꿋이 내신 전형으로 세 군데만 썼다. 수시가 안 되더라도 정시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수시는 하향지원하기 싫다는 지나친 자기신뢰였다. 나는 보기 좋게 1차에서 모든 서류를 떨어졌고, 수능은 하필 내가 약한 국어는 어렵게, 강한 수학은 쉽게 나왔다.


수험표 할인도 맘껏 누렸어야 하는데 우울해서 아무것도 못했다... (출처 : 위키백과)


엄청나게 울었다. 수능을 망한 것은 아니었다. 성적은 점이 아니라 면이다. 제일 망친 시험부터 제일 잘본 시험까지의 점수라면 모두 내 점수인데, 최고점이 아닌 것이 억울했다. 그 대박 케이스가 나의 것이 아님을 원통해했다. 학교는 뒤숭숭했다. 논술 전형으로 성적보다 훨씬 좋은 학교를 간 애도 있었고, 그 친구 소식을 듣고 우는 시험 망친 애도 있었고, 침착하게 수시 2차 전형을 준비하는 애도 있었다.


두 군데를 넣었다. 발표 전까지는 집에 있지 않았다. 아침에 나와 동네 도서관에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있었다. 밤에 들어와서는 오르비를 들락거렸고, 진학사 합격 예측 창을 들여다보고, 강남대성 장학금을 알아보았다. 정시가 그나마 조금 늘던 시기였고, 나는 감사하게도 대학을 아슬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전교 내신 8등 정도로 기억하는데, 내 앞 7명의 친구들이 모두 서울대에 최종 합격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이 상황도 감지덕지였다.


출처 : Jess Bailey, Unsplash


벌써 5년도 더 된 이야기를 왜 꺼내냐면,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인생이란 건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설사 그렇대도 한 가지 길만 있진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입시에서 겪은 우여곡절은 그런 나의 착각을 제대로 깨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학업 성적이 그 가설을 뒷받침하면서 내 믿음은 점점 더 강화됐고, 묘한 우월감에 취해있었다. 나는 잘 풀리고 성공할 거라고,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 거라고 무의식 중에 확신했다.


어쩌면 나는 삶에는 한 가지 길만 있다고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공부를 잘했으니 공부를 잘하면 성공할 거라고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공부를 잘 하면 좋은 직장과 높은 연봉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고, 그것만을 성공한 삶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경제 감각이 없거나 자기계발을 소홀히 하는 사람을 낮게 보았다. 조금이라도 쉬면 죄책감이 들었고, 나의 노력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랐다. 사실 그런 나의 생각은 부끄럽지만 최근까지도 이어진 편이었다.


출처 : Jungwoo Hong, Unsplash


그러던 중 언젠가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자신의 부서에 퇴근 후 취미 생활을 하는 데에 모든 시간과 돈을 쓰는 분이 계시다는 얘기를 했다. 워낙 성실한 친구니까 나는 당연히 친구가 그것을 좋지 않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것에 투자를 할 줄 아는 것이 너무 멋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쿵하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와 자기계발에 매몰됐던 시간은 나를 오만하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과 그들의 삶을 나의 잣대로 평가하게 했고, 결정적으로는 인생을 너무 좁게 보게 만들었다. 인생에 여러 길이 있다. 공부가 높은 연봉을 보장해주지 않고, 노력이 항상 빛을 발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행복할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데에 오래 걸렸다. 처음엔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도 들었다. 나는 경주마처럼 수능 성적, 명문대학, 좋은 직장만을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야 가리개를 벗은 느낌이었다. 시야가 탁 트이기보단 오히려 방황했다. 길이 있을 때는 거기로 가면 되니까 쉬웠는데, 이제 길을 찾는 것은 나의 몫이다.


아직은 길을 찾는 단계인 것 같다. 내가 학생 때 이걸 알았으면 더 좋았을걸, 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달려왔으니 한숨 돌리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고 싶다. 내가 가지 않았던 길들도 기회를 줘보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들을 찾아봐야겠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_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중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은 그냥 지면 안 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