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y를 통해 풀어낸 내 생각
2019년 4월에 '일하는 사람들의 컨텐츠 플랫폼' Publy의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글로 발행한 글입니다. Publy에서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컨텐츠 서비스를 중단했기에, 제가 작성했던 본문('큐레이터의 말')을 Publy 동의 하에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지난 12년의 경력 중 이직을 두 번 경험했다. 경력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두 번 모두 환경의 변화가 굉장히 컸다. 첫번째는 삼성전자에서 8년간 일하다 쿠팡으로 다른 직무로 이직한 경우였고, 두번째는 멀리 네덜란드에 있는 Booking.com 본사로의 이직이었다. 두 번 모두 초기에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업계와 제품에 대해 공부하고, 업무에 필요한 스킬을 익히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
처음에는 해당 직무를 일단 ‘수행하기 위한' 하드 스킬 위주로 업무를 익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더 잘하기 위해서'는 소프트 스킬이 필수적이라고 느꼈다.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 상품기획과 해외영업 업무를 하다가 쿠팡으로 옮겨서는 ‘제품관리자(당시 쿠팡에선 Product owner라고 불렀다)'라는 타이틀로 첫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장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프로세스를 위주로 공부했다. 애자일 개발 방법론, 데이터 분석(SQL), 웹 서비스가 기술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을 익혔다.
무엇보다 당장 팀이 돌아가야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발팀과 함께 해결방안을 구상하고, 실행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실행(신규 기능 런칭 혹은 제품 개선)한 후 다시 데이터를 확인하는 싸이클을 멈추지 않고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런 하드 스킬이 필요했다.
그러나 업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자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더 큰 임팩트를 내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품관리자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바로 관련부서(stakeholder)와의 업무 조율이다.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런칭하는 과정에서 나는 주문 관련 개발팀, 고객서비스 담당부서, 회계 및 자금 부서, 대외정책팀, 법무팀, 그리고 금융사 및 결제 관련 협력업체 같은 외부업체들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서비스를 기획하고 런칭 마케팅 계획을 세웠다.
각자 바쁘게 돌아가는 부서에 새로운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계획한 일정 내에 작업을 모두 끝마치고 서비스를 런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서비스가 왜 필요한지, 누가, 어떤 부분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등을 관련 부서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문서화해서 공유하고, 직접 만나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특히 결제 서비스 런칭에는 보다 세심한 준비와 조율이 필요했다.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고객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취소 및 환불 정책은 어떻게 되는지, 결제 및 취소 관련 내용은 (고객 및 상담원 각각의 입장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등의 내용을 고객 상담원이 숙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사 사무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객서비스 부서에 방문해 상담원들을 직접 교육했고, 질문과 답변을 통해 상담원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품팀에서 직접 상담원 교육을 하는 일은 없었던 터라 고객서비스 부서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았고, 일정 내에 서비스 런칭을 하는데도 도움이 됐다.
한국에서 10년 간 일한 후 네덜란드에서 일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유럽에서 제품관리자로 일하면서 처음에는 우리가 이걸 왜 하는지, 왜 이것부터 해야 하는지, 이걸 하면 뭐가 좋아질지 같은 질문에 계속 답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업무 속도는 한국이 훨씬 빠르지만, 이곳은 한국보다 ‘왜'에 더 집중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명확한 가설을 내세우지 않으면 팀원들을 움직이게 하기 힘들다.
사용성을 개선하는 경우처럼 통계 데이터로 증명하기 어려울 때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조직 및 제품의 비전을 기반으로 그 당위성을 ‘스토리'로 풀어낼 필요도 있다. 동료들에게 우리가 가는 길과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 하기 위해 ‘내가 어떤 식으로 대화를 이끄는지’에 대해 동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고, 어떻게 하면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을지 친한 동료들 및 매니저와 상의해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름의 전략을 짜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미팅을 앞둔 경우, 에버노트 등에 내가 할 이야기를 미리 적어 논리의 타당성을 검토했다. 그런 다음 믿을만한 동료에게 피드백을 받아 메시지를 다듬고, 미팅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과 사전 1:1 대화를 통해 핵심 메시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회사에서 제공한 ‘Art of Influence’라는 4일짜리 트레이닝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트레이닝을 통해 내 커뮤니케이션 타입을 파악했고, 상대방의 타입을 파악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서로 다른 타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익혔다. 이후 지금까지 실습을 계속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고,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문화적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때도 있다. 특히 네덜란드와 한국은 여러 면에서 반대편에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경우 네덜란드인들은 직접적(direct)으로 얘기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돌려 말하는(indirect) 편이다. 또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돌려서 말하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강하게 부정하는 일은 피하는 편이지만(avoid confrontation), 네덜란드인들은 상대방이 나보다 몇 직급 높은 상사더라도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당당히 말하는(confrontational) 문화다.
애초에 이런 부분을 미리 염두에 두고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면 서로에게 잘 맞춰갈 수 있었을 테고, 불필요한 오해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용을 배운 적이 없었다. 동료들도 이런 부분은 잘 몰랐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네덜란드인 동료의 직설적인 피드백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한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때 한 동료가 추천해 준 The culture map이란 책을 읽고서야 상황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미팅 도중 러시아인 동료가 무안할 만큼 나에게 강하게 반론을 제기하거나, 네덜란드인 동료가 1:1 대화 중 “인용, 너에게 실망했어”라고 대화를 시작했을 때 기분이 나빴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나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이 ‘다른 것' 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스트레스가 많이 완화됐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누가 이런 것 좀 가르쳐 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와튼 스쿨(Wharton School)의 사울 P 스타인버그 경영학 교수(Saul P Steinberg Professor of Management)인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MBA 과정에서 소프트 스킬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어쩌면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랜트 교수에 따르면 소프트 스킬이 “가치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많이 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스킬을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 중)
여러 경로를 통해 배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중 하나는, 우선 내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과 하는 것이다.
동료들의 피드백을 통해 나를 알아보는 것도 좋다. 솔직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잘 주고 받는 것도 스킬이며, 이런 스킬들은 모두 ‘배울 수 있다'. 관심을 갖고 나를 지켜본다면 내가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이 필요한 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책에서 길을 찾을 수도 있고, 온/오프라인 트레이닝 등을 통해 이런 소프트 스킬들을 배울 수도 있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필요할 때 적절한 트레이닝을 받는 것도 성장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들도 현장에서 피드백을 받아 꾸준히 교과과정을 개선해 나간다. 그래야 ‘경쟁력 있는 졸업생'이라는 좋은 산출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 수업은 LBS 경력개발센터의 피드백을 반영한 것이다. “채용 담당자들은 학생들이 자신을 너무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졸리 교수의 설명이다. “학생들이 거만하기만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는 학생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 그 이상을 이 수업이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관계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예를 들어 이사회에 들어가면 엑셀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쌓아 나가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