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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이베 May 13. 2016

책 육아 시작, 그 이후 변화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고

책 육아를 해보겠다 결심하고 아직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고작 30일도 안 된 결심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었다. 10년, 아니 20년 후쯤 해리포터 원서를 줄줄 읽는다거나 하버드나 서울대는 가야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싶고 내가 책 육아를 해서 내 아이가 이렇게 자랐다고 무슨 증언이라도 하련만 아직 한 달도 안 된 결심에 책 육아를 해야 한다며 떠들고 다닌다면 어쩌면 다들 혀를 차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 30일도 안 된 기간에 벌어진 경험들이 이렇게 소중한데 20년 후엔 어떨까? 나의 고작 30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의 경험은 정말 새롭고 신선했다. 


30일 전에 나란 엄마는 집안일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잠깐이라도 편하고 싶어서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시간 쓰기 위해 뽀로로 시리즈 종류별로 전부, 타요, 코코몽, 로보카 폴리, 아이쿠, 디보, 후토스, 치로와 친구들, 빼곰, 캐니멀, 따개비 루, 호비, 깨미, 라바, 눈보리, 브루미즈, 등등등 ( 진짜 많네 ㅡㅡ;;;) TV로 또는 휴대폰 동영상으로 보라고 던져주고는 그 잠깐의 시간에 여유를 만끽했었고 "다른 엄마들도 다 그러는데 뭐" "식당 가면 애들 전부 손에 스마트폰 있던데?" 하면서 그러니까 괜찮다며 스스로 안 되는 것 알면서 위안 삼았었다.


컴퓨터로 G시장 쇼핑, PC 버전 카톡, 또는 휴대폰 카톡, 카카오 스토리에 외식은 몇만 원짜리 쉽게 먹으면서 아이 용품들 그깟 몇천 원 아끼겠다고 공구며 중고시장이며 다나와 가격비교에 네이버 가격비교까지 몇 백 원 단위까지 비교하면서 상품평도 모조리 읽어가면서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한쪽 팔 엔 매달리는 루시를 붙잡고 

눈은 모니터를 보며 다른 손으론 열심히 마우스를 광클릭 해댔다.


"다 널 위해서야"라는 명목 하에 같이 놀아달라고 엄마의 사랑을 구걸하는 루시를 " 잠깐 기다려 엄마가 너 위해서 이거 사주려고 그러는 거잖아! " 이렇게 수천수만 번 외면하고 또 외면했었다. 안 잔다는 루시를 억지로 윽박지르며 반강제로 재운 후 잠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서 다운로드해놓은 영화나 드라마 모조리 봐주고 졸려도 그 시간이 금쪽같아 졸린 눈 비비며 뭐라도 하려고 밝아 오는 새벽에 잠도 들곤 했었고 다음날이면 피곤해서 놀고 있는 루시 옆에서 잠자거나 같이 놀자고 매달리면 힘들어서 조금 있다 같이 놀자고 또 외면하고 외면했었다.


아이는 1분에 3번 정도 크든 작든 끊임없이 엄마에게 무언가 요구한다고 한다. 그 거절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엄마와 아이의 애착은 불안정해진단다. 나 그거 알고 있었는데 분명 알고 있었는데 대체 나는 얼마나 많은 요구들을 뿌리치고 외면하고 했던 걸까?


지금까지 우리 루시는 얼마나 많은 거절을 받고 마음속에 상처를 남겼을까? 정말 난 그동안 형편없는 엄마였구나! 그래서 결심했었다. 나도 변해보려고 진짜 엄마가 되어 보려고!




처음 일주일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하루 종일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루시를 재우다 내가 먼저 떡실신했었다. 갖가지 목소리와 별 해괴한 액션까지 취해가며 책에 관심을 갖게 해보려고 신경을 쓰다 보니 관심 있는 척하다가 고개를 획~ 돌리며 장난감을 집을 때 서운하고 기운 빠지고 정말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책장 앞에서 털썩 주저앉아 1~2권이라도 슬쩍 보는 모습이 보이면

다시 마음 다잡고 노는 중간중간 쉬지 않고 틈만 보이면 무릎에 앉혀 놓고 읽어주고 읽어 줬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지 엄마가 읽어 준 책에 리액션이 오기 시작했고 2주쯤부터는 같이 호응하면서 읽고 있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책을 꺼내서 재밌던 페이지의 액션을 나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뭔지는 모르겠으나 뭔가가 마음속 저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것 같았다. 벅찼고 흥분되기도 했다. 날마다 내 목소리는 톤이 점점 높아져서 가뜩이나 방음 안 되는 빌라에서 다른 집 사람들이 날 보고 마귀할멈이라 욕하지나 않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책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책을 꺼내서 자동으로 무릎에 와서 앉는 시간이 많아지고 잠깐잠깐 보던 책을 자기 전엔 두세 시간도 잡고 놀면서 읽고 있는 걸 봤을 때 난 이제 감 잡았다!


책을 읽어주면서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시로 아이와 눈을 맞추며 감정을 읽고 아이의 반응을 살피려고 행동을 관찰하고 아이의 요구를 받아 주려고 귀를 열었고 아이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기 위해 마음도 열었고 책을 읽히기 위해 더 열심히 아이와 놀아 주었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이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차분해졌고 이해심도 넓어졌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밤이면 안 잔다고 윽박지르지도 않았고 억지로 재우지도 않았으며 침대에서 둘이 간지럼도 태우고 놀다가 책 읽고 인형이랑 놀다가도 책 읽고 점프 놀이하다가도 책 읽고 놀다 놀다 책 읽다 책 읽다 졸려하면 그제야 자연스럽게 자도록 해줬다.


그랬더니 내 아이도 바뀌었다. 늘 무언가 요구할 때 징징거리고 먼저 울던 아이가 이제 내 눈을 보면서 할 줄도 모르는 말을 중얼거리며 말하기 시작했고 엄마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손짓 발짓 표정까지 다양하게 표현하기 시작했고 원하는 것을 엄마가 못 알아채면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이 새빨개지며 울던 아이가 "미안해 엄마가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한 번 말해줄래?" 하면 몇 번이고 다시 말해주었고 혼자 놀면서 엄마가 같이 놀아주지 않거나 딴짓을 하면 장난감을 집어던지던 아이가 이젠 더 이상 장난감을 집어던지지 않았고 늘 열심히 성심성의껏 놀아주는 엄마는 아이가 잠시 놀던 것을 멈추고 책장 앞에서 서성이면 책 읽어 줄까? 그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뽑아 엄마 무릎에 털썩 주저앉으며 읽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컴퓨터 때문에 전자상가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점심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대교 문고 유아용 책 코너에 갔더니 유아용 놀이터도 있었고 아이들 책이 새 책 보다 그냥 보도록 하는 낡은 책들이 거의 도서관 수준으로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이때다 싶어서 새로운 책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라? 알아서 자리 잡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옆에 있는 책을 뽑아서 본다. 그런데 너무 낡아서 다 찢어져 있고 자기 나이에 맞지 않는 대부분이 4세~7세용 책 들이었다.


결국,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일어나서 놀이터에 가서 그네 타고 놀았지만 이렇게 주저앉아 책을 펼치는 순간

정말 얼마나 예쁘던지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겠어!



책을 많이 읽어주면서 또 한 가지 변화는 엄마와 말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루시는 자연스레 단어를 습득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한두 번 말해주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단어를 응용해서 사용한다. 사탕이 너무 먹고 싶다면서 얼마큼 먹고 싶은 데라고 물으면 "째끔 째끔" 이렇게 말하길래 그럴 때는 "많~~~~이"(손으로 크게 머리 위부터 원을 그리는 액션을 취하면서)라고 하는 거야. 알려준 지 이틀 되던 날. 자기 전 침대에서 보라고 바구니에 넣어둔 책들을 전부 꺼내서 산처럼 쌓아 놓고 하는 말이

 

"많아."(손으로 액션까지 해가면서)

"많아?"

"많~~~~~~~아" 


계속 저렇게 반복해서 말을 한다. 많다는 뜻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어떻게 사용되는지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것 같았다.




책 육아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책에 있는 글씨를 읽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들이 머리카락 끝에 달린 신경 촉수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교감하듯 책은 엄마와 아이의 감정을 교감시켜 주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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