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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Sep 18. 2022

라다크는 공사 중

라다크 레의 둘째 날

자고 일어나니 어제보다 컨디션이 훨씬 다. 아침 일찍 동네 산책을 나섰다.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 따라 인근 빙하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는  도랑이 있고 몇 백 년은 됨직한 굵은 버드나무들이 휘어진 담벼락을 따라 늘어서 있다

레의 골목

오늘의 첫 방문지는 틱시 사원이다.

레 중심가에서 약 21km 떨어진 곳에 있는 1400년대 지어진  유서 깊은 사원다. 작은 포탈라궁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사원은 수도원과 대형 불상 등을 가지고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사원의 형태도 아름답지만 사원 위에서 보는 설산발아래 펼쳐진 넓은  버드나무와 미루나무 군락지가 인상적이었다. 메마른 사막의 계곡에 이곳 사람들의 생명줄인 빙하의 물이 잘 정비된 수로를 따라 르고 그 물을 따라 싱싱하게 자라는 나무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틱시 사원.사워에서 본 풍경.대형 불상


레에서  틱시 사원으로 가는 동안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공사현장이었다. 레 중심가에서 멀어질수록 공사는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제 수시로 정전되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장에는 껍질을 벗긴 나무기둥 등 온갖 건축자재가 흩어져 있다. 외곽에  새로 지은 주택은 시멘트로 짓고 창문틀만 목재로 레의 전통문양을 새긴 틀을 덧대었는데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전통을 지키려는 몸부림인지 멋있게 보이려는 장식인지는 알 수가 없다.

도시는 지금도 수용능력을 넘은 것 같은데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은근  염려가 된다. 지금도 레 중심부에는 교통체증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운전 습관은 상당히 거칠게 느껴졌다.

공사중인 라다크


다시 중심가로 들어와 울퉁불퉁한 바위산 귀퉁이에 붙어있는 고대 레 왕궁을 찾았다. 중세 티베트 양식으로 세워진 이 궁전은 라다크 왕국의 최전성기인 16세기 낭세 남갈 왕에 의해 세워졌다. 한동안 버려져 있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용되고 있다.

레 왕궁

입구에는 뜨개질을 하면서 그동안 만든 모자, 덧신, 목도리 등을 팔고 있는 나이 든 여성들이 댓 명 있다. 뭐라도 하나 팔아주고 싶었지만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 왕궁에는 표를 받는 사람만 앉아 있을 뿐 내부에는 아무도 없다. 왕궁의 유물은 아무것도 없고 인도 전역의 유물을 안내하는 사진들만  붙어 있다. 틱시 사원이 흰색과 붉은색 등 여러 색깔로 치장하여 화려한 데 비해 이곳은 외관도 바위 색과 비슷하여 마치 보호색을 두른 듯했다. 왕궁은 모두 9층으로 좁은 미로 같은 통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가운데 있는 사당에는 향불을 피워놓았고 누군가 올린 공양물도 놓여 있다.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다가 이곳은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8층까지 올라가면 한쪽만 산꼭대기에 남갈 곰파가 막고 있을 뿐 나머지 삼면은 뻥 뚫려서 레의 중심가를 잘 조망할 수 있다. 멀리 흰 눈을 이고 있는 빙산과 사막화된 산 아래 계곡에 자리 잡은 레가 오래도록 아름답게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9층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다.

왕궁에서는 각 층마다 레의 중심가가 잘 보이도록 창문이 나 있다. 레의 시내가 한눈에 들여다보여 옛날 왕이 자기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잘 살펴보았겠다 싶었다.

남갈 곰파까지 가고 싶었으나 높은 고도가 걱정되어 눈으로만 바라본다. 현지 여인 한 사람이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오방색의

 타르초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거린다.

왕궁 내부와 왕궁에서 본 레의 풍경.남갈 곰파


한국식당에서 삼겹살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2인분에 2천 루피다. 한화로 약 3만 3천 원이니 현지 물가에 비하면 상당히 높다.

젊은 현지 여성들이 김밥이나 비빔밥을 시켜서 먹고 있다. 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에 비해 그녀들의  차림새가 세련되었다.


점심을 먹고 메인 바자르로 간다.

꽤 넓은 중앙 통로 겸 광장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상점들이 나열되었다. 바자르는 ㄱ자로 꺾여 있는데 전통복, 등산용품, 인도 히말라야 화장품점, 파시미나 상점, 라다크 서점 등 일상생활용품부터 장식물 등 있을 건 있고 없는 것은 없는 꽤 큰 시장이다. 캐시미어 가게에서  무늬가 화려한 목도리를 하나 샀다. 아이를 안은 젊은 여인이 손을 내밀며 한 푼 달라고 한다. 잔돈이 있으면 건네고 싶지만 환전할 때 모두 2000루피짜리만 주어 잔돈이 없다.

난전에는 사과, 살구, 수박, 토마토, 당근, 감자, 무, 콜리플라워 등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파는 현지인들이 있다. 이곳의 살구가 유명한데 살구 크기가 500원짜리 동전만 하거나 더 작다. 대개의 농산물이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등외품이다. 찌그러지고 찍히고 흠집이 있다. 요새 우리는  유기농 농산물이라 하여 반들반들한 것보다 못생겨도 좋으니 친환경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더 비싸게 사 먹는데 이것들도 그러려니 하고 살구, 수박, 사과, 양배추 등 몇 가지를 샀다.

바자르 끝에 견과류를 파는 포장마차가 일렬로 서 있었는데 말린 살구, 캐슈너트, 아몬드 등에 시커먼 쉬파리가  날아다녀서 차마 사지 못했다.

바자르의 이모저모


한두 시간 돌아다녔더니 피로하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지도롤 보며 숙소를 찾았다.

물건을 들고 걷는 것이 힘들다. 고도 적응이 덜 된 탓인가. 아님 서울에서 뭐든 배달로 시켜서 내 팔 근육이 약해진 것인가.

태양열로 데워진 온수로 샤워를 하고 나니 개운함과 피로가 함께 달려든다. 씻는다는 일상의 행위가 이곳에선 중노동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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