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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작은 어떤 작품일까?

*신춘문예 당선작은 어떤 작품일까?


   문학평론가 이현우 교수


신춘문예 응모할 때 핵심 체크포인트 2가지

   (1)제목부터 고쳐라

   (2) 첫 행부터 승부하라


   심사위원은 어떤 요소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가.

   신춘문예 당선작을 보면서 시 창작에 배울점이 많다는 것 입니다.

   

   2023년도 신춘문예 시 당선작의 경향은 코로나 팬데믹 같은

   시사적인 소재나 실험 정신이 강한 난해한 작품보다는


   새로운 언어 감각과 참신한 소재, 서정성에 무게를 둔

   정통 작법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세계, 고양이


           김현주


손끝에 떨어진 작은 눈물 한 조각에


지구 반대편 수만 년 전의 빙하가 서서히 녹고 있다




흩어지는 만년설 사이로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파란 눈동자


작게 너울거리는 심장소리가 빼꼼히 나를 올려다본다


휘둥그랑 투명한 수염을 휘날리며


다정히 나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고양이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강렬한 축문처럼 나를 감싸던 고양이가 사라진 지금


나는 달빛 한 조각의 자비도 없는 세상에 포위되었다


언제쯤 돼야 이 지긋지긋한 것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무쇠 신을 끌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고 긴 북극의 밤에는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고 고양이도 없다




가시처럼 불행의 취기만 가득 담은 냉담한 숨결을 통과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을 지난다


쇄빙선도 깨지 못한 얼음에 갇혀


일각고래와 청새치 바다거북이 가라앉은 심해 한가운데를


혼자 일렁이는 밤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따라간다는


낯익은 이별가에 목이 메인다


동그랗게 떠있는 그곳을 향해


차가운 유빙과 얼어붙은 별들을 데리고 간다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며 솟아오르는


나, 또는 고양이라는 세계



2 시소

   

    김현주


올라가는 것을 동경한 적이 있나요

덜컥 파랗던 하늘이 정지 영상으로 멈추기 직전까지

가장 먼 곳을 밟기 바로 전


힘차게 발을 뻗는 것과

마음을 멀리 두는 건 또 다른 일이라

어디를 향해 올라가는지 물어본 적이 없어요


롤러코스터와 대관람차를 탈 때

목적지를 묻지 않는 것처럼

오래전 죽은 나무로 만든

시소 위에 앉아서 말이에요


놀이터는 높이에 묶인 유배지

멀리 떠나지 못한 놀이들이 박혀 있어요

아이들은 숲보다 낮은 그네를 타고

얕은 철봉을 돌아 둥글게 떨어져 내리죠


눈이 없는 기린과 입 벌린 녹색의 악어 사이

차가운 높낮이로 기울어지는 그림자 속에서도

물이 흐르고 빛은 형체를 그려요

어둡게 올라가는 나는 짧은 시간의 끝에서

당신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가끔,

내려가 보는 거예요

동그랗게 짓이겨진 이끼의 위치 아래

녹슨 용수철과 나비의 날개

매몰된 습지가 자유롭게 부유하며 떠오르도록

발 디딤이 없는 한 칸마다

당신을 향한 깊이가 높이로 기화하고

비명처럼 자라는 어린 잎들이

밤새 날고 있다는 착각으로 웅성거리도록


당신이 내리면 허공,

나는 어느새 제한된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김현주 당선작의 5가지 우수성

  1 첫 행으로 승부하라~ 궁금증을 유발하라

     "손끝에 떨어진 작은 눈물 한 조각에 지구 반대편 수만 년 전의

      빙하가 서서히 녹고 있다" <세계,고양이>

     첫 행에서 심사위원들은 "마치 불온하게 타들어가는 도화선 같다"고

      극찬합니다

   

     경상일보 당선작"시소"의 첫 행은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형 문장입니다.

     "올라가는 것을 동경한 적이 있나요"

     다음 문장을 상상하게 하고, 또 읽게 만드는 형태입니다.

      

      좋은 시의 첫 행은 이렇게 지적 정서적 충격을 주고,

      '이게 뭐지?하는 강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문장이 좋은 첫 행입니다.


      김현주 당선작은 첫 행은 둘 다 강한 궁금증을 갖게 하는 문장이라

      하겠습니다.


     2 두 번째 장점은 낯설고 참신한 감각과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이 신선하고 참신하다는 것은 발상과 비유, 언어 표현, 이미지

       등이 눈에 익지 않고 낯설게 다가오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시는 낯설게 하기라 할 정도로 익숙한 비유,표현, 이미지는

        금물입니다.


      3 세 번째 세련된 은유 구사를 들 수 있습니다.

          시는 은유라고 합니다.

         당선작 <시소> 를 유성호 교수는 "시소의 물리적 속성을 삶의 기율로

         은유한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올라감' '내려옴'의 순환성이 곧 '삶'이라는 은유입니다.

         "가시처럼 불행의 취기만 가득 담은 냉담한 숨결을 통과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을 지난다"

         "어둡게 올라가는 나는 짧은 시간의 끝에서 당신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중입니다"

         "당신이 내리면 허공, 나는 어느새 제한된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같은 구절이 그런 사례가 하겠습니다.


         '낯설면서 자연스러운 운율의 문장'이 예술적 품위, 시의 격조를

          높이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5 작품의 완결성입니다.

         가령, <세계,고양이>의 마지막 문장에서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며

         솟아오르는' 구절은 첫 연 '빙하가 서서히 녹고 있다'는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고양이를 통한 나의 세계에 대한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동화됩니다.


         <시소>에서도 '나는 어느새 제한된 공중으로 떠오릅니다'는

         마지막의 동적 구절은 '올라가는 것을 동경한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형 첫 구절과 조응하고 있습니다.


         '나'의 올라감과 내려감의 시간 속에서 깊이가 높이로 전환하는

         순간에 '당신'을 발견해가는 사랑의 서사도 흠잡을 데 없는

         완결성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어느 한 부분에서 허점이나 긴장감이 떨어질 경우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에서

         작품의 완결성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 창작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권갑하 시인 신춘문예 당선작 강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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