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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Aug 12. 2023

노동의 의미

디지털 도어락 직접 설치하면서

며칠 전부터 사용하던 현관 디지털 도어룩에 이상 신호가 왔다. 문이 닫히기 전에 "삐익 삐익" 소리가 났다. 이사 왔을 때부터 달려있던 도어록이니 10년이 넘는 번호 방식의 도어록이었고, 아이들도 바꾸자고 성화길래 큰만 먹고 최신 도어록을 찾아보았다. 색은 검은색, 푸시 풀 방식, 지문도 되면 좋겠다고 하는 고객님의 목소리를 청취한 후 인터넷을 찾아보니 가격이 10만 원대부터 6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적당한 가격에서 선택한 후 결재를 하려고 보니 자가 설치하면 그 가격이지만 기사를 통해 설치하면 7만 원을 추가 결재해야 했다. 

음.. 좀 비싼데? 

어떤 제품은 서울 지역 공임비는 무료, 경기지역은 3만 5천 원 등등으로 나왔는데 이 제품은 7만 원 정가격이었다. 

우선 고객의 소리를 통해 자가 설치 가능여부와 동영상이나 매뉴얼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 후 동영상을 보내주며 자가 설치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1분 30초 정도의 빠른 동영상을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1분 30초...


그리고 과감히 자가 설치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주중에...

제품은 바로 도착했고, 퇴근 후 제품을 뜯어보았다. 

고등학생 아들이 자기가 설치를 해 보겠다며 설치하면 공임비를 달라고 하길래 그래 한번 해봐라 하고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7만 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몰랐다.



기존 도어록을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현관문 옆면에 철판이 하나 덧대있었는데 이걸 뜯어낼 방법이 없었다. 아들은 30분이 넘어가자 못하겠다며 포기하고, 나도 육각레인지와 전동 드릴을 가져와서 이것저것 해 보는데 우선 나사 머리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끙끙거렸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사의 종류와 홈이 망가진 나사 빼는 방법까지... 

급기야 건설일 하시는 작은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작은 아버지는 전화 속에서 너털웃음을 지으시더니 "리벳으로 박아 넣은 것이다."라는 큰 단서를 주었다. 

그리고 또 인터넷과 유튜브로 리벳에 대해 찾아봄... 30분 경과

그러고 나서 전동드릴로 그냥 뚫으면 리벳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안 후 전동드릴로 조심스럽게 리벳 머리 부분을 뚫었다. 전동 드릴도 콘크리트용과 강판용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현관문 옆에 대는 강판은 아마 이전 집주인이 현관문 틈 사이로 도난 사고를 막기 위하여 추가로 덧대어 보강한 것 같았다. 

일단 기존 도어록을 끙끙 거리며 해체한 후 호기롭게 새로 산 도어록을 설치를 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기존 도어록도 중간에 봉이 달려 있어 철문의 구멍을 통해 앞뒤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새로 산 도어록의 봉의 위치는 기존과 달랐고 그 위치에는 철문 구멍이 없었다.


다시 한번 작은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니, 전동 드릴로 철문에 구멍을 내야 한다고 알려주셔서 철문 구동 내는 부품을 주문하려는 찰나... 작은 아버지는 동그란 전동 드릴 부품이 아닌 원뿔 형태가 더 요긴하다고 하셨다. 바로 주문 변경하여 로켓 배송으로 신청하였다. 그날은 현관문을 열어두고 잘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저녁에 퇴근해서 오니 과연 철문 뚫는 드릴 부속품이 왔다. 대한민국 유통망의 놀라움과 택배 기사님의 수고로움에 감사를 표한다. 전동 드릴로 구멍을 뚫고 새 디지털도어록의 몸체를 고 정시 켜리니 이전에 설치되었던 열쇠 구멍 부속품이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그 부속품을 다시 해체... 구멍?

뭐지 새 도어록을 그럭저럭 붙여놓고 나니 현관문에 구멍이 생겼다. 아.. 주문할 때 보강판이 필요하면 같이 주문하도록 되어 있었구나... 이게 그 보강판이었구나를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또 한 가지 문제는 현관문 밖에서는 비밀번호나 지문으로 열어지는데, 안쪽에서 열려고 하니 열리지가 않았다. 아.. 이건 또 뭔가... 또 인터넷과 유튜브 검색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에 현관문은 닫혀 버렸고,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아들이 학원 갔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아... 힘들다...

그날 밤 보강판을 하나 주문했다. 문을 열어 놓고 잤다.




다음날 보강판이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사이즈가 작았다. 구멍이 가려지지 않는 보강판이었다. 

헉... 미니키, 주키, 푸시풀 3가지 타입의 보강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반품 요청과 새로운 보강판을 주문했다. 문은 여전히 안에서 열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도 열어 놓고 잤다. 

택배가 이것저것 도착하는데 아저씨들이 황당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멀쩡한 현관에 좋은 디지털 도어록이 붙어져 있는데 구멍이 보이고 문은 열려 있고...




그리고 주말 아침을 맞았다. 

밤마다 현관문과 싸우느라 지쳤고 꿈에까지 나오는지 피곤하게 아침에 일어났다. 

켜졌다 꺼지는 LED 등에 의지해서 작업하는 것이 아닌 주말 아침엔 밝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돌입했다. 반드시 해결하리라..

사실 그 사이에 기사님을 불러서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연휴를 앞두고 약속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내가 시작했는데 오늘은 끝내보리라..


그리고 발견한 것은 디지털도어록의 몸체가 되는 잠금장치가 상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 이것 때문에 안된 것인가... 새로 온 보강판은 사이즈가 커서 열쇠 구멍을 가릴 수 있었고, 처음부터 다 해체한 후 제품 올 때 딸려온 도면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을 끙끙 거리며 전동 드릴과 드라이버를 가지고 조립 작업을 하니 정상적인 디지털 도어록이 설치가 되었다. "정상적으로..."

아들이 학원에 가려고 나가면서 테스트를 해 보고 씩 하고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 끝났다. 

이게 뭐라고...





그리고 생각했다. 7만 원의 의미는 단순 작업 시간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과거 경험과 노하우가 결합된 서비스에 대한 대가구나... 내가 시행했던 모든 경우의 수를 단 한 번에 지름길로 가는 방법을 가지고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히결하는데 지불하는 비용... 그러면 7만 원은 그리 비싼 게 아니다는 생각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돌아본다. 나의 며칠간의 노동의 의미를...

문제를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쉽게 본 게 첫 번째 실수 었다. 

디지털 도어록의 종류와 우리 집 현관문의 구조... 그리고 사이즈 등을 알고 주문했었어야 했다. 


두 번째 매일 퇴근하고 온 야간에 작업을 했던 것도 문제였다. 깜박거리는 조명등에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열쇠 구멍에 가리는 보강판 사이즈조차 확인하지 않고 주문했던 것


세 번째는 도면을 제대로 보지 않고, 도어록의 몸체가 뒤집어 있는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꼼꼼하게 봤어야 하는 도면을 대충 보고 처음 보는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던 자세...


이것은 비단 며칠간의 디지털도어록 설치 작업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일이라 항상 새로운 문제를 부딪치는데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들게 헤쳐나가는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야에 경험이 많다고 새로운 분야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새로운 문제를 경험만으로 해결해보려고 하는 것이 일은 일대로 늦어지고 몸은 몸대로 힘든 과정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회사라는 조직은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M&A를 통해 잘하는 기업을 인수해서 시약착오를 넘어서 도약한 후 사업을 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암튼 모든 것이 완료^^된 후 커피 한잔의 여유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고했다. ^^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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