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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Aug 18. 2023

오펜하이머

프로젝트의 성공 조건과 성공 프로젝트 리더의 정치적 수장



많은 기대 속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영화가 개봉된 지 이제 5일이 지났다.

8월 15일 조조로 영화를 본 후 소감을 간단히 작성해보려고 했는데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대중문화 평론가들의 토크도 들어보고, 영화의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책의 번역가가 과학사의 흐름과 당시 미국 역사적 배경 설명을 하는 팟캐스트도 들어보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풀어내는 양자역학과 원자 폭탄의 원리, 책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인문학도들이 바라보는 영화 음악, 주제 전개, 시간의 흐름의 놀라움 등에 대한 감상평들도 들어보았다. 3시간이라 너무 지루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가족들과 같이 감독의 명성을 믿고 갔다가 야한 장면이 나와 깜짝 놀랐다는 평도 들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솔직히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나 돌아보았다.

영화를 본 직후가 아니라 5일 정도 시간이 흐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출퇴근하며  영화 후기들을 듣고, 보면서 영화를 다시 되씹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프로젝트 성공과 성공 프로젝트를 이끈 리더의 정치적 수장이란 소제목을 꼽아 몇 자 적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먼저 영화 속 내용을 살펴보자.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그로브스 장군과 오펜하이머


4천 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을 이끄는 프로젝트 리더가 나온다.

한 명은 오펜하이머, 그리고 그의 상사, 매니저 격인 그로브스 장군

오펜하이머는 프로젝트 리더라고 한다면 그로브스는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이다.

한 명은 기술 개발 리더이고, 다른 한 명은 그 기술 개발을 위해 일정관리, 자원관리를 하는 매니저이다.

먼저 프로젝트 매니저는 적절한 인물을 선정해 리더를 찾는다. 그리고 그에게 프로젝트 중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한다. 2차 세계 대전 직전 독일에서 원자핵 분열 실험 성공이 있었고, 히틀러와 나치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인쉬타인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만들면 세계 파멸을 가져온다고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맨해튼 프로젝트가 만들어진다. 펜타곤 프로젝트를 막 마친 그로브스 장군은 폭탄 만드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었지만 다음 프로젝트는 공병 출신인 그가 밀어붙여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그는 매니저가 되어 가장 적절한 기술 리더인 오펜하이머를 지정한다. 프로젝트 리더인 오펜하이머 또한 이 큰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일하는 멤버들을 모아야 하는데, 이론만 있었고, 가장 기초적인 핵분열 실험만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려면 최고의 이론, 실험 물리학자들을 모아야 했다. 찾아다니면서 설득 작업을 했고, 시대가 시대인만큼 망명 유태인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팀이 꾸려진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그로브스 장군과 오펜하이머가 과학자를 설득하는 장면


일단 사람이 많으면 끊임없이 문제가 생긴다. 그게 의사소통 부재의 문제일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의 성격차이로 부딪치는 경우도 많아진다. 기술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70% 아니 80%가 조직 운영이고 20%가 기술적 장애를 뛰어넘는 아이디어, 엔지니어의 노력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주제로 여러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조직 운영이 90%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프로젝트 성공여부는 조직 운영이 중요하다. 아이폰이 나오고 5G기술이 나오고, 3nm 반도체 기술이 세상에 성공적으로 나오는 그 이면에는 엔지니어의 끊임없는 노력과 아이디어도 중요하겠지만 프로젝트 운영, 조직관리가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창조적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기술 리더 역할을 오펜하이머는 훌륭히 수행한 것이다.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끊임없이 공산당과의 연계성으로 의심받는 굴욕을 개인적으로 감내하면서 히틀러가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 세계를 정복하는 일은 막아내야 하겠다는 신념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과학자, 기술자들을 다독이고 독려하며 조절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아니면 이런 프로젝트가 과연 단기간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코로나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전 세계인들이 공포에 떨고 경제는 얼음처럼 얼어붙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서로 만나는 것조차 금지당하는 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1년여 만에 백신이 만들어지고, 3년이 지난 지금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평시에는 불가능한 기술개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코로나의 공포보다 더 큰 공포. 더구나 그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조급한 마음으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프로젝트 리더의 압박을 이겨냈을 것이다.

와이프가 사막에 와서 우울증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 그래서 오펜하이머가 지인에게 아이를 맡기는 모습은 리더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주변인들의 희생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모습들이다. 본인 또한 줄담배로 결국 후두암으로 사망까지 했으니 큰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의 종말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결국 그는 구둣발 소리를 들으며 성공의 연설을 한다. "세계는 이 날을 기억할 것이다"라고... 흥분 속에 성공을 축하하지만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죽이는 고통까지 같이 느낀다. 모두들 환호하지만 리더만이 알 수 있는 프로젝트의 진정한 결과물, 그리고 그 양면성과 그 후에 일어날 세계까지 걱정한다. 그만이 그 의미를 가장 먼저 깨닫는다. 리더는 세세함도 보지만 큰 숲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면에서 뜬금없이 수소폭탄을 만들자는 텔러가 나온다. 프로젝트를 이끌다 보면 똑똑한 멤버인데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 리더는 이 사람을 버릴까 아니면 포용하면서 갈까 생각한다. 오펜하이머는 포용하는 리더십으로 그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결국 그는 나중에 정치적으로 등에 칼을 꼽는다. 자신의 선의로 키우던 후배가 뒤에서 칼을 꼽았을 때 그 느낌을 나도 두 번 정도 경험했었다. 오펜하이머의 와이프는 엄청 화를 내며 그와 악수를 왜 했냐고 하지만 그런 경험을 겪으면 화를 내기도 힘들다. 자신을 넘으려는 텔러의 야심을 알고, 그러나 그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위험인가를 설득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소신 있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더니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친 리더를 정치적으로 수장해 버린 상황이 된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버리면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당하기만 한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수소폭탄을 만들자는 텔러


또한 그를 지지하는 줄 알았던 스트로스가 뒤에서 그를 모함하고 배제하고 수장시키는데 정치인이 아닌 오펜하이머는 그걸 너무 늦게 알게 된다. 그리고 성공한 과학자에서 소련의 간첩이라는 낭떠러지에 몰리게 된다. 아인쉬타인이 그렇게 희생할 필요 없이 과감히 떠나라고 충고를 하지만 그는 묵묵히 그걸 모두 감당한다.

조직이 싫으면 조직을 불태우거나 조직을 떠나라는 말이 있다. 사실 조직을 불태우고 새롭게 변혁을 하기란 그걸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 죽을 만큼 힘들면 그냥 그 조직을 떠나는 길을 택하는 것이 범인들이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바보같이 정치인들에 의해 발가벗김을 당한다.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까지 보여주면서도 그가 하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과학자로서 A를 물어보니 A를 대답했는데, 상대는 A를 A'으로 뒤틀어서 물어보고 B라고 대답하게 만든다.

그런데 부인 키티는 그걸 제대로 파악한다. A'를 물어보면 A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받아친다. 나는 이 영화의 백미를 꼽는다면 바로 이 장면인 것 같다. 오펜하이머는 같은 말을 듣고도 과학자의 말로 알아듣고 함정에 빠졌지만, 부인 키티는 정치인의 말로 알아듣고 함정을 회피할 수 있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비공개 청문회 참석한 키티와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지루하게 이어진다. 실제로 오펜하이머를 심문하는  비공개 청문회는 19번의 회의로 불공평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영웅의 몰락. 이것은 누군가의 의도대로 된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동료 데이비드 힐이 오펜하이머 편을 들어주고 스트로스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알아보니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억울한 오펜하이머를 지지해 주고픈 감독이 만들어낸...

사실 무고하게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주변에서 도와주는 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특히 공격하는 대상이 매우 높은 지위에 있을 때는 누구든 자신이 공격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억울한 이를 보고도 지지해 주기 어렵다. 프로젝트를 성공하고도 그 결과물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수장되어 버리는 오펜하이머...

그러나 이 장면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조직 사회에서 항상 존재하는 정치적인 인물들... 그들에 의해 무고한 피해를 받는 사람들... 그리고 억울하게 피해를 받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조용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그를 지지해 주는 데이비드 힐






다양한 시각으로 영화를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프로젝트 리더와 그 후 리더를 대하는 조직 관점에서 내 경험을 비추어 해석해 보았다. 오펜하이머는 1967년 죽었고 2022년 바이든 정부에서 그의 소련 스파이라는 누명을 벗겨주었다. 참 다행이다.

한편으로 스파이 누명으로 정치적 수장을 당한 오펜하이머는 그나마 미국이니 그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이었으면 어땠을까?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흐르면 "사필귀정" 하여 역사의 이름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거라고 위안 삼아 본다.

오펜하이머가 60여년만에 "사필귀정" 되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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