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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Jan 21. 2020

꿈속인가요 동화속인가요

겨울 아일랜드 도니골 바닷가 여행


겨울의 도니골은 중독적이다.  


아일랜드 여행 중이라면 특히 서부의 도로 곳곳에 'Wild Atlantic Way' 라고 표시된 푯말을 보게 된다. 약 2,500km에 달하는 이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가면 가장 아름다운 해변 도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슬라이고, 킬라니, 딩글 등 아일랜드 서부에는 기가 막힌 곳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법 같은 곳을 고르라면 단연코 도니골이다. 


북쪽 특유의 거칠고 거대한 절벽과 파도와 바람이, 절묘하게 동화같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풍경들과 섞여 자꾸만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겨울 여행의 장점이라면 역시나 고요함이다. 사막 같은 모래 언덕, 끝이 보이지 않는 텅 빈 바닷가, 엄청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오르는 절벽의 바다.. 이 평화롭고 꿈 같은 풍경들을 방해 없이 온전히 누리고 누비고 싶다면, 겨울 아일랜드 도니골 여행을 추천한다. 




|| 마게라 해변 Maghera Ardara 
_ 사막같은 바다에서 홀로 걷다 


:: 호수 같기도 강 같기도 바다 같기도 한 마게라 바다의 모래 언덕들


구글 맵에 마게라 해변을 찍고 도착하면 텅 빈 주차장과 지금은 문을 닫은 작은 매점 건물이 있고, 그 옆 막대로 된 문을 열고 시작되는 길이 해변으로 가는 입구이다. 여느 관광지의 흔한 팻말도 없고 마치 비밀의 산책로를 몰래 들어가는 기분이다.    


:: 비밀의 산책로에 펼쳐진 모래사막 같은 언덕들


갑작스럽게 이곳이 사막인가 할 정도로 난데없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발이 푹푹 꺼지는 모래 언덕을 10분 정도 지나면 해변이 나타난다.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난 모래 언덕에서 미끄럼도 타야 하고, 중간마다 펼쳐지는 풍경들에 넋을 놓느라 30분은 금방 지나가기 마련이다. 


:: 바닷물이 좁은 물길로 들어와 모래 둔덕들 사이를 채운다


섬나라의 북쪽답게 끊임없이 몰아치는 바람이 휘갈기는 머리카락처럼 잔디의 결을 만들어 낸다. 모래 언덕 위, 높게 무성한 잔디와, 호수 같은 바다와, 그 너머 겨울의 초록들을 바라보며 눈이 호사를 누린다. 


:: 스케일이 다른 바다와 모래사장


모래 언덕이 끝나는 지점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을 또다시 만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렇게나 넓은 해변. 엄청나게 펼쳐진 광대한 모래사장 위에 작은 점 하나가 되어 본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정신없이 뛰어도 보고 드러누워도 본다. 


:: 드넓은 마게라 해변의 풍경


해변에 위치한 작은 동굴에 고개를 들이밀어 보았다가, 깜깜함이 무서워서 깊이 들어가진 않았다. 이렇게 크고 넓은 해변에 홀로 있으면, 지구 위에 혼자 뚝 떨어진 아주 작은 생명체가 된 기분이다. 우주와 연결된 기분을 맘껏 만끽한다. 5분에 한 번씩 변화하는 마법 같은 날씨는 덤이다.     


{ Information } 

✔︎ 마게라 해변 구글 지도 보기

➿ Tip 1. 모래가 바람에 날려 눈에 들어가니 선글라스를 지참하는 것이 좋다.
➿ Tip 2. 해변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숨겨진 명소 아싸랑카 폭포Assaranca Waterfall에 함께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구글 지도 보기




|| 슬리브 리그 Slieve League 
_ 온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만나는 무지개 


:: 바람, 바람, 바람!


절벽 위 하이킹 명소로 알려진 슬리브 리그는 무엇보다 바람으로 유명하다. 슬리브 리그에 도착하면 무엇보다도 차 문을 조심해야 한다. 바람 때문에 차 문을 열기도 힘든 데다가 자칫하면 쾅 하고 닫히는 문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 


:: 절벽을 따라 펼쳐진 하이킹 코스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보고 신이나 뛰어가고 싶겠지만 경고를 해야겠다. 아일랜드의 땅은 매우 축축하다. 특히 Bog라고 불리는 습지로 된 지형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한 번 미끄러지면 온몸이 진흙탕이 되니 흥이 많은 스타일이라면, 예비 옷 한 벌은 어디든 가지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저 너머 보이는 절벽 라인


좁은 절벽 위 하이킹 코스를 처음 봤을 땐 정말 금방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바람을 온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몸집이 작거나 가벼운 사람들은, 정말로 바람에 휩쓸려 날아갈 것만 같은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각자의 안전에 주의하며 올라갈 수 있는 만큼만 올라간다. 


:: 하이킹 코스를 오르며 보이는 풍경들


절벽 곳곳의 이끼와 풀과 바위가 아일랜드 특유의 색감을 만들어 낸다. 물감으로 수놓은 듯 펼쳐져 있는 이국적인 색깔들과 좀 더 올라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두근대는 설렘을 가지고 바람을 거슬러 올라간다. 


:: 당신의 날씨 운을 실험하기 좋은 곳, 슬리브 리그


해와 함께 걷다가 비가 온다면 당신은 매우 운이 좋은 것이다! 무지개에 후한 아일랜드는 바다 위 무지개를 선물로 줄지도 모른다. 바람과 바다와 비와 해가 끊임없이 온몸으로 말을 걸어 올 것이다. 온 감각을 열고 자연이 주는 선물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 Information } 

✔︎ 슬리브 리그 구글 지도 보기

➿Tip 1. 아일랜드를 여행할 때는 생활 방수가 되는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특히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오는 데다가 땅에 젖은 진흙이 많기 때문이다.  
➿Tip 2. 첫 번째 주차장을 지나 막대로 된 문을 열고 진입하면 두 번째 주차장이 나온다. 오래 걷고 싶다면 첫 번째 주차장을 이용해도 좋다. 




|| 실버 스트랜드 Silver Strand 
_ 거대한 파도와 푸르른 언덕에 서서  


:: 실버 스트랜드 바닷가로 내려가는 계단


도니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실버 스트랜드를 뽑게 된다. 절벽 사이 움푹 팬 바닷가의 카리스마는 강렬했다. 조금은 무섭기도 한 파도에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한 소름이 돋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저 멀리 치는 파도가 어찌나 강한지 물방울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얼굴에 흩뿌려진다. 


:: 숨은 양 찾기


절벽 위의 풀을 평화롭게도 뜯고 있는, 색색깔의 양들도 빼놓을 수 없다. 양털에 묻은 페인트의 목적은 어느 집 양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양을 기르는 집마다 창의적으로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한다. 구분이 된다고 한들 저 절벽의 양들을 도대체 어떻게 다시 데리고 오는지 그 비법이 언제나 참으로 궁금하다. 


:: 키를 훌쩍 뛰어넘는 파도 앞에서


아무도 없는 깊숙한 바다의 안쪽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서 있는다. 아무리 사진으로 담고 싶어도, 담기지 않는 어떤 것들이 있다. 엄청나게 큰 파도 소리, 파도와 햇빛이 만나 공중에서 부서지는 색깔, 반짝이는 모래에 끊임없이 새겨지는 거대한 파도의 무늬 같은 것들. 


::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곳, 실버 스트랜드


끊임없이 바다와 절벽이 이어져도, 결코 질리지 않는 도니골의 풍경들. 거대함과 고요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마치 꿈을 꾼 것만 같다. 이 거친 겨울 섬의 북쪽에 기어코 온몸을 내맡긴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겨울의 도니골은 중독적이다.     


{ Information } 

✔︎ 실버 스트랜드 구글 지도 보기

➿ Tip. 도니골 여행 중 숙소를 찾는다면 Aras B&B를 추천한다. 저렴한 가격에 부엌을 쓸 수 있고 방도 깔끔한 편이다. 원한다면 숙소에서 저녁을 준비해 주니 굳이 다른 레스토랑을 찾을 필요가 없다. 숙소 근처에 트래킹 할 수 있는 길도 많다. 숙소 구글 지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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