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너머를 탐험하고픈 용자들을 위한 여행
유럽 대륙의 서쪽 섬, 아일랜드(Ireland) 바닷가 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1년 반이 되어간다. 영화 <원스>의 남주인공이 기타를 매고 절절한 멜로디를 내뱉던 바로 그 거리가 있는 곳, 얼마 전 가수들이 버스킹을 하러 해외로 떠나는 TV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이 가장 먼저 찾아왔던 버스커들의 성지가 바로 이곳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4계절 내내 비가 많은 나라다. 작년 처음 이곳의 겨울을 맞이할 때 누군가가 아일랜드의 겨울은 정말 지독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경고를 했었다. 4시면 해가 지고, 툭 하면 비와 함께 거센 바람까지 불어제끼는 이곳의 습한 추위는 우리나라의 추위와는 달리 뼛속을 스민다고. 날씨에 아주 예민하며 추운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두 번째 맞는 이곳의 겨울, 어느덧 내가 아이리시의 기운을 장착해 그토록 두려워하던 어둡고 추운 나날을 거뜬히 웃어넘기게 될 줄이야.
아일랜드는 추위 너머를 탐험하게 해주는 곳이다. 거친 자연 앞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나의 야생성을 깨우게 되는 곳. 맥주와 음악과 함께,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들 뺨치는 드립력으로 여기저기 열심히도 모여 무엇이든 껄껄 웃어넘기고야 마는 사람들의 뜨끈한 열기가 겨울을 거뜬히 나게 해주는 곳. 그리고 비가 오면 반드시 무지개가 뜬다는 속담 같은 이야기를 아주 자주 현실로 목격하게 되는 그런 곳.
그리하여 이 겨울, 용감하게 아일랜드를 여행하려는 모험가들에게 도움이 될 몇 가지 정보를 공유해 본다. 1년 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아일랜드에서 지지고 볶으며 얻게 된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일랜드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가졌다. 4계절의 기후 편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전년 더블린 기준 여름 평균 최고 기온은 약 15도, 겨울 최저 기온도 약 5도. 체감 온도로 치자면 여름도 반팔만 입기엔 꽤 춥고, 겨울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추위를 만나게 된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뜨끈뜨끈한 방바닥이 없는 이곳은 어딜 가든 대체로 습한 추위가 함께한다.
아일랜드에서는 하루에 백 번씩 날씨가 변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해가 나와 있다고 해를 믿으면 아니 된다.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질 테니까. 특히나 바닷가 마을을 여행 중이라면, 우산을 펴자마자 바로 우산이 망가지는 황당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리시는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이들은 하늘을 보고 구름을 읽는 능력을 갖췄다. 며칠만 지내다 보면 생각보다 신기하게 금방 습득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대략 5분 후에 저어기 구름이 몰려올 것이고, 나가봤자 나만 홀딱 젖을 터이니 약속이고 뭐고 차나 한잔 더하고 나갑세 하게 되는 지혜를 배운다. 물론 차가 위스키나 기네스 한 잔이 되기도 하고, 옆자리 누군가와의 수다로 약속이 바뀌게 되는 경험은 보너스다.
| 겨울, 아일랜드 여행을 위한 추천 옷차림
아우터 : 기본 방수가 되는 모자가 있는 도톰한 잠바 혹은 겨울용 바람막이
윗옷 : 쉽게 벗고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얇고 따뜻한 레이어드 옷 여러 겹과 안에 입을 수 있는 가벼운 패딩
바지 : 비에 젖을 수 있으므로 갈아 입을 여벌의 바지 준비해가기, 잘 마르는 소재일수록 굿!
신발 : 바닥이 미끄럽지 않고, 잘 젖지 않는 방수 소재의 신발
보온 아이템 : 얇은 목도리, 털모자, 장갑
기타 Tip 1. 혹시 모르니 여벌의 양말과 손수건을 챙기면 좋다. 붙이는 핫팩도 유용!
기타 Tip 2. 혹시 숙소가 너무 춥다면 근처 Pharmacy에서 Hot water bottle을 구매할 것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종종 눈만 마주쳐도 인사하는 현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영어가 주로 쓰이는 아일랜드에서의 기본 인사는 'Hi'가 아니다. 이곳의 인사는 의문의 'How are ya'이다. 그냥 지나쳐 스쳐 가는 사람이 나한테 미소를 던지며 '하와야'를 외치고 지나간다. 헉,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뒤돌아서 큰소리로 '아임 파인, 땡큐. 앤듀?'를 외쳐야 하는 걸까.
의문의 '하와야' 세례는 멈추지 않는다. 펍에서 맥주를 주문해도, 슈퍼에 장을 볼 때도, 심지어 버스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까지 'How are ya' 라 묻는다. 이쯤 되면 맞는 반응을 고민하는 것은 쓸모가 없다. 그저 기쁘게 눈을 맞추며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그 흐름은 낯선 사람에게 먼저 하와야를 외치게 하기도 하고, 끝도 없는 버스 아저씨와의 수다가 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Friendly) 도시들을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탑 5 안에 아일랜드 도시가 무려 3개나 차지하고 있다. 정말 친절함으로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 800년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며, 인구의 4분의 1이 떨어져 나간 대기근의 역사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저력은 어쩌면 서로를 보듬는 친절함인지도 모른다. 작년 OECD 국가 내 공동체 지수가('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이웃이나 친구 등 사회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96%로 1위를 차지한 나라. 우리나라의 '친절함'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Friendly'가 무엇인지 경험해 보고 싶다면, 아일랜드에 와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 아일랜드의 인사법 배우기
"Howarya?" "Grand, yourself?" 좋아, 너는?
"What's the craic?" 요새 재미난 일 없고? "Not much, and you?" 별 일 없었어, 넌?
"It was a gas" 진짜 재밌었어(재밌는 일이나 수다를 표현할 때)
"I will let you go now" 길거리에서 시작된 수다를 끝내고 싶을 때 상대방에게 하는 말
"Thank you" = "go raibh maith agat[고뤱 마하것]" (아이리시 언어-게일어)
기가 막힌 날씨와, 따뜻한 사람들에 더해 만나게 될 겨울의 풍경들을 기대해 봐도 좋다. 사계절 내 푸르게 펼쳐지는 들판, 끝도 없이 만나게 되는 양과 소와 말, 스케일이 다른 바다와 절벽과 협곡들, 추울수록 모두가 모여드는 동네 펍의 온갖 라이브 음악들, 본고장에서 마시는 생 기네스와 향이 죽이는 위스키 그리고 이 겨울 거침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아이리쉬 동네 스위머들까지. 비바람을 넘어 모험을 하고픈 자들에겐 더할 나위가 없는 곳이다. 겨울의 아일랜드에서 색색의 무지개를 만나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 Donegal
: 강과 호수가 뒤섞인 물가를 따라 사막과도 같은 모래 둔덕을 지나면 기가 막히게 드넓은 바다가 나오는 곳이다. 여러 얼굴을 가진 아일랜드의 자연이 궁금하다면 추천한다.
: 바다의 절벽 길을 따라 걷기 좋은 하이킹 코스들이 많다. 하지만 대체로 한 발자국 내딛기도 어려운 엄청난 바람이 함께 부니 주의할 것. 글렌컬럼킬(Glencolumbkille)에 있는 숙소 Aras B&B에 머물면 주인 아저씨로 부터 자세한 지도와 여행 정보를 받을 수 있다.
| Killarney
: 서남쪽 케리의 바닷가 절벽을 빙 두르는, 가장 경치가 좋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킬라니 국립공원을 포함하여 대자연의 경이를 만날 수 있는 곳. 179km에 달하기에, 제대로 한 바퀴를 돌려면 이틀은 잡아야 하는 코스이다.
: Ring of Kerry 코스 중 하나. 두 산 사이로 빙하수가 흘러 만들어낸 협곡에 길을 내어 강 옆을 따라 가는 코스이다. 도로가 매우 좁고 많은 양 떼들이 길 위를 침범하니 주의할 것.
| Galway
: 게일어로 Black rose라는 뜻의 공연장. 펍과 함께 운영되고 상시로 라이브 음악, 코미디 쇼 등의 갖가지 문화 공연이 열린다. 매주 일요일 밤 11:30에 열리는 John Coneely band의 라이브 재즈 공연을 강력 추천한다.
+ Black rock diving tower in Salthill
: 솔트힐 바닷가 따라 쭉 나 있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등장하는 골웨이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여름이건 겨울이건 늘 차가운 바다에 거침없이 뛰어드는 아이리시들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구경하게 된다.
| Connemara
: 커네마라의 바위산들 사이, 굽이 굽이의 초록 들판을 달리다 나오는 탁 트인 호수. 고요한 호수와 명상하듯이 만나게 된다. 대기근의 역사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골웨이에서 작은 마을 오터라드(Oughterard)를 지나면 나오는 커네마라의 초입. 근처에 하이킹할 수 있는 바위산들이 꽤 있다. 아일랜드의 하이커들은 대체로 길이 없는 곳을 오른다. 올라갈 수 있을 만큼만 올라가는 것이 팁. 습지가 많으므로 유의할 것.
: 커네마라에는 기가 막힌 드라이브 코스가 많다. 붉고 푸른 들판과 습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바다와 거대한 호수를 오갈 수 있는 곳. 그리고 눈이 부실 정도로 쨍한 쌍무지개를 만날 확률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